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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넨브릴레 Mar 29. 2022

비행 노선과 편조

외국인이자 용병으로 근무한다는 것

왕복비행 중 편도 근무만 가능한 노선

지금은 제주항공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있다. 그가 입사 초기였을 때는 회사 인지도가 높지 않았는데, 중고차를 개인 간 거래하여 구입하러 간 적이 있었단다. 그가 차주(車主)와 만났을 때 나눴던 대화의 일부다.


차주: 그런데 혹시 무슨 일 하세요?

친구: 조종사예요.

차주: 어?! 대한항공이요? 아니면 아시아나? 조종사를 뵙는 건 처음이에요. 신기하네요. 

친구: 아니요. 제주항공에 다녀요. 

차주: 아! 그럼 제주도에 사세요?

친구: 아니요. 서울에 살아요 (멋쩍은 웃음) 하하

   

제주항공에 다니면 제주도에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아닌 이유가 있다. 


비행기는 한 번 이륙하면 언젠가는 착륙해야 한다. 이·착륙한 것을 1회 비행한 것이라고 한다면, 조종사들은 하루에 보통 같은 비행기를 가지고 2회 또는 4회 비행하고 집이 있는 공항으로 돌아오게 된다. 제주항공 국내선의 경우, 2회 비행은 ①김포 ⇒ 제주, ②제주 ⇒ 김포 다. 4회는 ①김포 ⇒ 제주, ②제주 ⇒ 부산, ③부산 ⇒ 제주, ④제주 ⇒ 김포 의 노선이 있다. 

결국 시작점인 김포공항으로 돌아오는데 이를 모기지(母基地) 공항이라고 한다. 제주항공 국내선의 모기지는 김포공항이다. 제주항공에 근무하고 있는 조종사나 승무원들이 제주도에 살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날 반드시 모기지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보통 하룻밤 자고 모기지로 돌아온다. 영어로 Layover(기착), 중국어로 꿔예~(过夜, 밤을 지내다)라는 표현을 쓴다. 조종사는 2명이 근무할 경우, 법으로 24시간 내에 8시간을 초과해서 비행할 수 없다. 편도가 4시간을 넘는 경우 왕복비행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목적지에서 Layover 후 다음 날, 다른 조종사가 가져온 비행기를 받아서 되돌아온다. 그 다른 조종사는 그날 Layover 후 다음날 비행기를 받아서 되돌아가는 밀어내기식으로 운영한다. 


우리 회사는 중국 시안 셴양(西安咸阳) 공항이 모기지다. 오늘 노선은 왕복이 8시간을 넘지 않는다. 어느 도시에 갔다가 다시 시안으로 되돌아오는 왕복 비행이다. 그런데, 

갈 때는 내가 조종석에서 비행임무를 할 수 있는데, 올 때는 객실에서 승객의 신분으로 와야 한다.  

뭔가 이상하다. 왕복으로 비행임무가 모두 가능한 노선이었지만 지난겨울 초입부터 정책이 바뀌었다. 돌아오는 '하늘길(항로, 航路) 중 일부 지역을 군사적인 이유로 외국인에게 공개할 수 없어서 그렇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같은 하루를 근무해도 예전과 달리 급여를 반만 받게 되었다. 외국인인 우리를 힘들게 하는 정책이지만 정부의 결정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편조

오늘 조종사 편조는 나를 포함 기장 두 명과 부기장 한 명으로 구성되었다. 한 편조에 기장이 둘인 이유는 되돌아오는 편에서 내가 승객이 되어 조종실에서 빠지므로 중국인 기장과 부기장이 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설날에, 기장이 부기장과 승무원들에게 홍파오(红包)라는 붉은 봉투에 담은 세뱃돈을 준다. 오늘 함께 근무하는 중국인 기장은 1년 정도 부기장을 하다가 기장이 되었다. 그가 부기장이었을 때, 나와 설날에 함께 비행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에게 세뱃돈으로 300위안(한화 55,000원 정도)을 줬다. 그날 모든 Crew에게 준 세뱃돈은 한국 돈으로 총 37만 원 정도였다. 그랬던 부기장이 기장이 되었고, 중국 기장들의 팀장이 되었다. 비행하러 가기 위해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줄지어 다닐 때 그에게 나의 왼 손바닥을 천장이 보이도록 하고는 앞으로 펼치며, 그가 앞장서 가라는 예의를 보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비행 브리핑 후 세뱃돈을 건네는 모습을 기념한 사진 


우리 회사부기장 급은 F1에서 F8까지 있다. 영어 First Officer(부기장)의 F인 듯하다. 오늘 함께하는 부기장은 F5다. 중고참이란 뜻이다. 30대 중반으로 부기장 중에 나이가 많은 편이다. 회사에는 그보다 젊은 기장도 있다. 나와 처음 비행할 때는 수영 강사를 하다가 뒤늦게 조종사가 되었다고 자기소개를 하며 내 나이를 물어보기도 했었다. 나를 젊게 봐준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나이를 의식하는 듯한 느낌도 주는 질문이었다.

