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초코의 선물

by 사파이어

온나라가 떠들썩한 오늘 나의 집은 여느 때보다 더 조용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지하수 관정을 파며 나온 암반 잔해를 정리했다.


그저께 밤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서랍 안에는 이전에 써둔 열 편 정도의 글이 있었다.

초코와 이별하기 전에 쓴 글이 하나, 나머지는 이별 후에 썼던 글들이다.


글을 쓰고 싶다, 이제는 좀 살아지는 대로 살지 말고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글로 정리하면서 살고 싶다고 한참 전부터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하루하루 피곤한대로,우울한대로, 막막한대로 너무 오랜 시간 그냥 그렇게 살았다.


블로그를 다시 해볼까. 15년 전 육아일기를 쓴다고 블로그에 한창 빠져 지내던 적이 있었다. 아이를 재우고 육아일기를 쓰다보면 없던 힘도 되살아나 꼭두새벽까지 달리다가 다음날의 길고 긴 하루가 걱정이 되어 억지로 잠을 청하곤 했었다.


하지만 15년 전 일이다. 그 긴 세월동안 나도 변했고 블로그도 변했다. 지금의 나의 이야기를 쓰려니 이전 글들이며 카테고리며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올 1월 초에 새로운 블로그를 개설해 두었었다. 혼자서는 또 흐지부지 쓰다말다 할 것 같아서 블로그 쓰기 강좌도 신청해 두었었다.


사실은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고 싶었다. 뉴스 기사를 읽다가 제목에 끌려 누른 브런치 글들을 읽으면 하나같이 내 마음에 울림이 있었다. 일부러 찾아 읽는 책이나 영화와는 다른 느낌의 친밀함이었다. 아주 소극적인 독자로 라이킷 한 번 눌러본 적이 없지만, 세상이 나만 빼고 돌아가는 느낌에 외로울 때 브런치의 글들은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런 브런치이건만 위안을 주는 동시에 의기소침함도 안겨주었다. 2년 전 쯤 한창 내 마음에 거센 폭풍이 몰아치던 시절,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으나 되지 않았다. 좌절까지는 아니지만 한동안 굉장히 의기소침해 있었다. 공감도 좋지만 나는 세상과의 교감이 필요했고 그리웠다. 그러나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도도한 세계였고 벽이었다.


초코가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나 아직은 건강했던 2월 중순 새로운 블로그에 첫 글을 올렸다. 그리고 3월이 되어서 강좌가 시작되었지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은 이 곳에서 일을 하지 않고 지내는 내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그 또한 두렵고 끔찍했다.

봄의 문턱에 들어섰지만 초코를 보낸 그 겨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초코와 함께 한 시간들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것밖에 없었다. 힘든 기억이지만 기록해두고 싶었다. 마음이 너무 엉클어져 있어서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기도 했다.


내 마음을 다해 쓴 글이었고, 누군가가 함께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썼다. 블로그에 올리면서 위로도 받고 싶었다. 하지만 메아리는 없었다. 글을 올리자마자 내 글을 읽지도 않고 자동으로 눌러지는 것 같은 하트들에 오히려 더 외롭고 슬퍼졌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말했다. 초코가 없으니 얼마나 허전하겠냐고. 초코는 이렇게 사랑해주고 슬퍼해주는 엄마가 있어 행복했을 거라고. 시골에서 마음껏 뛰어놀다가 갔으니 얼마나 행복한 강아지냐고. 먼저 가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시간이 약이라고..

감사했지만.. 그게 아니야, 아니라구.. 초코가 보고 싶고, 빈자리가 너무 커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내가 못견디겠는 건 그게 아니라구..

올케가 카톡으로 보내준 말에는 울컥했다. 형님, 초코 사진하고 영상 많이 보내주세요. 우리 같이 추억해요. 그 어떤 위로보다 고마웠고, 함께 추억하는 일이 가장 큰 위안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어제 오후 소파에 누워 잠깐 눈을 감고 있었는데 메세지 알림음이 연달아 두 번 울렸다. 문자인가. 혹시 브런치에서 온 소식인가?

축하의 메세지를 받으면 기쁘겠지만 아니어도 너무 의기소침해지지 말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또다시 거절당하면 이번에는 의기소침이 문제가 아니라 그대로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각오하고 신청한 일이다. 이제는 살아지는대로 안살거라고, 잘 살아볼거라고 내 나름대로는 첫발을 떼는 행위였다.두 개 연달아 왔으니 어쩌면? 기쁘게도 축하의 메세지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갑자기 눈물이 막 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이 눈물의 의미는 뭘까.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솟구치면 이런 눈물이 나는걸까. 초코의 유골함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초코야, 엄마 잘 견딜게. 잘 살아볼게..


기쁘고도 슬픈 초코의 선물이었다. 눈물을 닦으려고 부엌으로 티슈를 가지러 나오는데, 2층 계단 제일 아래에 초코의 털뭉치가 보였다. 여전히 집 안 곳곳에 마당 곳곳에서 초코의 털을 발견한다. 그럴 때면 조심스레 집어 올려 사과가 그려진 예쁜 사기함에 얌전히 넣어 놓는데, 이런 털뭉치는 너무 오랜만이다. 12년 동안 초코와 살면서 우리집은 털국이라고 맨날 불평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초코의 털 한올 한올이 너무 소중하다. 그 털뭉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또 울었다.


저녁이 되어 서랍 속의 글들을 하나씩 발행했다. 그런데 알림음이 계속 울리는 것이었다. 확인해보니 올린 글에 라이킷하트가 붙는 소리였다.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이 올린 글을 어떻게 이렇게 많은 분들이 볼 수 있는건지 의아했다.

빠른 세상의 흐름에 한참이나 뒤쳐진 나는 변해버린 블로그도 새로 시작한 브런치도 낯설기만 하다.

그렇지만 글을 올리자마자 1초도 안되어 다다닥 붙는 하트를 마주했을 때와는 마음이 달랐다.

공감까지는 아직 바라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내 글을 읽어주다니.. 갑자기 긴장이 되면서 그간 서랍에 넣어 놓았던 글들을 하나씩 올렸다.

오늘 밤은 라이킷해주신 분들의 브런치에 가보려고 한다.

이렇게 견뎌나가야겠다.

사랑했지만 너무도 소홀했던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과 너무나 아프게 보낸 죄책감이 언제까지고 무뎌지지는 않을지라도, 함께 추억하면서 견뎌내야겠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줬던 유일한 존재. 그것만으로도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나의 초코.

언젠가는 또다른 의미의 고마움을 초코에게 전할 수 있는 그런 날이 꼭 올 수 있도록 이제는 잘 살아봐야겠다고 오늘도 또 다짐을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