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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넨브릴레 Apr 03. 2022

퇴근, 자기 관리의 시작

피곤하지 않은 퇴근은 없다

공항에서 출발해 승무원용 셔틀버스를 타고 회사로 돌아왔다. 버스에서 내리며 모든 Crew들과 인사를 나누고 호텔 방으로 갔다. 

짐을 정리해 집으로 갈 일이 남았다. 물을 데워 마실 전기냄비, 네이버 TV 등을 볼 수 있는 미니 TV box, 전기장판, 헤어드라이어 등 호텔 생활을 돕는 잡동사니들을 꽤 가지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호텔에 비누를 비치하지 않아 개인이 갖고 다녀야 한다. 비상용 유니폼도 한 벌 더 있다. 짐 싸는 데만 20분 정도 걸렸다. 비행 가방을 포함해 총 세 개의 가방과 베개까지 네 개의 짐이 나왔다. 나는 경추베개를 쓰기 위해 개인 베개를 갖고 있는데, 회사에서 내가 유일한 듯하다. 가방들과 베개는 호텔 짐 보관 창고에 맡긴다. 

짐 보관소. 비행 가방들이 많다. 베개는 환한 미소로 힐링받으라고 일부러 가능하면 잘 보이는 곳에 둔다. 


퇴근, 다시 시작되는 여정

집에 가기 위해 회사를 나섰다. 코로나 전, 급여를 많이 받을 때는 우버와 같은 디디라는 콜 서비스를 이용해 퇴근했다. 회사에서 집까지 25분 정도 걸리는데 한화로 약 11,000원 정도 나온다. 고속도로를 24km 달리는 금액치고 저렴한 비용이다.  

예전에 비해 급여가 확연히 낮아진 요즘은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한다.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되는데 요금이 1,000원 정도다.

조종사의 일. 일단 공중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피곤하다. 오늘 지연 시간을 포함에 7시간을 공중에 있었다. 피곤에 지친 몸을 다시 버스에 싣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급여 상황이 바뀌었으니 적응하는 수밖에...


회사 정문을 나서면서 보면 대각선 건너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순환의 종점이라 기사님이 버스를 세워두고 한동안 쉬다가 출발한다. 정문을 나서는데 저 멀리 버스가 서 있는 것이 보이면 아무래도 뛰게 된다. 

회사 정문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정거장


헐레벌떡 버스에 도착했는데 기사님이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도 여유가 생겼다. 일단 버스 외부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해서 '나는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는 표시를 기사님께 보여주고 버스에 탑승 후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내려 기사님과 나란히 서 있었다. 오늘 비행기에서 너무 오래 앉아 있었으므로 버스가 출발하기 전까지만이라도 서있고 싶었다. 그렇다고 서서 버스를 타고 가기에는 피로가 심했다.

  

문득 20대로 보이는 여자가 와서는 기사님께 "803번 버스는 어디서 타냐?"라고 묻는다. 우리는 1080번 버스다. 기사님이 "저~ 앞에서 기다리면 온다"라고 한 것 같다. 그들은 중국어로 대화했고 나는 못 알아듣는다. 다만 숫자는 알아들을 수 있어 대충 짐작했다. 그들의 대화가 길어졌다. 공항 어쩌고 하는 것을 보니 같은 버스지만 공항으로 향하는 것과 시내로 향하는 것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803번 버스는 이 정류장에 공항으로 가는 버스와 시내로 가는 버스가 모두 정차한다. 기사님이 왼 팔을 들어 멀리 가리키며, "여기에서 타면 시내로 가고 저기에서 타면 공항으로 간다"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조금 후, 이번엔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와서는 또 '803번'을 이야기한다. 대화가 길어지고 '공항' 얘기가 재차 나온다. 기사님이 왼팔을 들어 가리키며 한동안 같은 설명을 하는 것 같았다. 

남자가 지나가고 나서, 나는 기사님과 눈을 마주치며 웃어줬다. 기사님이 옅은 미소를 띠며 나에게 중국어로 뭐라 뭐라 했다. 담배를 피우느라 그의 마스크는 턱에 있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여 줬다. 문장 어미가 올림형이 아니므로 나에게 질문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교감을 하고 있다는 행위로 보이도록 했다.  


버스도 종점에서, 지하철도 종점에서 갈아타기 때문에 계속 의자에 앉아서 갈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한 점 외에, '버스+지하철' 여정의 또 다른 장점이다.  


오전까지만 해도 근사하게 유니폼을 입고 민간 항공기를 조종했다. 날씨 때문에 연료를 계산해 가며 의사 결정해야 했고 다행히 목적지 공항에 잘 내렸다. 뒤에서는 "퍼펙트", 옆에서는 "나이스"하는 소리를 들으며 뿌듯하게 비행을 마쳤었다. 문득, 만 원 아끼려고 빨랫감 잔뜩 든 백팩을 무릎 위에 두고 버스에 앉아 가는 모습이 '초라한 행색'으로 여겨졌다. 인생은 생각하기 나름이므로 매 순간 긍정하려고 하는 편인데, 피곤해서 그랬는지 그 순간만큼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왠지 오늘 하루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관리의 시작

집에 도착하니 오후 4시 40분쯤 되었다. 알람 소리를 듣고 깬 지 12시간 하고도 40분이 지난 시각이었다. 12시에 기내에서 대략 먹은 점심 탓에 배가 고팠다. 견과류와 작은 과자 한 봉지, 손가락 만한 키커 초콜릿 하나를 허겁지겁 먹었다. 평소 건강을 생각해 과자를 거의 먹지 않는다.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고, 바로 헬스장에 가려고 했기 때문에 에너지가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먹었다.  


장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 오면 정말 파김치가 되는 느낌이다. 머리도 지끈하다. 그래서 난 브런치에 글을 쓰거나, 유튜브 하는 조종사나 승무원들을 보면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그 모든 피곤함을 극복하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행 후에는 자극적인 음식과 휴식이 엄청나게 당긴다. 피로감이라는 스트레스가 먹을 것이라는 보상을 요구하는 듯하다. 매번 느끼는 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낭패 보기 쉽다. 

타 도시에서 하루 이상 머무르다가 오는 경우(Layover) 호텔에서 묵는데, 대부분 아침 식사가 뷔페식이다. 비행 후 피로와 다양한 후식을 포함한 메뉴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폭식하기 쉽게 만든다. 

오후 비행을 위한 출근 전, 좋은 컨디션 유지를 위해 늘 한 시간 정도 잠을 자고 나간다. 스케줄이 다양하다 보니 식사 후 바로 자고 출근하는 경우도 있다. 젊었을 때 평생 몸무게가 74kg 정도였는데, 조종사가 된 이후 관리의 실패로 83kg까지 늘었다. 허리둘레 36인치,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235mg/dl까지 올라갔었다. 


운동은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할 일이 없으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진다. 바벨, 덤벨, 트레드밀과 함께 하는 시간은 지루하고 피곤하지만, 그런 하기 싫은 일을 마치고 나면 상대적 행복감이 생긴다. 오늘 같이 힘든 날에 조금 더 힘을 내 운동하고 나면 지끈했던 머리가 오히려 한결 나아진다.  


운동 후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로 오트밀에 건포도 집게손가락 한 집게와 바나나 하나를 넣어 우유와 함께 먹었다. 건강을 위한 식단이 아니다. 뭔가 해 먹기 귀찮아서 선택한 식단이다. 


피곤했지만 컴퓨터를 켜고 브런치를 열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늘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게 될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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