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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넨브릴레 Mar 28. 2022

출근길, Preflight

양질의 휴식, 안전 비행

오늘은 새벽 비행이 있는 날인데 오랜만에 알람 소리를 듣고 깼다. 기분이 좋았다. 알람을 맞춘 시간까지 잘 잤기 때문이다.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회사 호텔'에서 깼다. 



회사에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호텔이 있다?

당연히 좋을 것이다. 우리 회사에는 직원 휴식을 위한 호텔이 있다. 호텔이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회사 소개를 간략히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중국에는 4대 항공사가 있다. 베이징에 기반을 두고 모든 항공기에 오성홍기(중국 국기)를 표시한 중국국제항공, 광동성 광저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사실상 규모가 가장 큰 남방항공, 상하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해봤을 동방항공이 있다. 

마지막으로, 유일한 민영(民營) 항공사인 하이난항공이 있다. 중국의 하와이라고 불리는 하이난 섬을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인데 본거지가 지리적으로 외진 섬에 있다 보니 내륙에서의 시장 확대가 필요했다. 중국 대륙의 중심에 위치한 시안에 항공사를 설립했는데, 시안의 옛 이름인 '장안(长安, 간체)'을 가져와 장안항공이라고 이름 붙였다. '장안의 화제'라고 할 때 그 장안이며 우리 회사의 이름이다. 

참고로 하이난 항공은 베이징캐피탈, 푸저우, 럭키, 톈진, 우루무치 항공 등의 계열사를 갖고 있다. 럭키항공(쿤밍 기반)을 빼고는 모두 지명 이름인데 마찬가지로 각 거점에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들이다. 

중국 대륙의 중심에 위치했다는 지리적 이유로 모든 하이난 계열 항공사들이 시안에 취항한다. 우리 회사를 포함한 계열사 항공사들의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호텔을 이용한다. 따라서 항상 붐빈다. '붐빈다'는 것은 객실 사용률이 높다는 것이지 로비 등이 북적인다는 뜻은 아니다. 다들 피로와 싸우느라 방에만 있는지 로비는 대개 한산하다. 

어쨌거나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회사에 호텔이 있는 이유다. 


회사 호텔. "시설이 얼마나 좋은가?"보다 "회사에 호텔이 있어 얼마나 좋은가!"에 의미가 있다.  



공항에 있다는 장점과 단점 

회사에 호텔이 있다는 가장 큰 장점은 호텔방을 나선 지 2분이면 출근이 완료된다는 것이다. 오늘 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비행 준비해야 하는 경우, 만약 집에서 출근했다면 40분은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새벽 시간에 40분은 낮 동안의 40분에 비해 더 큰 가치가 있다. 밤늦게 비행이 끝날 때도 상대적으로 더 이른 시간에 씻고 잘 수 있다. 회사에 출근했는데 비행이 지연된 경우에도 호텔에 머무르며 TV를 보거나 잠을 자며 쉴 수 있다. 한국 항공사에는 없는 정말 큰 장점이다.


한편, 회사 호텔에서 숙면하기엔 몇 가지 장애물이 있다. 공항 활주로 사이에 있다 보니 비행기 이·착륙 소리가 2~3분 간격으로 들린다. 

회사의 공항 내 위치

이륙하는 항공기 소음이 100db(데시벨) 정도라고 한다. 대형 버스가 바로 아랫 단계로 90db이다. 김포공항 소음지도를 참고해 봤을 때 회사 호텔의 외벽에 닿는 소음은 75~80db이 예상된다. 매미가 우는 정도의 소리다. 공항의 누군가는 간헐적으로 주변의 새를 쫓겠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까악~까악~"이상한 괴물 소리를 방송으로 내보낸다. 호텔은 지은 지 오래된 건물이다. 유리가 얇은 단일 창인 데다가 창 틀 이음새가 완벽히 맞지 않아 소음을 효과적으로 막아주지 못한다.   

