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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넨브릴레 May 21. 2022

조종사는 샐러리맨(Salaryman)

존넨브릴레는 선글라스라는 뜻의 독일어 2/4

2016년, 우연한 기회에 외국인 조종사를 뽑는 중국 항공사의 채용로드쇼에 참여하게 됐다. 한 달에 65시간만 비행하면 22,500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6개월 후, 그 회사는 '우리 회사'가 됐다.


2020년, 코로나로 여행업과 항공업계는 전에 없던 불황을 겪게 된다. 사장님이 외국인 기장들과의 면담 회의에서 "서로 협력을 통해 이 블랙 스완(Black swan, 일어날 확률은 낮지만 한 번 발생하면 매우 치명적인 사건)을 잘 이겨내자고 얘기했다. 회사는 기존의 계약서를 무시하고 기본급을 2,200달러로 낮추었다. 터무니없는 결정이었지만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그로부터 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낮아진 급여는 계속 유지 중이다.


2022년 5월 2일, 한국 정부는 실외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해제하며 사회가 위드 코로나(With corona)를 받아들이도록 한 발짝 다가갔다. 항공업계는 들썩였고 ["해외여행 봇물 터진다"… 가족단위 예약 급증 기대감]이라는 제목을 가진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국의 항공사에서 경력 기장을 채용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들리게 된다.


중국은 제로 코로나(Zero corona) 정책을 여전히 고수하는 중이었다. 여러 도시들이 봉쇄를 반복하고 있었다. 항공 여행객 수가 하방 압력을 받아 조종사로서 비행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어쩌다가 나오는 스케줄도 취소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중국 항공사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지 한국 항공사로 복귀해야 하는지 고민의 기로에 서있는 중이다.    



급여 인상 계획

3월 말, 팀장은 외국인 기장들과 온라인 월례회의를 했다. 그는 몇 가지 사고 사례를 언급한 후, 마지막에 희소식이라며 회사가 기본급을 인상할 계획이라는 정보를 전달했다. 


우리 회사는 하이난항공그룹 소속이었다(지금은 아니다). 하이난항공그룹은 재정문제로 항공사공항(산야 공항 등을 소유하고 있다), 금융비즈니스 및 기타의 4개 부문으로 쪼개졌다. 우리 회사인 장안 항공을 비롯해 하이난 항공, 우루무치 항공, 푸저우 항공, 서부 항공 등 10여 개의 항공사로 구성된 '항공사 부문'은 석탄, 철강, 제약, 부동산 사업 등을 가지고 있는 팡다(方大)그룹에게 매각되었다. 2021년 말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팡다그룹이 우리의 모회사가 된 것이다. 

회사는 11대의 보잉 737 항공기를 운항하고 있다. 돈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팡다그룹은 수익창출을 위해 공격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2022년 내에 최소 3대에서 최대 10대의 항공기를 추가 도입하겠다고 했다.

중국의 항공사는 사전에 조종사가 충분히 확보되어야 비로소 정부로부터 항공기를 '할당' 받거나 '자체 도입 승인'을 받을 수 있다. 회사가 항공기 대수를 늘리려면 우선 조종사, 특히 기장의 수를 늘려야 한다. 

중국에서는 조종사의 항공사 간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타 항공사로부터 조종사를 데리고 오려면 부기장은 2~3억 원, 기장은 5~7억 원을 데리고 오려는 항공사에 줘야 한다. 조종사 양성 비용에 대한 보상금을 주는 것이다. 단기간에 회사를 확장시키려면 외국인 기장 모집이 필연되는 이유다. 최대 7억 원의 스카우트 비용을 계약 기간인 4년간 중국 기장 급여에 스프레드(spread) 시키면, 외국인 기장에게 연봉 2억 원 이상을 주고 데려 온다고 해도 손해가 아니다.


