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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넨브릴레 May 20. 2022

존넨브릴레Sonnenbrille

존넨브릴레는 선글라스라는 뜻의 독일어 1/4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내오는 친구가 있다. 그는 독어독문학전공했다. 함께 비행 공부를 시작했 결국 조종사가 되어 같은 항공사에서 근무하기도 했었다.

한 때, 회사에 부기장 수가 부족해 기장 두 명이 비행을 한 적이 있다. 그와 함께 방콕으로 비행을 갔던 어느 날이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홀리데이인(Holiday Inn Bangkok Silom) 호텔을 나서자마자 숨 막히는 뜨거운 공기와 강한 햇빛을 마주해야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동시에 선글라스를 꺼내어 착용했다. 조종사의 비행 가방에 늘 있는 그 선글라스다.

나는 홀연히 뭔가 생각난 듯 친구에게 물었다.


    | 참! 너 독문과 나왔잖아~

친구 | 야! 우리 졸업한 지가 언젠데, 독일어 몰라~ 묻지 마!


그는 오랜 친구인 나를 잘 알기라도 한다는 듯 질문을 한 단계 뛰어넘어 대답했다.


    | 선글라스가 독일어로 뭔지 알아?

친구 | 아! 몰라~ 모른다니까~

    | 존넨브릴레 잖아~

친구 | 그런 단어도 있냐? 웃기네 하하하

    | 존넨(Sonnen), 태양, 브릴레(brille), 안경, 존넨브릴레!


존넨브릴레(Sonnenbrille)는 선글라스라는 뜻의 독일어다. 독문과 출신 친구에게 독일어를 가르친다는 상황도 웃겼지만, 유사한 한국말 어감으로 희한한 느낌을 주는 이 단어 하나로 우리는 한동안 웃었다.  


처음 알게 된 건 독일에서 5년간 유학했던 아내 덕분이었다. 내가 운전하며 함께 차를 타고 갈 때였다. 핸들을 꺾은 차의 방향이 해가 정면으로 바뀌는 구간에 들어섰을 때, 아내에게 "부기장, 선글라스~"라고 요청했다. 조종사 다운 설정이다. 아내는 선글라스를 꺼내어 건네주며 "자~ 존넨브릴레 여기 있어요, 캡틴!"이라고 했다. "존넨브릴레? 어감이 웃기네요 하하하..." 아내와 한동안 웃었다.


존넨브릴레는 다음과 같은 기능이 있다.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해 준다.

편광 기능이 있는 경우 자외선(UV)뿐만 아니라 난반사(편광)까지 차단해 준다.

내 감정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게 해 준다.

멋의 관점으로 패션을 완성해 준다.


나는 이 중, 두 가지를 얘기해 보고자 한다. '편광'과 '감정 숨김'이다.  



편광 존넨브릴레

2008년 1월 초, 미국으로 비행 유학을 가기 위한 막바지 준비 중이었다. 여자 친구의 집에 금전적인 문제가 생겨 도움을 준 적이 있었는데 그 보답으로 존넨브릴레를 선물로 받았다. 미국에서 비행할 때 쓰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시내 면세점에서 함께 구입했는데 이것저것 고르다가 불가리(Bulgari)라는 브랜드의 것을 구입했다. 여자 친구의 어머니께서 제일 좋은 것을 사주라고 당부하셨기 때문에 가장 고가의 제품을 선택한 것이 그 제품이 됐다. 면세점에서 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45만 원 정도를 지불했다. 내 여권 번호와 미국으로 가는 비행편명을 넣어야 구입이 가능했고, 물건은 출발하는 날 받았다.

미국의 비행학교에서 조종훈련을 가기 위해 '불가리'임을 보이며 썼던 그 존넨브릴레는 동양에서 온 나를 한껏 멋나게도 했는데,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 올라가서야 잘못 샀다는 걸 깨달았다. 고가인 만큼 당연히 편광 기능이 있었는데 이것은 비행기의 계기판을 읽는 데 방해가 되었다.

조종사는 편광 존넨브릴레를 쓰면 안 된다. 실내에 있는 면세점에서 고를 때는 부작용을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얼마나 나에게 잘 어울리는지 멋에만 치중해 선택했는데, 실전으로 배웠다.



감정 숨김

극기훈련장의 조교들은 해병대를 상징하는 빨간색 모자에 존넨브릴레를 쓴다. 맞은편에서 힘들어하는 교육생들에게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존넨브릴레를 제목으로 한 것이지 주제는 아니다

얼마 전부터 중국 항공사에 계속 남아야 할지, 한국의 항공사로 돌아가야 할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 중이다. 고민이 깊은 만큼 감정과 선택의 기복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어떤 때는 나의 주관대로 정보를 이해해서 불안정이 생기기도 했다. 마치 편광렌즈를 낀 것 마냥 일부 정보를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그렇게 이해한 내용을 동료 기장님들과 공유했다. 결국은 그게 아니었던 것으로 명되면서 스스로에게 충격을 받은 사건이었다.

알고 보면 별 일이 아닐 수도 있는 감정의 기복을 나 스스로 못 견뎌하거나 타인에게 드러낸 것은 아닌가 하는 심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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