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은 비행과 관련한 설명이 많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랜딩에 대해 주로 언급할 예정이다. 여건이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다.
기상 악화
목적지 공항에 다다랐는데 관제사가 Circling(원선회,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도는 비행)을 시켰다. 오늘 세 번째 '룰루랄라'가 입가에 은은한 미소로 번졌다. Circling은 시간을 끌기 위한 비행 방법으로, '비행시간 연장 = 급여 상승'이기 때문이다(혹시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시간을 일부러 지연시키지는 않는다. 어떤 상황이 되었을 때 가질 수 있는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내면을 표현하고자 언급하는 것이다).
이윽고 우리는 공항 접근 관제사(Approach Air Traffic Controler)에게 교신이 넘겨졌고 활주로 접근 구역까지 관제사에 의해 비행 방향을 제공받았다(Radar Vectoring). 갑자기 어느 항공기로부터 Go-around(복행, 활주로에 접근하다가 랜딩 하지 못하고 재상승) 중이라는 교신이 들려왔다. 활주로가 보이면 내리고 보이지 않으면 재상승해야 하는 최종 결심 고도(Minimum Decision Altitude(Hight), 활주로로부터 200ft 높이)에 도달했는데 활주로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어?! 이건 아닌데...' 비행시간이 길어지는 건 좋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는 것은 반갑지 않다.
목적지 공항 날씨가 공중에서 활주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위 사진은 flightaware 사이트(https://ko.flightaware.com/)에서 확인했던 그날, 우리의 실제 비행경로다(연두색).
원선회1은 제자리에서 왼편으로 원선회하는 Circling을 지시받은 곳이다. 다섯 번을 도는 동안 바람에 밀려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선회2는 목적지 공항과 가까운 지점이었다. 목적 공항에 다다랐는데도 원선회를 해야 한다는 것은 불안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특히 이 지점에서 다른 항공기가 Go-around 하는 교신을 실시간으로 듣고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인지했다.
연료가 5,600kg이 남았는데 여전히 공항에 접근하지 못하고 Circling 중이었다. 4,000kg이 되면 무조건 대체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다. Circling은 시간당 2,200kg 정도의 연료를 사용한다. 앞으로 30분 정도는 더 Circling 하면서 안개가 걷히는지 지켜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연료가 빠듯한 상태에서 대체공항으로 가게 되면 혹시나 그곳에서 Go-around 할 연료가 부족해진다. 대체공항은 날씨가 좋은 것으로 예보되고 있었다. 날씨 등의 변수가 없다면 평소 거의 Go-around를 하지 않지만,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만의 하나'인 경우를 감안해 연료 상황에 조금 더 여유를 주기로 했다. 30분이 아닌 20분 정도 후에 대체공항으로 갈지 결정하자는 의견을 조종석에 함께 있는 중국 기장, 부기장과 나눴다. 의사결정 시간을 조금 앞당긴 것이다.
활주로를 연장한 직선 위에서 활주로를 바라보며 접근하는 선을 Approach Final(마지막 접근 단계)이라고 한다(위의 사진 중, 목적지 마지막 빨간 선). 우리는 원선회2 지점에 있었고, Final 주변에 세 대의 항공기가 접근하다 말고 Circling 중이었다. 기상 예보는 오전 9시가 넘으면 나아질 것이라고 했는데 막상 9시가 되자 다시 10시 정도에 나아질 것 같다고 했다.
관제사가 각 비행기들에게 "Say, intention"이라며 의도를 물었다. 여기서 의도라는 것은,
계속 Circling을 하면서 날씨가 나아지기를 기다릴 것인지,
랜딩을 위한 어프로치 접근을 시도할 것인지,
대체공항으로 갈 것인지
에 대한 결정이다. 우리는 공항 접근의 네 번째 순서였다. 앞선 세 대의 비행기가 공항에 내려야 우리 차례가 온다는 뜻이다. 이미 Final에 있는 첫 번째 비행기가 접근을 하겠다고 했고, 두 번째, 세 번째 비행기들은 계속 Circling 하겠다고 했다. 나는 중국 기장과 부기장에게 1회의 접근 시도 후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면 대체공항으로 가자고 의견을 주었다. 그들도 즉시 동의했다. 관제사에게 공항으로 접근하겠다고 알렸고, 첫 번째 비행기에 이어 두 번째로 공항 접근 허가를 받았다. 각 비행기의 의도된 판단에 따라 우리의 접근 순서가 네 번째에서 두 번째로 바뀌었다.