모회사인 팡다그룹은 우선 기존 외국인의 이탈을 막고자 급여를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모든 계열 항공사의 급여 기준을 동일하게 만들고 나서 각 항공사별로 상황에 맞게 일부 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깜깜이 인상안

4월 초, 비행이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회사 사무실에 갈 일이 있었다. 외국인 담당 여직원을 만난 김에 급여 인상의 폭이 얼마나 될지 알려달라고 했다. 알려주지 않았다. 다른 얘기를 하다가도, "그래서 회사가 급여를 얼마 올려준데? 그냥 참고만 할게"라고 재차 넌지시 물었다. 그녀는 약간 고민하는 듯하더니 "알지만 알려줄 수 없어"라고 거절했다.

  

일주일 후, 시물레이션 훈련을 위해 교관, 부기장과 모여 사전 브리핑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교관이 한 말은 "외국인 기장들의 급여가 인상될 예정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장이자 중국인 조종사 팀장이다. 사무실에서 근무 중이므로 소문을 접하는데 빠를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해 준다. 구체적인 인상 금액을 아느냐고 물어봤다. "몰라. 다만, 우리보다 많이 받을 것은 확실해"라고 했다.  


시물레이터 센터에서 조종사 중의 리더인 치프 파일럿(Chief pilot, 고유명사, 팀장보다 직책이 높다)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런지 평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편이다. 나를 만난 그가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이례적이었는데 역시나 외국인 급여 인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구체적인 인상 금액을 아느냐?"라고 물어봤지만 "확실하지 않다"라고 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것을 보면 외국인 조종사의 급여 인상 계획은 분명 회사 내에서 화두인 듯하다. 구체적인 인상 금액은 깜깜이였다. '실제로 올라야 오르는 것'이라는 일의 진행 방식을 알기 때문에 알아도 얘기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시물레이션 체크는 운항본부장과 했다. Chief pilot 보다 상위 직책이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체크 전 브리핑에서 그는 급여 인상에 대해 언급했다. 내가 구체적인 인상 폭을 묻자, "자세히는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다. 선을 긋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는지 "힌트를 주자면 3,000불에서 2,000불 사이의 인상이 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곧장 동료 기장님들과 내용을 공유했다. 


4월 말 어느 날, 동료 기장님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한 기장님이 같은 계열사인 서부 항공의 기장님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공유해주셨다. "2,000달러 인상안을 올렸는데 팡다그룹이 상승폭이 높다는 이유로 승인을 거절했고, 1,500달러 인상 선에서 다시 논의 중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최대 3,000불 인상을 기대했던 우리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정보를 주셨던 기장님은 "그래서 얼른 중국을 떠나야 한다"는 본인의 생각까지 덧붙이셨다. 중동의 항공사를 포함해 이미 4군데 항공사에 지원서를 낸 상태라고도 했다.  



새로운 국면

5월 2일, 회사 사무실에 갔다가 우연히 팀장을 만났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는 대뜸 외국인 기장의 급여 인상 계획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내용은 알려주지 않았던 지금까지와는 다른 태도였다. 


두 가지의 옵션 형태로 돼 있는 변경될 급여 체계는 다음과 같다. 금액은 미국 달러화다. 


1. 연간 90일 off   : 기본급 8,550달러 + 25시간 초과 때마다 시간당 160달러

2. 연간 110일 off : 기본급 7,350달러 + 25시간 초과 때마다 시간당 160달러


여기에서의 off는 연속된 휴가다. 90일 off의 옵션을 선택하면 매달 평균 7.5일을 한국에서 보낼 수 있다. 중국 내에서 비행을 하다가 쉬는 날(dayoff)을 갖는 것은 별개다.

현재 받고 있는 기본급에 비하면 큰 폭의 상승이다. 비행을 전혀 하지 않더라도 매달 25시간은 비행을 한 것으로 인정해 주겠다고 했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 소식이었냐면...



비행 스케줄이 주는 스트레스

나는 가족 행사가 많은 5월을 염두하고 4월부터 '만약 비행이 계속 없다면', 5월에는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기본급이 2,200달러라고 했다. 비행을 하든 그렇지 않든 받는 돈이다. 우리 회사 외국인 기장은 총 10명이다. 그중 4명이 작년에 각자의 나라로 떠나서 현재까지 머물고 있다. 휴가를 떠난 지 가장 오래된 한 러시아 기장은 연속 8개월째 본인 국가, 집에서 가족과 지내고 있다. 원래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회사는 비행 총량이 현저히 줄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고국에서 복귀하지 않는 것을 용인해주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중국에서 지내고 있는 나와 비교했을 때, 만약 비행이 계속 없다면 그는 같은 기본급을 받고도 본국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이익을 더 갖게 되는 셈이다.