그는 비행 중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질문도 많이 한다. 훌륭한 태도다. 

다른 부기장들과 다르게 그는 공중에 올라가면 매번 '비행 조종'과 '관제사와의 교신'을 본인이 전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이럴 때 보면, 빨리 기장을 달고자 하는 지나친 욕심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많다고 하니 더 그럴 것 같은 편견이 생긴다. 

조종사의 직책은 기장, 부기장으로 나뉘지만 조종 업무는 PF(Pilot Flying), PM(Pilot Monitoring)으로 나뉜다. PF는 비행기 조종을, PM은 PF의 조종 행위를 모니터 하면서 관제사와 교신하는 역할을 한다. 한 사람이 PF가 되면 다른 사람은 반드시 PM이 되는데 대개 기장과 부기장이 번갈아 가며 한다. 한 사람이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할 경우 업무량이 많아진다. 과다한 무량은 안전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일을 헷갈리게 하거나 해야 할 조작을 빠뜨리게도 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부기장이 동시에 '비행 조종'과 '관제사와의 교신'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매번 허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본인이 다 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행동 때문에 '실력을 빨리 쌓고 싶은 일종의 욕심'으로 본 것이다.  

이러저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그는 비행 중 어떤 절차를 빼먹고 하지 않는 실수를 했다. F5에서 F1으로 강등되었었다. 오늘이 다시 F5로 복귀 후 첫 비행이다. 회사는 조종사들에게 그가 어떤 실수를 해서 어느 정도로 강등되었는지 적극적으로 알린다. 어느 조종사에게나 일어날 있는 일이기 때문에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 환기하는 것이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조종사는 안정과 여유로움이 필요한 직업임을 상기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편견일 수 있음을 인정한다. 좋은 방향으로 나에게 주는 주의 환기다. 오늘도 그는 비행기에서 공부를 했다. 나는 비록 그가 실수했던 이력이 있었더라도, 그의 노력하려는 태도 때문에 여전히 훌륭한 조종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승무원 다섯 명에 안전원 한 명이 포함되어 오늘 편조는 총 아홉 명이다. 대개 승무원은 네 명인데 오늘은 학생 승무원 한 명이 추가 편조되었다. 

그중, 남자 승무원이 두 명이다. 한국 항공사에 비해 우리 회사는 남자 승무원의 비율이 높다. 여승무원 한 명에 남승무원 세명과 비행하는 날이 제법 있다. 

남자 승무원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관계가 애매하다. 한 명은 사무장이고 다른 한 명은 원래 선임 사무장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되어 편조됐다.

조종사와 승무원과의 합동 브리핑 내용 중 지휘 순서를 알려주는 항목이 있다. 조종사 세 명의 지휘 순서와 승무원들 간의 지휘 순서를 각자의 입장에서 확인한다. 이것이 내가 그들 사이를 잠시 짚어본 이유다. 여느 조직에나 있을 듯한 선배가 아래 직책이 되는 그런 애매한 상황이다. 물론 업무적으로는 한 명뿐인 사무장이 승무원 지휘 권한을 갖는다. 

비행을 마치면 비행기에서 내린 후, 회사로 가기 위한 셔틀버스를 탄다. 비행기로부터 10여 미터 근방에서 버스가 기다리는데 사무장이 여자일 때, 남자 승무원 중 한 명이 가방을 대신 들고 버스에 타는 문화가 그들 사이에 있다. 오늘은 누구의 가방을 들어줄지 궁금하다. 비공식적으로 누가 더 높은 권한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한 것이다. 이런 경우 두 명 모두의 가방을 들어주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는 이런 보이지 않는 뒷얘기에 관심이 가는 성향인가 보다.  


안전원(安全员)은 한국에는 없는 제도다. 비행기 보안과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다. 기내뿐만 아니라 비행기 외부의 보안도 확인한다. GoPro 카메라를 몸에 지니고 있다. 언젠가 비행 중 승객끼리 주먹다툼을 해서 지연된 적이 있다. 안전원이 말리며 동영상을 찍었고 착륙 후 경찰에 인계했다. 나는 브리핑 때 늘 선조치 후보고 하라고 당부한다. 



책임 기장

모든 비행에는 책임 기장(责任机长, PIC; Pilot In Command)이 있다. 기장이 한 명인 편조는 자동으로 그 기장이 책임 기장이다. 오늘과 같이 기장이 두 명이면 둘 중 한 명이 책임 기장으로 임명된다. 

교관이 아니라면, 책임 기장이 조종실의 기장석에 앉아 비행 근무한다. 부기장석에는 나머지 기장 또는 부기장이 앉아 비행 근무하는데 오늘은 부기장이 역할을 할 예정이다. 

