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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넨브릴레 Oct 30. 2022

복잡한 상황의 정리

코로나가 주는 부정적 상황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편에서, 


중국에서 버티려는 의지=1.8(상수항) + 0.684X업무환경 + 0.435X중국생활 + 0.391X삶의 지향점 - 0.381X가족


이라고 가상으로 정의해 보았다. 중국에서 버티려는 의지가 어떻게 변할지를 고민해보며 각 변수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독립변수 1. 업무환경 만족도

중국 항공사

나는 2022년 3월 3일 비행한 것을 소재로 '중국 조종사의 하루 P-log'를 썼다. 다음 스케줄은 4월 28일에야 가능했다. 중간에 비행 스케줄이 나오기도 했지만 계속 취소되었다. 통제 불가능한 사건이지만 '중국 항공사에서의 근무'에 부정적 감정이 쌓이도록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 탓에 간헐적으로 비행하다 보니 중국 정부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다. 연속해서 30일간 비행하지 못하면 시물레이션에서 비행 적응 훈련을 1시간 받아야 하고, 실제 비행에서 교관과 체크 비행을 한 후에야 다시 보통의 기장으로서 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년간 대부분의 비행이 교관과의 비행이었다. 시물레이션과 실제에서 교관과 함께하는 비행은 '평가받기'를 수반한다. 업무가 피곤해진다는 의미이다. 

회사 직원들은 대체로 다른 부서의 업무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느낌을 받는다. 중국인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여기기도 했는데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시물레이션 훈련 및 체크를 마치고 교관에게 사인받은 서류를 내러 사무실에 갔다. 담당자가 휴가 가고 없어 그의 책상 위에 두고 나왔다. 수요일의 일이었다. 이 담당자는 훈련팀이었고, 서류 확인 후 비행팀인 우리 부서에 문서를 보내야 한다. 외국인 담당 여직원이 문서를 접수하고 다시 스케줄팀에 문서를 보내야 비로소 비행을 다시 할 수 있게 되는 구조다.

금요일에 다시 사무실을 찾았는데 훈련팀 담당자는 여전히 휴가 중이었다. 다음 월요일이 되어서야 유선으로 담당자가 출근한 것을 확인했고, 비행팀에 문서를 보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비행팀 여직원에게 다시 확인하니 그제야 문서를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결국 나는 그 주(週)에 비행을 못했다. 나를 평가한 교관, 훈련팀, 비행팀, 스케줄팀 어디에서도 나의 상황을 특별히 챙겨주지 않았다. 이것은 한 사례에 불과하다. 

어느 항공사의 외국인 기장은 시물레이션 체크에서 떨어져 부기장으로 강등됐다. 부기장으로 200시간을 타야 기장으로 승급할 기회가 다시 주어지는데, 그는 2년간 190시간을 탔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또 다른 항공사의 외국인 기장은 그날 세 번째 훈련만 잘 마치면 정식 기장이 될 상황이었다. 중국인 교관이 갑자기 최근에 랜딩을 할 기회가 없었다면서 본인이 랜딩을 했다고 한다. 그 후부터 스케줄이 잘 안 잡히거나 취소되더니 1년을 넘게 훈련이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그 한 번의 랜딩을 못한 이유로 1년 넘게 부기장으로 근무해오고 있다고 했다.

개인마다 여러 상황이 있었겠지만 관련 직원들 중 아무도 적극적으로 챙겨주지 않았으리라는 가정도 결과에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항공사

부기장과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근무(비행) 만족도가 높아질 것 같다. 

시물레이션 훈련은 두 개 중 하나의 엔진이 갑자기 꺼졌을 때 대처하는 식의 비정상 상황에 대해 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에서의 훈련은 중국에서의 훈련에 비해 난이도가 낮다. 한국은 두 가지 이상의 비정상 상황을 한꺼번에 주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3~4가지 비정상 상황을 한꺼번에 주고 체크한다.  

비행 중에는 조종사가 항공기를 조작한 상황, 외부 환경, 비행 성능 등의 자료가 저장된다. 한국은 FOQA(Flight Operational Quality Assurance, 비행자료 분석 시스템), 중국은 QAR(Quick Access Recorder)이라고 한다. 중국은 이 결과로 조종사들을 평가하는데 그 기준이 한국보다 까다롭다. 조종사 실수에 대한 허용의 폭이 좁다 보니 매 비행이 더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국토면적은 한국의 96배에 달한다. 한국에서 가장 장거리 노선인 김포에서 제주까지의 비행시간은 1시간 10분 정도지만 중국 내 국내선은 7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코로나는 특히 국제선 비행이 많이 줄도록 만들었다. 각 국가 간 방역정책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국내선 운항만으로도 비행 노선이 많다. 향후 비행이 늘어날 가능성이 한국에 비해 훨씬 높다. 미국이 이를 증명해준다. 현재 미국은 국내선 운영만으로도 조종사가 매우 부족하다. 

