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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넨브릴레 Mar 30. 2022

비행시간과 급여

애초에 운이란 것은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비행시간과 급여

우리 회사 외국인 조종사들은 실제 비행한 시간에 비례해 급여가 계산된다. 돌발된 사건이 비행시간을 길어지게 하면 기분이 좋다. 지상에서 이동할 때는 경우에 따라 평소보다 10분이 늘어나기도 하는데, 하늘에서는 다른 비행기와의 교통 흐름 때문에 3~4분 이상 늘리기가 쉽지 않다. 지상이동 때 서두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같은 회사지만 중국인 조종사들은 특정 노선마다 실제 비행시간과 상관없이 정해진 급여를 받는다. 대체로 빨리 다니는 것을 선호한다.  

한편, 중국의 대형 항공사 중 타 항공사에 비해 조종사의 급여가 약간 낮은 수준인 곳이 있다. 비행 구간마다 정해진 시간으로 환산하고 그 근무 시간으로 급여를 받는다. 각 구간의 비행시간은 최근 3개월간 실제로 걸린 시간의 평균을 기초로 한다. 그들은 지상 이동에서나 공중 이동에서 눈에 띄게 천천히 다닌다. 급여에 반영되는 평균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다. 내가 그들의 급여 구조를 알게 된 것은 "왜 저 항공사는 매번 느리게 다니지?"라고 푸념했을 때 부기장이 이유를 알려줬기 때문이다.  
비행시간으로 급여가 늘거나 줄어들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니란 얘기다.  



출발 지연

186석이 만석인 보잉 737-800 비행기 조종실 안에서 출발 준비를 마쳐갈 무렵이었다. 사무장이 들어와 예약 승객 125명이 탑승 완료했다고 보고했다. 나는 중국 생활 6년 차에 그나마 할 수 있는 중국어인 "크어이 꽌먼(可以关门)"으로 대답했다. '엄지척'도 보였다. 비행기 문을 닫아도 된다는 뜻이다. 

오늘은 오전 6시 10분 이륙 편이다. 예약 승객이 모두 탑승했든 그렇지 않든 15분 전인 5시 55분에 마감한다. 게이트에 56분에 도착하면 탑승할 수 없다는 얘기다. 중국 비행의 경우, 마감 시간이 될 때까지 모든 승객이 오지 않는 경우가 체감상 90%를 넘는다. 특히나 새벽 출발 편은 더 그렇다.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날이 오늘이었다. 예약 승객 수가 적어서였는지 5시 45분 즈음에 탑승이 완료됐다. 지상 이동을 천천히 해도 충분히 정시에 이륙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륙 후 빠른 속도를 내지 않아도 될 상황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잠시 후 사무장이 다시 들어오더니 62세 승객의 뇌혈관이 막혔다고 했다. 물론 중국어로 이야기했고 부기장이 나에게 'Brain Injury'라고 했다가 뭔가 칭글리쉬(Chinglish, 중국식 영어)라고 느꼈는지 사전을 찾아 다시 알려주었다(사실 내게도 'Brain Injury'가 어려운 의학용어보다 차라리 이해하기 쉽다). 사무장의 요청으로 공항 의사를 불렀다. 생각하지 못한 지연이 발생했다. 


6시경 비행기에 도착한 의사는 "이 환자는 장시간 비행하면 안 됩니다."라고 진단했다. 우리(나, 중국 기장·부기장)는 의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고, 사무장에게 해당 승객을 내리도록 했다. 10분이 지나도 사무장으로부터 조치에 대한 회신이 없어 물어보니 승객이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으며 완강히 버틴다고 했다. 6시 15분이 되었다. 중국 기장이 "우리는 의사가 아니니 회사 운영본부에 연락해서 지침에 따르자"라고 했다. 25분경 회사로부터 승객을 태우고 가도 된다는 회신이 왔다. 모든 일은 처리됐고 이제 출발하면 되었지만 나의 비행시간 '룰루랄라'의 기대는 '쓱싹쓱싹' 지워졌다. 급여로 산정되는 비행시간이란 비행기 시동을 켠 후, 스스로 이동을 시작한 시간으로부터 비행기가 완전히 정지하여 시동을 끈 시간까지이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운항에 안전한지 확인하고, 각종 스위치를 준비시키고, 환자가 발생하여 의사 결정해야 했지만, 급여 산정 시간에 포함되지 않고 있었을뿐더러 지연이 됐기 때문에 서둘러 앞으로의 시간들을 줄여나가야 했다.  