김포공항 소음지도. 회사 호텔의 가상 배치로 예상해 보는 소음 정도


내부 방음도 취약하다. 옆방에서 샤워기 트는 소리가 우웅~하고 울린다. 늦은 밤 12시, 1시, 2시... 각 시간대별로 비행을 마치고 누군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씻는 소리가 들리는 구조인데, 일반 호텔보다 조금 더 크게 들린다. 타일로 돼 있는 바닥도 조용한 밤 시간에 윗방에서 '따각 따각' 걷는 구둣발 소리가 귀를 송곳처럼 찌르게 만든다.  

어제 배정받은 이 방은 처음 문을 열자마자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실내 금연으로 지정된 호텔이지만 가끔 있는 일이다. 짐을 풀기 전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께 방향제를 빌려 뿌렸다. 자려고 누웠을 때 은은히 지속되는 냄새에 '이거 제대로 잘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비흡연자라 유독 민감했을 수 있다.  



스케줄 근무자의 출근 노이로제

며칠 전, 황당한 일이 있었다. 다음 날 새벽 비행이 있어 회사 호텔에서 일찍 잠이 든 참이었다. 심야에 갑자기 누군가 카드 키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순간 나는, '어?! 출근해야 하는데 내가 안 와서 부기장이 깨우러 온 건가?'라는 생각에 벌떡 일어났다. 회사 출근과 관련한 일종의 노이로제(Neurose)였다. 그런데 방문을 들어선 그도 깜짝 놀라며 "요~련(有人, 사람이 있네)?" 하더니 다시 나가는 게 아닌가! 호텔 직원이 내가 머무는 방을 미배정 방으로 착각하고 밤 비행을 마치고 온 다른 이에게 내줬던 것이다. 이후로 잠을 설쳤음은 물론이다.  


회사 출근과 관련한 노이로제는 왜 생겼을까? 

국내 항공사에서 근무할 때였다. 오후 비행 출근 전, 시간 여유가 있어 아내와 김포공항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중에 전화를 받았다. 회사 스케줄 담당자였는데 "출근 시간 다 되어 가는데 지금 어디냐?"라고 했다. 당황하며 전화를 끊고 확인해 보니 비행기 출발 시간을 출근 시간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비행 일이라는 것이 비행기 출발 시간 전에 출근해서 준비해야 하는 것이므로 엄청난 착각을 한 것이다. 조금 일찍 담당자가 전화 준 것뿐만 아니라 회사 근처에서 식사 중이었던 일도 천만다행이었다.

중국으로 이직 후 얼마 안 됐을 때다. 코로나 이전인 때라 돈도 잘 벌고 있었고 이따금 회사 호텔에서 양질의 휴식 보장이 어려우므로, 우버와 같은 차량 공유업체 '디디추싱' 차를 타고 집에서 출퇴근할 때였다. 그날도 새벽 비행이었다. 알람 소리를 듣고 깨서는 샤워 중이었는데 전화가 왔다. 미리 예약해 두었던 '디디' 기사가 "출발 시간이 됐는데 왜 안 내려오느냐?"며 영어로 알려줬다. 전화를 끊고 확인해 보니 집에서 출발해야 할 시간을 잠에서 깨는 알람으로 맞춰 뒀었다. 통상 '승무원과의 합동 브리핑 시간 40분 전 집에서 출발', '그 30분 전 기상'의 역순으로 계산해 알람을 맞춰 두는데, 출근 준비의 30분을 깜빡 빼먹은 것이다. 씻다 말고 대충 옷 걸치며 뛰쳐나갔음은 물론이다. 

조종사나 승무원에게 지각은 정말 큰 실수다. 위의 경험담을 읽은 누군가는 중요한 일에 대해 내가 자주 착각한다고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코노미석만 있는 경우 180 좌석이 넘는 보잉 737-800 비행기의 경우, 기장 1명, 부기장 1명, 승무원 4명이 한 편조다. 이 중 한 명이라도 부족할 경우 법에 의해 비행기는 이륙할 수 없다. 조종사야 비행기를 조종한다 치고, 승무원 조차도 승객 50명 당 1명이 반드시 탑승해야 한다. 그래서 회사에는 특정 시간대마다 누군가 부득이 출근하지 못할 것에 대비하여 스탠바이 요원을 지정한다. 제시간에 출근하지 못할 잠재적 위험은 나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비행 편마다 이륙 시간이 다르듯 대부분의 출근 시간이 같지 않다. 지금까지 비행을 위한 출근 횟수가 대략 2,000회인 듯하다. 그중 두 번 일어났다. 물론, 발생 빈도율은 낮지만 치명적이므로 나 스스로에게도 매우 실망한다. 그렇게, 자다가도 일어나 '알람 시간을 제대로 맞춘 게 맞나?' 확인할 정도로 노이로제가 생긴다. 