조종사가 부족해지면 회사의 급여가 다시 올라갈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일이 많고 바빠지면 조종사에 대한 비행 평가도 기준이 낮아진다. 일단 비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회사는 '중국 내 다른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이 해지된 외국인 기장'을 뽑기 위해 면접을 봤다고 한다. 다른 회사에서 기장을 데리고 오려면 그 회사에 우리 돈으로 7억 원을 줘야 하는데 무료로 데리고 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회사의 리더는 올해 안에 최소 3대, 최대 10대의 비행기를 새로 들여올 계획이라는 말도 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올해만 해도 조종사가 부족해진다.  



독립변수 2. 중국 생활 만족도

'중국과 한국 중 어느 곳에서의 생활이 더 낫겠는가!'라는 저울질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저 중국에서 얼마나 잘 버틸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중국에서의 루틴을 살펴보자. 

오전 적당한 시간에 깨면 일어난다. 위층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잠을 깨우기도 한다. 일부러 발 뒤꿈치를 찍어가며 뛰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이곳 아파트의 층간 소음 유발 지수는 한국에 비해 훨씬 크다. 
대개는 8시를 전후해서 일어난다. 텀블러에 꽃잎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한가득 채운다. 컴퓨터를 켜고 뉴스, 이메일, 유튜브 등을 살핀다. 
9시가 되면 오트밀에 미숫가루 조금과 물, 바나나를 수저로 채 썰어 넣어 아침으로 먹는다. 양이 적으므로 너무 일찍 먹으면 안 된다. 
9시 40분에 집을 나와 10시부터 여는 피트니스 센터(Fitness center, 헬스장)로 향한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가장 적은 시간이다. 며칠 전 동료 기장님들과 즐겁게 술 한잔 하고 잠이 안 와 새벽 4시에 잠든 적이 있다. 어김없이 다음 날 10시에 헬스장을 찾았다.  
운동을 마치고 마트에 들러 장을 본다. 집에 오면 12시다. 점심을 만들어 먹는다. 메뉴는 순두부를 넣은 라면 반개, 코스트코에서 주문한 햄버거 패티를 넣은 식빵 샌드위치, 스파게티 등이다. 작년 10월 한국에서 가져온 전투식량이 50여 개 있다. 점심 식사 대용으로 계란 프라이를 함께 넣어 비벼 먹었다. 양이 조금 적다 싶으면 옥수수를 한 개 쪄 먹는다. 
점심 식사를 하며 드라마 몇 개를 이어 보거나 골프 경기를 본다. 점심 먹고 설거지를 마치면 3시경. 다시 인터넷을 하거나 드라마를 더 본다. 
오후 5시가 되면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6시에 저녁을 먹는다. 저녁 식사로 가장 많이 해먹은 음식이 카레다. 4인분을 한 번에 만들어 4일 동안 먹기 때문에 식단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이 있다. 인터넷에서 춘천 닭갈비를 파는 곳을 발견했다. 6kg을 사서 스무 개의 덩어리로 나누어 냉동고에 넣어 두고 한동안 먹었다. 한 덩이를 요리하면 이틀을 먹는다.
극기야 남이 해주는 밥이면 다 맛있어졌지만 돈이 아까워 주로 집에서 해 먹는다.
저녁 8시에는 아이와 영상통화를 한다. 성장기 아이에게 아빠가 미칠 수 있는 정서를 멀리 서라도 주려고 한다.
밤 10시에 잠자리에 든다.  

지난 2년간, 비행 근무가 적었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삶은 이 루틴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다. 가끔 동료 기장님과 스크린 골프를 치거나 함께 식사하는 일, 가족과 통화하는 것 외에 즐거울 일이 없어 보인다. 생각이 많아져 자다가 새벽에 깨는 일이 잦았다. 자는 시간을 여유 있게 두는 이유다.   

3일에 한 번 핵산 검사(PCR test)를 받아야 한다. 공항까지 가면 무료지만 너무 멀어 집 근처에서 받았는데, 한 번에 68위안(1만 3천 원)을 내야 했다. 그나마 최근에는 8위안(1,500원)으로 내려가긴 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버스 타고 15분 거리를 가야 하는데 주기적으로 검사받는 것이 참 번거롭다. 

올 겨울에는 연속 32일 동안 아파트 단지 안에서 봉쇄되어 보기도 했다. 4월에는 확진자 두 명이 동네 호텔에 묵었었다는 이유로 당일에 통지하고 구 전체를 바로 봉쇄하기도 했다. 4월 봉쇄는 2주 후 해제되었다. 

4월 중순에는 회사에서 지내며 시물레이션 훈련과 체크를 5일간 받았다. 매 6개월마다 해야 하는 훈련이다. 10여 일 전부터 공부를 시작했는데 2주 동안 뭔가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루틴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TV를 보는 대신 공부를 했다. 훈련기간 회사 호텔에서 지냈는데 밥이 맛있었다. 남이 해주는 밥이었다. 코로나 전에는 맛없다는 이유로 회사에서는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회사 식당은 여러 메뉴 중 골라서 먹는다


중국 생활은 누린다기보다 버텨내야 하는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종사가 된 이후로 나는 몸무게 83kg에 허리둘레 36인치의 올챙이 배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몸무게와 허리둘레를 줄여보는 것이 평생의 목표가 됐을 정도로 심각하게 고민했고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중국에서 할 일이 없어지자 운동과 식단 조절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몸무게 71kg, 허리둘레 31인치의 몸매가 되었다. 