   

딜리버리(Delivery, 비행 허가를 주는 곳) 관제사(ATC, Air Traffic Controller)에게 비행 준비가 되었다고 보고하자 그는 이륙 활주로가 바뀌었다는 정보를 주었다. 공항에는 활주로가 2개 있다. 오전 6시 이전에는 하나의 활주로만 사용하는데 우리가 있는 주기장에서 멀리 있는 활주로다. 이동에 10분~15분이 소요된다. 우리의 게이트 출발이 6시를 넘기면서 이륙 활주로가 가까운 곳으로 변경됐다. 8분가량이 단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ㅠ

이륙 방향도 남서 방향에서 북동 방향으로 바뀌었다. 목적지는 북동 방향이었다. 남서 방향으로 이륙하는 것은 목적지 반대 방향이다.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남서 방향 이륙이 시간이 더 걸리고 급여에 좀 더 보템이 된다는 뜻이다. 아래 그림은 비행계기 중 하나다. 'MIZ'라는 곳에 도착하는 시각이 처음(좌측 또는 윗 그림)에는 5시 03분이었다가 변경된 후(우측 또는 아래 그림) 4시 57분으로 6분이 짧아진 것을 볼 수 있다(시물레이션이므로 실제 시각은 아니다. 시간이 줄었다는 것만 참조하자).


아뿔싸! 안타까웠지만 '오늘은 그러한 운인가 보다'라며 체념한다. 


'운이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한 이유는 이렇다. 엄밀히 말하면 환자가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사무장이 보고했을 때는 누군가 갑자기 뇌혈관이 막힌 것으로 이해했는데 아니었다. 62세 승객은 탑승 전부터 원래 본인이 갖고 있는 증상을 승무원에게 설명했고, 비행기표를 받을 때 비행 중 발생될 위험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각서까지 작성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사무장이 공항 의사를 요청한 것이다. 의사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고, 기장인 나는 전·후 사정을 다 알지 못한 채 승객을 내리도록 했다. 승객은 못 내리겠다고 버텼고, 회사는 그럼 태우고 가라고 했다. 

결과는 처음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지상직원(각서 작성) -> 사무장 -> 의사 -> 기장 -> 회사


와 같이 괜한 의사결정 주체가 계속 생기면서 굳이 지연되지 않아도 됐을 일이 지연된 것이었다. 


활주로에 접근하면서 보니 공항으로 내리려는 비행기가 랜딩 라이트를 밝게 비추며 멀리 공중에서 접근 중이었다. '저 비행기가 내린 조금 후에 이륙 활주로에 도착하면 관제사가 우리를 띄우기 전에 한 대를 더 내리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인 지상도로(Main Taxiway)에서 속도를 살짝 줄일까 하다가 그대로 20노트(37km/h)의 속도를 유지했다. '뭐, 우리가 더 빠르면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다. 나의 의지로 일부러 지연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이륙 활주로에 점점 거의 도달했는데, 예상외로 공중에서 내리고 있는 비행기는 아직도 접근 중이었다. 생각보다 멀리 있었지만 라이트가 밝아 가까워 보였던 것 같다. 가까스로 우리가 이륙 활주로에 도착하기 전, 내리는 비행기가 먼저 활주로에 닿았다. 교통 흐름상 한 대를 더 내리게 할 만했다. 우리를 기다리게 하면 급여에 2분 정도 추가된다. 

갑자기 타워(Tower, 활주로 담당) 관제사가 우리에게 이륙 준비됐냐고 물었다. 부기장은 나에게 묻지도 않고 '그렇다'는 의미의 "affirmative" 응답을 했고 나는 속으로 '에라이~'라고 하며 파워 레버를 올리며 그대로 활주로로 들어섰다. 

그전까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비행시간에 대한 나의 태도는 부기장 때 어느 기장님으로부터 "1분, 2분이 한 달간 모여 라면 한 박스가 된다."는 말을 듣고부터 달라졌다. 일부러 지연시키는 비행 조작을 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늘어날 상황이 생기면 은근히 기대한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압박

코로나로 인해 회사의 전체 비행 수가 현저히 줄었다. 하루에 보통 70여 편이었던 것이 지금은 4편~40편 사이를 오르내린다. 4편은 오타가 아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도시 전체가 봉쇄된 적이 있었는데 한 달 내내 하루 4편에 그쳤다. 모기지인 시안 공항이 폐쇄되었었으나, 그나마 다른 도시에서 출·도착하는 비행이 있었기에 하루 4편 운항이 가능했다. 

