아주 열렬한 영화광도 아니고,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영화는 늘 내 삶에 있어 독특하고 소중한 그 무엇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맥주 한 잔과 함께 하는 영화 한 편에 세상 모든 슬픔조차 아름답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술을 마시며 한창 취기가 기분 좋게 올라올 때면 영화속 대사와 장면을 소환해서 나만의 개똥철학을 나불거리며 행복했었던 때가 있었다.
아주 아주 오래전 반짝반짝하던 시절에.
책도 마찬가지다.
독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많은 책을 읽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영화와 더불어 책이 나에게 주는 기쁨과 위안은 잔잔하지만 특별하다.
일상을 덤덤하게 살아낼 때는 잘 모르다가도 마음이 힘들 때, 슬플 때, 외로울 때, 삶이 막막할 때.
그런 상태의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시간을 내어주고자 하는 좋은 친구들이 있어 감사하다.
하지만 그런 상태의 나는 누군가와 만나는 것이 버겁다.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감정들이 정리가 되기도 하고, 실컷 떠들다보면 잠시나마 마음이 밝아져 다시 힘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오히려 더 슬퍼지곤 한다. 슬픔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어느덧 내 슬픔은 내 슬픔일 뿐. 사실은 지금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대화를 내가 먼저 꺼내며 말머리를 돌린다. 그런 날은 유독 책이 그리워진다.
홀짝거리는 맥주 한 캔에 마구마구 감상적이 되는 건 이 나이에도 여전하지만, 아주아주 오래 전 엄마가 되고나서부터는 영화와 책에서 좀 멀어졌다.
그림책과 가족영화는 딸이랑 많이 봤었는데, 그 시절 역시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한 때였다.
그래도 늘 마음 한구석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웃기면서 슬픈,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어른의 책과 영화가 그립고, 마음의 동요가 심한 날에는(그런 날이 너무 많다)문득 떠오르는 책과 영화 속 한 장면들이 떠올라 꺼져가는 내 마음에 따뜻한 군불을 지펴주곤 했다.
하지만 자꾸 멀어져갔다.
모든 게 시들하고, 해내야만 하는 일들을 간신히 해치우고, 몸과 마음이 힘든 나날들이 무진장 길게 지속될 때가 몇 번 있었는데, 그 때는 잠이 제일 큰 위안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그 긴 세월을 그냥 그렇게 산 것이다. 살아지는대로.
가끔씩 일부러 찾아 보는 영화나 책 속의 슬픔은 슬픔일 뿐. 여간해선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2023년에는 내인생 통틀어 가장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봤나보다. 딸이 재수를 하던 해였다.
딸이 고3일 때, 나는 나대로 새로운 자격증을 취득해서 그 자격증으로 취업을 했는데, 지금껏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니, 그 일은 나에게 전혀 맞지 않는 옷이었다.
물론 좋은 경험들도 많이 했지만,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했던 시간들, 취업을 해서 고군분투했던 그 시간들에 다른 걸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 왜 그 자격증을 따려했을까 나는?
딸의 재수를 앞두고 그 직장을 그만 두었다. 당시에는 남편과의 사이도 너무 좋지 않던 때였고, 재수는 필수라는, 너무 쉽게 들려오던 말이지만 당사자(물론 딸이 당사자이지만)가 되고보니 말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그 심적 압박감이라니..
이런 저런 상황들로 모든 게 다 싫었던 나는 딸의 뒷바라지만 하고 싶다는 명목 하에 재수생 엄마로서 1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니 딸이 나에게 준 선물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나는 다시 책과 영화와 드라마를 찾게 되었다. 그 때 보았던 영화나 드라마, 책들을 다이어리에 하나씩 적어 두었었는데, 그 해 다이어리만 없어졌다. 이사하면서 어디에 잘못 들어가 있을까.
초코를 떠나보내고 아직은 그저 고통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하루하루 억지로나마 이제는 살아지는대로 안살거라고 조용히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