코로나 이후로 돈을 많이 못 버는 대신 일로부터의 휴식 기간이 주어졌다. 한국에서는 매달 80여 시간을 비행했다. 중국에 온 이후로는 매달 65시간 정도 비행을 했는데 8일간의 휴가기간을 빼면 비행하는 동안에는 스케줄이 힘들었다. 비행 때문에 받는 신체적 스트레스를 한동안 받지 않는 기간이 생긴 것이다. 



독립변수 3. 삶의 지향점과 돈

삶의 지향점

2008년 1월, 다니고 있던 신용카드 회사에 무급 휴직을 내고 비행 기술을 배우러 미국에 갔다. 비행학교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가장 큰 도시인 휴스턴에 있었다.

파나마에서 온 에머슨은 비행학교에서 만났다. 큰 키에 얼굴에는 약간의 주근깨가 있었고 금발머리였으며 당시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다. 동양인이면서 영어를 잘 못했던 나를 친구로 편하게 대해줬다. 나처럼 비행 유학을 미국으로 온 것인데 돈이 많지 않아 차가 없었다. 그는 비행학교에 갈 때마다 늘 누군가의 신세를 져야 했다. 비행 훈련을 다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 내가 타고 다니던 차를 사서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포드사에서 만든 1989년 산 블랑코였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타고 다니던 차량

겨울에 갔던 휴스턴의 계절이 이제 막 여름으로 접어들 때였다. 학교 건물 앞에는 잎들이 우거진 나무가 있었는데 더위를 피해 앉아 있기 좋았다. 에머슨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의 차를 얻어 타기 위해 나무 아래에서 기다리던 중 우연히 나와 단둘이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우리는 장래 꿈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당연히 민간 항공기 조종사(Airline pilot)가 되는 것이 공통된 꿈이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항공사를 경영하는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대기업 고위 임원이었다. 아버지에게서 동기부여를 받았다고도 했다. 그의 말은 나에게 매우 신선했다. 경영학과를 나와 금융 회사에 7년간 몸담고 있던 내게도 해당될 것 같은 영감을 줬다. 


2011년 부기장이 되었다. 2013년 MBA 과정에 입학했다. 정식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과정 중에 Wanna be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항공경영 박사학위라고 적었다. 팀원 중 누군가가 나를 봤을 때 항공사 사장님이 될 것 같다고 적어 주었다. 

왼편은 내가 적은 내용, 오른편은 팀원들이 나를 평가하고 적어준 내용을 붙인 것이다.

비행과 MBA의 병행은 너무 힘들었다. 2017년 7월, MBA 졸업 후 2년 반 만에 힘들었던 시간들을 잊고 항공경영 박사과정에 도전했다. 파나마에서 온 친구와의 우연한 대화가 내 삶의 지향점에 대해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주고 있었다. 

만약 한국의 항공사로 돌아간다면, 오래전부터 내가 바랐던 일을 계속 도전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데에 의미를 두어 본다(한편, 그것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우려되기도 한다. 한국의 항공사에서는 조종사에게 경영을 기대하지 않는다. 조종사는 비행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돈을 좇아서

2016년 가을, 우연한 계기로 김포공항에 있는 롯데호텔 연회장에 방문했다. 어느 중국 항공사에서 외국인 기장을 모집하기 위해 설명회를 하는 자리였다. 한 달에 60시간만 비행하면 11일 연속으로 한국에 다녀올 수 있게 해 주고도 20,500불(USD)을 주겠다고 했다. 너무나도 좋은 조건이었다. 혹시나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하고 말았다. 9명이 함께한 전형에서 3명이 합격했는데 그중 한 명이 된 것이다. 

경영을 함께 하는 조종사가 되고 싶었는데 갑자기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다니던 박사과정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무언가를 할 때 집중을 많이 하는 편이라 비행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글을 써 볼 기회를 주고 있다. 특히 자가격리와 봉쇄 때 집중해서 글을 쓰곤 했다. 

전문 강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위의 사진에서 '스마트', '말/언변'은 다른 사람이 평가한 나에 대한 'I am'이다. 꿈이 변호사인 때가 있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논리적으로 말을 잘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는 것을 좋아한다. 대학, 대학원 때 모든 팀 과제 발표는 내가 했다. 전문강사는 나이에 제한이 없으므로 여기에 있으면서 틈틈이 내가 겪었던 일들을 정리해 사례로 만들어두면 나중에 한국에 복귀해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조금씩 시작했다. 



독립변수 4. 가족에 의한 삶의 만족도

가족과 관련된 삶의 만족도는 다른 변수에 비해 시간에 따른 변화가 뚜렷하다. 시계열을 고려하는 다음 편으로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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