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심리의 문제
너무 복잡할 때는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떤 이는 고민하는 본인의 심리를 이해해 보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동전 던지기를 해 보세요. 앞 면이 나오면 A를, 뒷면이 나오면 B를 선택하기로 하고 던지는 거예요."
"네?"
순간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한다. 이토록 중요한 결정을 동전 던지기로 하라니...
"동전을 던졌는데 앞면이 나왔다고 가정해보죠. 그런데 만약 다시 한번 던져보고 싶다면 아무래도 뒷면의 선택에 더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이 방법은 사실, 굳이 실제로 동전을 던지지 않아도 된다. 마음속으로 시물레이션 해보고, 나에게 선택해 보도록 해본다.
코로나가 만들어 내는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 하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이제는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신중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한국 복귀를 결정하신 기장님이 하신 말이다. 워낙에 맞는 문장이므로 혹하게 된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만 커져갔다.
아이는 지난겨울 내내 본인의 생일에 아빠가 집에 오는 것이 선물이라고 했다. '만약 비행이 계속 없다면'이라는 가정과 '아이의 생일에는 한국에서 함께 축하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희망이 마음 안에서 계속 커졌다. 아니면 5월에 돌아올 내 생일이나 아내의 생일에라도 한국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한국의 항공사에서 5월 중순에 경력 기장을 뽑을 것이라는 정보가 생긴 것이 기폭제가 됐다. 마침 시물레이션 훈련이 4월 20일에 끝났고 28일에는 연간 심사도 마쳤다. 마지막 비행 경력이 최근 한 달 이내가 되어 한국 항공사에 지원할 때, 서류 심사에 유리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나에게 한국으로 가라는 신의 계시인가?(나는 종교가 없다. 상투적인 표현을 빌린 것이다)'라고 의미를 두기에 이르렀다. 명백한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말이다.
이윽고 나는 운명을 두고 동전을 던지는 모의실험을 했다. 그러고는 시뮬레이터 훈련을 마치지 마자 5월 4일 또는 11일에 한국으로 가기 위한 비행기 티켓을 알아봤다(비행은 주 1회였다). 28인치 크기의 여행용 가방을 꺼내어 거실에 계속 펼쳐 두었다. 한국에 가져갈 물건들이 생각날 때마다 집어넣었다. 냉장고의 음식들을 소비했지만 새롭게 채우지는 않았다. 혹시나 갑자기 봉쇄가 될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비싸게 주고 산 샴푸가 무거워서 매일 가서 샤워하는 헬스장에 들고 다니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갖고 다니면서 여유 있게 짜내어 많은 거품을 내면서 사용했다. 어차피 한국에 가져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용할 수 있는 최대한을 쓰고 가려고 했다. 한국으로 갈 준비를 해두면 실제로 현실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한 행동들이다. 결국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갈 수 없었다. 한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경유 공항인 광저우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며 국제선이 전면 취소됐기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의 현재 상황과 나의 심리상태 등을 떠올려가며 고민했지만 어떤 것도 선택에 직접적인 '명분'을 주지 못했다.
브런치에 고민과 관련된 글을 쓰며 정리하다가 우연히 '다중회귀분석의 의사결정 방식으로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 현재의 감정 상태 때문인데, 동전 던지기가 알려준 '한국으로 복귀하고 싶다'는 감정이 단일 사건 때문에 생긴 즉흥적인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정성적 감정을 정량화하는 AHP기법 또한 조금 더 체계적이긴 하나, 현재의 감정만 계량화하는 방법이므로 한계가 있다고 깨달았다. 시계열(時系列)적인 사고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시계열 분석 기법 중 하나인 회귀분석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또 한 가지 장점은 '둘 중 하나의 선택'이라는 고민을 '기존의 목표가 약해지면 돌아가기로 함'으로 변형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즉,
중국에서 버티기(A)와 한국으로 복귀(B) 둘 중 한 가지 선택 → 중국에서 버티는 가치가 낮아지면(A-1) 자동으로 한국으로 복귀(B)
라는 방식으로 사고를 전환할 수 있었다. 이 방식을 선택한 이유를 좀 더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선택이 주는 복잡성 때문이다. 통계에서 사용하는 모델화 방식을 통하여 가급적 모형으로 만들어 최대한 단순화해 보고자 했다.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그룹화(독립변수화) 하고, 회귀식에서 종속변수에 미치는 영향을 보려고 하듯 현재의 부정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긍정의 요소를 찾으려 노력했다.
고민을 다양한 관점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과거나 미래의 '나(Myself)'라는 시계열적 관점과 타인의 관점이라는 입체적 시각화를 고려해 봤다.
이 과정에서 정의한 독립변수는 '특정한 사건이 있을 때, 그것을 대하는 감정'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자칫 어떤 한 사건에 감정이 집중되어 성급한 결정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주의하게 된다.
수학 공식을 쓰지 않고 논리만 가져오는 것이므로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이과의 방식을 빙자한 문과적 접근일 뿐이다.
참고로 회귀분석은 관찰된 연속형 변수들에 대해 종속변수와 독립변수들 간의 인과관계에 따른 선형적 수학모델 관계식을 구하고, 독립변수에 따라 종속변수를 예측하려는 것이다.
ㅇ 종속변수: 중국에서 오래 버티려는 의지(이하 '의지'). 중국에 이직하기 전부터 설정한 목표를 중심으로 한 사고로 전환했다.
ㅇ 독립변수: 업무환경, 중국 생활, 삶의 지향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하 '가족'). 종속변수가 정해지니 그에 영향을 미칠만한 요소로 그룹화가 가능해졌다. 그 전에는 이 생각, 저 생각이 잡다할 뿐이었다.
ㅇ 데이터: 2017년 중국에 이직한 이후로 매월 독립변수에 대한 만족도를 꾸준하게 기록해 왔고 그에 따른 결과가 다음의 수식을 완성시켰다고 '가정'한다. 실제로는 없는 데이터지만, 상황을 상상하여 과거를 고려하게 만든다.
ㅇ 회귀식: 의지=1.8(상수항) + 0.684X업무환경 + 0.435X중국생활 + 0.391X삶의 지향점 - 0.381X가족
☞ 회귀식 결과도 상상이므로 수식의 이해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독립변수 옆의 숫자들은 오래 버티려는 의지를 상승시키거나 하락시키는 상관관계를 나타내는데, 가상의 수식을 만드는 동안 과연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고민하게는 만들었다. 업무 환경이 개선되면 68.4%로 의지도 함께 올라갈 것으로 생각해 보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급여가 올라가면 중국에서 오래 버티려는 의지가 함께 올라갈 것을 상상하며 수치화해 본 것이다. 이에 따라 내가 생각하는 수준에서 각 독립변수별 중요도의 순서도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위와 같은 가상의 다중회귀분석을 실제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 각 독립변수와 의지에 대한 꾸준한 기록 데이터가 필요하다. 주기별로 삶을 평가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런 측정을 하는 자체가 삶을 고단하게 만든다.
실제로 한다고 해도, 독립변수 간 다중공선성이 높을 가능성이 있다. 예측 변수가 다른 예측 변수와 상관 정도가 높아,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위의 가정을 통해 현 상황과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을 독립변수로 그룹화할 수 있었다. 현재 대부분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장점이 있는지 찾기 위해 노력했다. 회귀분석은 어떤 변수가 좋을 때 함께 좋아지는지, 나쁠 때 함께 나빠지는지를 보는 상관관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최대한 버티기 위한 변수로 정의한 업무환경, 중국생활, 삶의 지향점, 가족의 정리는 다음 편에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