랜딩 준비(Prepare for landing)
나는 랜딩 때 1,000피트에서 Auto Pilot(자동조종장치)을 해제하고 수동 조작(Manual Control)에 미리 적응한다. 몇 분 전, 다른 비행기가 Go-around를 했었으므로 이번 랜딩에서 우리의 Go-around 확률이 80% 이상이라고 판단했다. Auto Pilot을 결심 고도 직전까지 유지하다가 Go-around 하게 되면 그대로 Auto Go-around System을 이용하겠다고 미리 부기장에게 얘기했다. 스페셜 브리핑(Special briefing)을 한 것이다.
이전 편에서 이륙 브리핑과 체크리스트가 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랜딩 준비 단계에서의 브리핑도 사소한 실수나 사고를 방지하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때, 되도록 나의 비행기 조작 의도를 부기장과 미리 공유하는 것이 좋다.
부기장은 회사의 Auto Pilot 해제 마지노선이 결심 고도라고 조언했다. 혹시나 랜딩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결심 고도에서 Auto pilot을 미처 해제하지 못할 경우 규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다음 부분은 비행 절차의 구체적인 이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설명을 위한 것이다. 절차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부기장의 의견은 Single auto pilot일 때는 맞는 말이지만 우리는 Auto go-around를 위해 Dual auto pilot을 이용할 예정이다. 지상으로부터 50피트까지 Auto유지가 가능하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랜딩 직전, 우리에게는 비행기 자동 조종 장치가 두 가지 있다.
Go-around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다. 활주로가 보이지 않는 상황과 Go-around 상황에서는 자동 조종 장치를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나는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가능하면 활주로가 보이기 직전까지 자동 조종 장치를 이용하겠다고 부기장에게 브리핑했다.
끝까지 오토 랜딩 할 것이 아니라면 미리 자동 조종 장치를 해제해야 하는데, 최대한 늦게 해제하는 시점이 규정으로 정해져 있다.
나는 자동 조종 장치 해제 시점이 각각 다르다고 알고 있고, 부기장은 같다고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시점보다 부기장이 알고 있는 시점이 더 빨리 Auto를 풀어야 한다(매뉴얼 이해 차이).
내가 평소 랜딩 때 1,000피트에서 자동 조종 장치를 해제한다고 한 것처럼 관습적으로 대개 미리 해제하므로, 결심 고도까지 Auto를 유지하는 것이 어색할 수 있다.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이라 뭔가 안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규정 이해에 대해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랜딩이 임박했으므로 설명 없이 일단 보수적인 부기장의 의견에 동의하기로 했다. "알았어. 그냥 500피트에서 Auto를 풀고 접근할게"라며 부기장의 의견보다 더 빨리 Auto를 푸는 것으로 의도를 변경했다. 의도를 사전에 공유하길 잘했다.
2,100피트 상공을 통과할 즈음에 앞선 비행기가 랜딩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1,500피트부터 우리도 안개에 의해 모든 시야가 가려져 있었다. 500피트부터는 앞서 브리핑한 대로 자동조종장치를 해제하고 수동 조작하며 안개를 헤쳐 강하했다. 점점 결심 고도가 다가왔다. 긴장되었다. 선행 비행기가 결심 고도 전에 활주로를 볼 수 있었더라도 우리는 보지 못할 경우를 예상해야 한다. 평소보다 의도적으로 눈동자를 더욱 빈번히 굴렸다. 조종석 안의 계기와 밖의 시야를 부지런히 번갈아 보기 위함이었다.