이는 회사의 조종사 수가 상대적으로 많아진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중국인 기장들 조차 비행시간이 현저히 줄어 급여가 적어졌다. 일부 수당까지 삭감당하자 "우리도 비행을 못하는데 외국인 기장들이 왜 필요하냐?"는 아우성이 나왔다. 회사는 작아진 비행시간 파이(Pie)를 중국인 기장들에게 더 떼 줄 수밖에 없었고, 외국인인 나는 더 고난이다.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매달 생활비 380만 원, 따로 살고 계시는 어머니께 50만 원을 보내드린다. 중국에서 지내는 동안 교통비, 식료품비, 용돈 등으로 매월 100만 원 정도 지출한다. 작년 11월부터 1월까지 비행이 없어 매월 기본급 250만 원을 받았다. 6개월에 한 번 보너스(Safety bonus, 비행 실수가 없으면 준다)가 나오지만 중국 집세로 지출된다. 대출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그러할 '운'이란 것에 대하여

당연한 얘기지만 경제적 문제가 압박이 되는 것은 맞다. 한 달에 20시간만 비행해도 빚 없는 생활이 가능한데, 코로나 이후, 비행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20시간이 안되다 보니 어떤 한 비행에서 우연히 통상의 시간보다 길게 비행하게 됐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으로 감정이 연결된다. 

오늘 승객 탑승이 빨라 '룰루랄라'했던 감정의 가치에 대해 살펴보자. 늘어나는 시간은 길어야 15분이다. 40불(USD) 정도로 환산된다. 앞서 말한 경제적 압박의 문제가 해결될 정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돈에 대한 우려가 '운'이 어떻다고 생각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나는 대부분 운이 없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렙은 '행운에 속지 마라(중앙 books)'에서, 손실로부터 오는 부정적 효과가 이익에서 얻는 긍정적 효과보다 2.5배의 강한 정도가 있다는 일부 심리학자의 분석을 소개한다. 사람들은 투자한 주식의 가격이 오를 때 느끼는 기쁨보다, 내릴 때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작위 사건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도 탈진하게 되고, 잇달아 겪는 고통 때문에 감정도 메말라버린다고 이야기한다. 

비행을 하다 보면 비행시간을 늘리거나 줄이는 우연한 사건이 불규칙하게 발생한다. 통계적으로 정규 분포할 만큼의 시간을 비행하고, 시간이 늘거나 줄어드는 각각의 사건이 발생할 확률은 같다고 가정해보자. 즐거움보다 실망이 2.5배가 크다면, 심리적으로는 시간이 줄어드는 사건이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여기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비행시간이 늘어날 수 있거나 줄어들 수 있다고 예상하게 되는 감정이 결과적으로는 '심리적 적자 상태'에 이르게 하여 무의식적으로 '나는 대개 운이 좋지 않다'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다.

  

당연히 이는 이성적으로 불필요한 생각이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은 존재다. 기대하지 못한 빠른 보딩으로 즐거웠다가 지연되지 않아도 될 이유로 지연되어 버린 상황에 운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도 완전하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음을 인정한다. 이 점을 상기하며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의도적으로 생각의 반전을 일으켜 보려고 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까지 '운이 없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에 대한 극복에 집중하고 희망에 대비하려고 노력해 왔다.  


긍정으로 생각하려는 태도 때문인지 오늘이 결국 좋았던 '운'으로 작용하게 할 만한 일이 발생했다. 목적지 공항에 다다랐는데 관제사가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써클링(Circling)이라고 한다. 비행시간이 길어지는 의미다. 오늘 세 번째 '룰루랄라'가 입가에 은은한 미소로 번졌다(방금 불필요한 생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 ). 

사실, 긍정의 태도와 앞으로 발생하는 사건은 관련이 없는 독립 사건이다. 그저 의식적으로 나에게 좋았던 사건에 가치를 더 주고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고 기억에 남기려는 것이다. 애초에 운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써클링 하며 시간이 지연된 이유는 목적지 공항 날씨가 공중에서 활주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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