스케줄이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 중국에 머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스케줄이 나올 가능성 때문이다. 한달에 단 두시간을 비행하더라도 320불을 받을 수 있다. 적은 돈이라도 그 가치가 예전에 비해 커진 상황이다. 

최근엔 비행 스케줄이 너무 임박해서 나온다. 보통은 금요일 저녁에 다음 주 전체 스케줄이 나왔다. 지금은 1주일에 2~3회로 나누어 스케줄이 오픈된다. 금요일에 다음 주 수요일 스케줄을 알 수 없다. 취소 변동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회사의 전체 스케줄이 오픈됐는데 나에게는 임무가 주어지지 않는 때가 잦아 졌다. 추가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각자 고국에 머물고 있는 기장들의 '가족과의 행복' 이익이 상대적으로 더 커 보이게 만든다. 스케줄이 나왔다가 하루 전날 취소라도 되면 그 상실감이 크다. 누군가는 8개월이라는 최장기간 그의 고국에 머무는 동안에, 스케줄 없이 또는 취소되는 횟수가 빈번한 상태로 중국에서 버티는 느낌이었다.  

나는 하루 중,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늦은 오전에라도 마시면 그날 잠을 잘 못 잔다. 예전에는 커피와 잠의 상관관계에 덜 민감했는데 요즘은 매우 민감해졌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고 해석 중인데 특히 비행 스케줄 때문에 그렇다. 


만약 비행하지 않았더라도 25일은 비행한 것으로 인정하고 급여를 준다면 이러한 상황이 말끔히 해결된다. 스케줄이 나와서 비행하면 좋고 나오지 않아서 비행을 하지 못하더라도 쉬면서 8,550불을 받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착각

팀장은 말미에 여전히 리더의 결제가 남아 있으므로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당부했다. 다른 얘기를 더 하다가도 '비밀이야'를 두 번 더 언급했다.


중국에 처음 왔을 때보다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었지만 꽤나 좋은 조건으로 재조정된다는 사실 때문에 들뜰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조종사이자 샐러리맨이다. 급여 인상은 샐러리맨에게 매우 중요하다. 팀장은 비밀이라고 했지만 나는 동료 기장님들께 말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작은 희망이라도 있어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의 바닥'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동료 기장님들도 이 소식을 반가워했다. 이미 4군데의 회사에 지원서를 냈던 기장님도 "이 정도면 중국에 남아있는 것을 고려할만하겠네요."라고 하셨다. 


1주일 후,

8,550불 인상안은 이미 예전에 나왔던 얘기고 모회사로부터 거절됐어요. 2,000달러 인상안이 거절되기도 전의 버전(Version)이었죠. 


라는 얘기를 듣게 됐다. 얼마 전 정보를 주셨던 서부 항공 기장님이 정보를 다시 정리해 주셨다. 


정보가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그제야 우리 회사 팀장이 그룹 내 다른 회사보다 정보가 늦은 것 같다는 추정을 하게 됐다. 확실히 하기 위해 팀장에게 "마지막 의사결정권자가 누구야? 우리 회사의 리더야? 아니면 팡다그룹의 리더야?"라는 질문을 했다. 팀장은 "팡다그룹의 리더야"라고 대답했다. 


충격에 휩싸였다.


팀장은 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남아 있는 리더의 결정'이란 것이 당연히 우리 회사의 리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회사의 승인을 이미 받은 것을 전제로 일부 세부항목 조정과 실무 진행 방안 등을 고려한 회사의 최종 결정이 남은 것으로 추정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착각하기까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잘못 이해된 그대로 다른 분들과 공유했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도 창피했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정보를 공유했던 기장님들 모두가 크게 실망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정확한 판단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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