이 공항은 조금 특이한 점이 있는데 지상으로부터 300~400피트까지는 통상의 파워보다 적은 파워가 요구되었다가 랜딩 직전 보통의 파워가 요구된다. 대개 뒷바람을 받고 접근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앞바람으로 바뀌는 경우가 그렇다. 보통은 엔진의 N1이라는 계기를 56%~60% 사이에 두고 접근하게 되는데(비행기 무게와 바람의 세기 등에 따라 달라진다) 결심 고도(200피트)가 얼마 남지 않은 400피트에 도달했는데도 48% 파워에 랜딩 속도가 맞았다. 그대로 내렸다가는 마지막에 에너지 부족으로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을 것으로 예상됐다. 54% 정도로 파워를 높이고 추이를 지켜봤다. 그나마도 평소에 비하면 약간 낮은 수준이다. 속도가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조금 더 추이를 보려는데 부기장이 "Speed!"라며 속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경고를 알려준다. 나는 "Correction!"이라며 한국어로는 "수정하고 있어"의 의미이자 속마음으로는 '알고 있어 쨔샤'라고 Callout 했다.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속도가 조금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추세를 좀 더 지켜볼만하지 않아?"라고 상의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랜딩 직전이라 "Correction"이라고 대응하고 계속 집중한다.
이때, 부기장의 경고에 반드시 대응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기장이 Control에 관여할 수 있다.
속도를 줄이기 위해 파워를 살짝 52% 정도로 빼준다. 랜딩과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에 많이 빼기가 부담된다. 15초 이내에 랜딩 예정이라 오히려 속도가 너무 줄어들면 수정할 여유가 많지 않다. 50피트부터는 창밖을 보며 비행기의 랜딩 자세(Flare)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계기를 볼 시간이 5초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감을 믿고 유지했다. 갑자기 뒤에 앉아 있던 중국 기장이 "Approach light insight(어프로치 불빛이 보여)!"라고 외쳤다. 정말 뿌연 안갯속에서 딱 Light만 보였다. 곧바로 "Minimum"하는 비행기의 자동 음성이 들렸다. 나는 "Continue"이라고 Callout 했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우리는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앞선 스페셜 브리핑 때, 중간 단계에서 유독 파워가 적은 공항 특성을 미리 부기장과 공유했다면 Go-around를 하느냐 마냐 하는 마지막 순간에, 부기장의 경고 없이 속도 추세를 함께 지켜볼만했다. 결심 고도에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기장도 속도 경고를 주느라 순간 시야가 비행기 안쪽으로 집중됐고 뒤에 앉아 있던 기장이 먼저 Approach light를 본 것이다.
스페셜 브리핑, 말 그대로 특이사항이나 나의 의도를 사전에 공유하는 것인데 그만큼 상호 협력하는 비행을 만들어주므로 매우 중요하다.
랜딩 Landing
여전히 공중에 있는 상황이다. 진입 활주로의 끝단에 들어서면서 비행기의 50피트 자동 Callout이 시작되었다. 50피트부터 매 10피트마다 나온다. "어떤 때는 소리로 랜딩 해요"라고 할 정도로 랜딩에 있어 중요한 정보다.
나는 40피트에서 조종간을 당김 하는데(Initial flare), 이 비행기는 40피트 Callout이 안 나오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오늘따라 고려할 것이 많았다. 소리로 50피트를 듣고 한 박자를 세고 살짝 당김을 주고 놓았다. 30피트에서 비행기가 생각보다 가라앉지 않았다. 계기를 볼 겨를이 없었다. 에너지가 많아서 지면을 향해 내려가는 속도가 느린 것으로 추정했다. 정면의 창 밖으로 활주로 저 멀리 보고 있으면 비행기가 가라앉는지, 그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 느껴진다. 랜딩 하려면 어쨌든 비행기는 지면을 향해 내려가야 한다. 보통은 20피트에서 파워를 빼기 시작하는데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여 30피트에서 파워를 살짝 빼주고 다시 20피트부터 남은 파워를 빼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10피트에서 비행기 강하가 갑자기 빨라졌다. 순식간에 에너지가 뭉탱이로 사라진 느낌이었다. 이러다가는 '쿵!'하고 지면에 닿을 찰나였다. 순간적으로 조종간을 채듯이 당겼다가 놔주고 다시 살짝 당김만 유지했다. 비행기가 스르륵 활주로에 닿았다. 50피트부터는 대략 9초 이내에 랜딩이 마무리된다. 오늘은 특히나 랜딩에 대한 집중도가 높았기 때문에 때문에 활주로가 보였던 순간부터 어떻게 내렸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안개 때문에 최종 결심 고도 직전에 활주로가 보이는 경우, 다음과 같은 어려움이 있다.