내가 근무할 수 있는, 목적지로 가는 첫 비행에 중국 기장이 책임 기장으로 지정되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비행 근무를 조종석이 아닌 뒤의 보조석에 앉아서 가야 한다는 뜻이다. 며칠 전, 스케줄이 처음 나왔을 때는 내가 책임 기장이었는데 하루 전에 갑자기 중국 기장으로 바뀌었다. 디스패처(Dispatcher, 비행계획서 등을 작성하는 담당자)가 재조정한 것이다. 

업무 흐름으로 보면 외국인 기장팀에서 디스패처에게 "캡틴 킴(Captain Kim)은 책임 기장이 가능하다"라고 알려준다. 디스패처가 재조정한 것으로 미루었을 때, '외국인 담당 팀장이나 디스패처가 중국 기장들 눈치 보느라 변경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 중, 보조석에 앉아 있어야 하는 일은 그들이 눈치를 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일이다. 중국인 기장을 뒷좌석에 앉히느니 외국인 기장을 앉히는 게 그들에게 덜 부담될 것 같다. 


지난주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다. 나는 비행 직전, 디스패처에게 전화해서 책임 기장을 나로 바꾸어 달라고 했었다. 그 과정에서 여러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을 관여하게 만들었다. 

특히, 본 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데도 외국인 기장을 담당하는 여직원으로부터 갑자기 나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팀장한테 확인했더니 그냥 네가 책임 기장이 아닌 상태로 다녀오래"라고 했다. 여직원은 "조종석에 앉아 가든 뒷좌석에 앉아 가든 급여는 똑같다."라고도 했다. 마침 나도 팀장에게 연락 중이었는데, 팀장이 나에게는 "책임 기장을 너로 바꿔서 다녀와"라고 하는 중이었다.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그냥 다녀오라고 하기 위해 여직원이 대충 거짓말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것이 선한 거짓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굳이 여러 사람을 관여하게 해서 회사에 뭔가 일이 생긴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행동이 나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가끔 회사 생활에서 다소 불공정한 일이 생기곤 하는데, 불공정함으로 여겨지는 것 나의 기준이지 전체의 기준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한국에도 외국인 조종사가 있다. 배려나 우선순위가 불규칙하게 주어질 때, 아무래도 외국인 조종사보다는 한국인 조종사를 더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여기는 중국이다. 같은 논리로 중국 조종사에게 공정의 기울기가 조금 더 치우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 아니,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하다.    

조종석의 어디에 앉아서 가든 받는 급여가 동일한 것도 맞는 말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같은 돈 줄 테니 너는 일은 하지 말고 그냥 사무실에 앉아만 있어"라고 하는 것 같아 비행 중 조종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것이 싫을 뿐이다. 


며칠 전의 경험으로, 오늘은 처음부터 나를 책임 기장으로 재변경하는 것을 포기했다. 조종석 뒷자리에 앉아 가자는 생각으로 '탱자탱자' 회사에 왔다. 팔짱 끼고 뒤에 앉아서 비행 잘하고 있는지 보면서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책임 기장이 아닌 줄 알고 있었으면서 전 날, 평소와 같이 충분한 잠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 이유는 무얼까? 말 그대로 '루틴'이기 때문이다.   



반전이 주는 소소한 행복

오늘은 비행(공중에 떠 있는) 시간만 왕복 6시간 30분 정도 되는 스케줄이다. 올 때 승객으로 오는 것도 자리가 불편해 힘든데, 갈 때부터 조종석의 좁고 불편한 뒤편에 앉아 가는 게 여간 곤욕이 아니다.  


매 비행 편에 대해 기장, 부기장들이 비행 가기 전 준비를 잘하고 있는지 검열하는 담당자들이 있다. 담당자는 매일 당직처럼 지정되는데 보통 시니어 기장들이 한다. 마침 오늘 당번은 외국인기장팀 팀장이었다. 

비행 준비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도중에 승무원과 합동 브리핑 시간이 되어 중국인 기장이 책임 기장으로서 브리핑을 시작했다. 대뜸 검열을 위해 함께 있던 팀장이 나에게 "왜 네가 책임 기장이 아니야?"라고 물었다. 당연히 내가 책임 기장인 줄 알았던 것 같다. 나는 "나도 몰라! 스케줄 나올 때만 해도 내가 책임 기장이었는데 어제 디스패처가 그렇게 바꿨어"라고 대답했다. 팀장이 즉시 디스패처에게 전화하더니 나를 책임 기장으로 변경해 줬다. 

이렇게 쉬웠다니! 

팀장이 중국 기장들 눈치 본다는 것은 나의 '뇌피셜'이었나 보다. 그 사람의 인성이 그랬든 직책 때문에 그랬든, 적어도 우리를 챙겨 주는 사람으로 보였다. 

졸지에 '탱자탱자'가 '룰루랄라'로 바뀌었다. '탱자탱자'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포기하고 받아들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마인드가 없이는 외국인으로 생활하기 힘들다.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포기하고 받아들이고 있을 때 반전이 일어나니 기분이 좋았다. 뺏겼다 받은 것임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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