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가 떠난 날 오락가락 비가 왔었다.
비가 오니 초코 생각이 더 많이 난다.
아니.. 어쩌면 오늘 비가 온다는 예보에 내 몸과 마음은 이미 눈물 포탄을 장전하고 대기 중이었을 것이다.
오전에는 쨍하니 햇살이 좋아서 마당에서 빨래를 했다.
분명히 그럴 기분이 들어 빨래를 시작했을 텐데, 미리 준비된 눈물이 예고 없이 터져 나왔다.
코끝에 콧물을 주렁주렁 매달고 빨래를 했다.
엄마집에는 고양이가 다섯 마리 있다.
동생이 애지중지하는 고양이들이다.
재작년까지 엄마집에서 함께 살던 동생은 일명 고양이 전쟁 후 분가를 했다.
고양이를 끔찍이 아끼는 동생과 고양이를 끔찍이 싫어하는 엄마.
그런 동거가 10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딸이 좋아하니 참았다.
동생은 동생대로 엄마랑 안 부딪치려고 노력했다.
그런 시한폭탄 같은 나날의 긴장이 드디어 임계점에 다다른 건지 재작년 여름 엄청난 전쟁이 벌어졌다.
멀리 떨어져 살았건만 나는 그 모든 내막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엄마는 전화를 해서 속상한 얘기를 나한테 몽땅 풀어놓았다.
그런 저녁에는 동생한테서도 전화가 왔다.
나는 나대로 그때 나의 문제로 속이 시끄러울 때였다.
늘 똑같은 패턴. 처음에는 둘 사이를 중재하려고 노력했다.
엄마한테는 엄마 편을, 동생한테는 동생 편을 들었어야 하는데, 나는 그때 둘 다 미웠다.
엄마에게는 동생 마음을 변호하고, 동생에게는 엄마 마음을 변호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참에 따로 사는 건 어떠냐고 엄마에게도 동생에게도 넌지시 던져보았다.
그것 말고는 해결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싫은 소리를 했다. 나한테 제발 그만 좀 하라고. 나도 힘들어 죽겠다고.
그러고 나서는 후회를 했다. 엄마랑 동생은 지금 내 상태를 아무것도 모르는데. 쫌만 참을걸.
동생이 고양이 여섯 마리를 데리고 분가를 하면서 이 사건은 막을 내렸다.
동생은 처음에 다 데리고 갔었다. 아마 열 마리가 넘었을 것이다.
그중 빌라생활이 싫었는지 하도 울어서 다시 엄마집으로 온 아이들이 요 아이들이다.
밥은 아빠가 챙겨주신다.
초코랑 이곳에서 살면서부터 초코는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더 많이 보며 살았다.
친하게 지내면 좋았으련만.
초코는 사람만 좋아한다.
우리 집 바로 맞은편에 있는 엄마집을 향해 모든 레이더를 총동원하여 하루 종일 그쪽만 주시했다.
집에 있을 때는 창가에 앉아 그쪽을 보며 짖고, 마당으로 나가면 곧바로 엄마집을 향해 돌진했다.
고양이들은 고맙게도 도망다녀 주었다.
그러면 초코는 저 위 밭까지 전속력으로 쫓아갔다.
초코가 너무 갑작스럽게 달려가서 고양이들도 놀라 그 자리에서 등을 둥글게 말며 하악거리는 걸 한 번 목격한 적이 있었다. 고양이들이 안 도망가고 있으니 초코가 갑자기 멈칫하며 자기도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해 멀리서 깔깔 웃은 적이 있다.
한 번은 우리 집 뒷산까지 쫓아 올라간 적도 있었다. 마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초코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좀 거리가 있는데. 초코야, 초코야 다급하게 부르며 마당 여기저기를 찾아다녔는데, 뒷산 쪽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 초코? 산에 올라갔어? 어떡해 어떡해. 저기를 어떻게 올라가서.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지고 박수를 치며 그쪽으로 초코를 불렀더니 다행히 살살 무사히 잘 내려왔다.
나중에는 초코를 안아주며 웃었지만, 당시에는 또 화를 냈던 것 같다.
고양이들이 처음에는 누가 누구인지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더니, 자꾸 보니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딸기, 자두, 로이, 달수, 업둥이.
그중에 업둥이랑 딸기는 내가 손을 내밀면 도망가지 않고 킁킁 냄새도 맡는다.로이랑 자두랑 달수는 도망가기 바쁘다.
이 아이들이 안 그래도 우리 집에 자주 왔었는데, 초코가 없으니 이제는 안심하고 데크에 누워 낮잠도 잔다.
초코랑 있을 때는 밤에 잘 때 2층 데크에서 쿵쾅거리는 요 녀석들이 성가시기만 하더니, 이제는 적막한 밤에 들리는 그 소리가 싫지 않다.
눈물콧물 범벅인 채로 집에 들어가려는데, 업둥이가 우리 집 잔디밭에 앉아 있었다.
업둥이 추르 줄까?
그랬더니 데크 쪽으로 살며시 걸어왔다.
다시 갈까 싶어 얼른 집에 들어가 추르를 가지고 와서 주니 맛있게 먹는다.
물도 줄까? 물도 할짝할짝 마신다.
업둥이 발이 초코 발이랑 너무 닮았다.
작고 몽실몽실한 초코발.
다른 아이들한테는 안 그러는데, 나는 업둥이한테만 이 말을 한다.
업둥아, 초코 오빠 보고 싶다. 초코 오빠 기억나지?
오후가 되니 빗줄기가 거세졌다.
오늘은 할 일도 많았는데, 2시 반부터 5시까지 쭉 자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