직전까지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므로 고개를 숙이고 계기에 의존해 활주로 축선과 고도를 맞추며 내려가게 된다. 시선이 아래로 향하고 있는 고개를 활주로를 보려고 드는 순간, 몸통도 함께 뒤로 젖혀질 수 있는데 조종간을 잡고 있는 팔이 미세하게라도 당기는 힘을 주게 되기 쉽다. 랜딩에 임박할수록 조종간의 작은 변화에도 비행기가 높아지거나 낮아지게 된다. 평소보다 집중력이 더 요구되는 이유다.
랜딩 후 활주로를 빠져나가는데 뒤에서 중국 기장은 "퍼펙트(Perfect)"를 두 차례 외쳤고 부기장은 왼손으로 어퍼컷을 만들어 아래로 내리찍으며 "나이스"를 외쳤다. 운이 좋아 결국 내렸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고, "잘 내렸다"라는 무언의 말을 전달하는 것 같았다.
물론 운이 좋았던 부분이 더 크지만 착륙 시도하기로 결정한 때부터 부드러운 접지까지 전체적인 상황이 적절히 맞아떨어진 기분이었다. 속으로는 어깨가 으쓱 올라갔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차분히 관제사가 주는 지상 도로 이동 순서를 부기장과 함께 복창하면서 주기장으로 이동했다.
여기까지 읽느라 고생 많으셨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 플랫폼을 이용한다. 욕심 같아서는 이미지를 전혀 넣지 않고도 사람들이 잘 이해하고 감동할 수 있는 글을 써내고 싶다. 비행 관련 분야는 텍스트만으로 독자를 이해시키고자 하는 곳에 벽을 세운다. 어쩔 수 없이 오늘 랜딩과 유사한 상황으로 1분여 길이의 동영상을 만들어 보았다.
랜딩은 항상 긴장된다. 오늘은 더 긴장이 됐다. 내리고 나서야 심장박동 수가 꽤 치솟았음을 알았다. 그래도 가급적 차분해 보이려고 노력했다. 동영상 말미에도 언급하지만 내가 긴장한 모습을 보이면 옆에서는 더 긴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장으로서, 모든 랜딩을 잘 해내야 하겠지만, 이런 특별한 상황에선 특히 차분하게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승객들이 모두 내린 후, 조종실을 나왔다. 승무원들과 "신쿠(辛苦)"라고 하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넬 때까지도 약간의 뿌듯함이 어깨에 걸려 있었다.
승무원이 "점심 식사는 언제 먹을 거냐?"라는 일상의 첫 대화를 주었을 때, 조금 전까지 갖고 있던 '특별한 상황을 잘 극복해 냈다는 뿌듯함'은 사라졌다.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지도 않았고, 이전까지의 '특별한 상황'은 조종실에 있던 우리 외에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심한 안개 때문에 공중에서 Circling을 하는 바람에 결국 비행시간이 30분 정도 더 나왔다. 조종실을 나와 짐 정리를 하는 동안, 한 동료 기장님이 메신저로 톡을 보내오셨다. 내 비행을 실시간으로 확인하시고는 "비행시간 30분 더 벌었네. 밥 사세요"라고 하셨다. "네~ 살게요^^"라고 회신했다.
나만 비행시간에 민감한 게 아님을 한 번 더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