Good rest, Safe flight, 양질의 휴식이 안전한 비행을 보장한다

승무원 또는 조종사와의 대화에서 "다음 날 새벽 비행이 있을 때, 잠을 잘 자기 어렵다"는 주제는 늘 공감을 유발하며 경험담의 꼬리를 물게 한다. 이른 시간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잠이 잘 오지 않을뿐더러 막상 잠들어도 중간에 자주 깨기 때문이다. 서두에 알람 소리를 듣고 깨서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알람이 울릴 때까지 깨지 않고 잤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는 운전병의 휴식을 방해하지 못하는데 운전을 안전히 하도록 하는 배려다. 잠을 잘 자기 어렵다는 주제가 얘깃거리가 되는 이유는 우리의 일을 함에 있어 휴식이 안전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새벽 비행이 있는 전날에는 '6시 이전 저녁식사 + 8시 잠자리 들기' 루틴이 있다. 오후 또는 밤 비행일 경우, 출근 전 최소 1시간의 잠을 잔다. 루틴, 징크스, 지론(持論) 등 뭐라 불러도 좋다. 나에게 비행 전 가장 중요한 준비(Preflight) 중 하나는 Good rest 즉, 양질이면서도 충분한 휴식이다.


감기라도 걸릴까 봐 유난히 추위에 민감하고, 아픈 것 같아 약 챙겨줬더니 항히스타민제(antihistamines)는 졸음을 유발해서 안된다고 하고, 스트레스에 민감한 편이고, 평소 술을 잘 마시다가도 어떤 날은 안 마시겠다고 빼고, 피곤하다고 먼저 들어가고, 밥때 되면 꼭 먹어야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까다로운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항공안전 체크리스트 중에 아이엠세이프(IMSAFE)라는 것이 있는데, 안전을 위해 본인의 정신적, 신체적 상황을 비행 전에 확인하라는 것이다. 바로 위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강조한다. 


I llness 질병

M edication 약물

S tress 스트레스

A lcohol 음주

F atigue 피로

E motion 감정(상태), Eating 식사


이제 막 신참 부기장이었던 예전 언젠가 방콕 출발 인천공항 도착, 6시간 30분에 이르는 비행을 할 때였다. 기장님이 "이따가 방으로 연락할 테니 비행 나가기 전에 (호텔 밖에서) 같이 식사하자"라고 하셨다. 나는 "네~ 그러시죠"라고 대답했다. 호텔에서 무료 wifi를 제공하지 않을 때였다. 비싼 데이터 로밍을 하지 않는 한 서로 연락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방으로 전화하는 것이었다. 

오후 3시가 돼도 방으로 전화가 오지 않았다. 밤 11시경 호텔에서 공항으로 출발하는 일정이었는데 나는 비행 때 졸지 않기 위해 비행 전 수면에 8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던 터였다. 결국 전화기 코드를 빼놓은 채 잠자리에 들었고, 나중에 기장님께는 깜빡 잠들었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동료 기장님의 아는 분들과 처음 만나 함께 스크린 골프를 칠 기회가 있었다. 마친 후, 다 같이 저녁 식사 겸 술자리 갖자고 했을 때 다음 날 있을 오전 비행 때문에 마다할 수밖에 없었다. 한참 친해진 것 같은데 뭔가 내빼는 행동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나 스스로도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 까지 할 일인가?


내가 승객으로 탄 비행기 조종석에서 비행 중이어야 할 누군가 졸고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면, 조종사인 나로서도 끔찍하다.


앞서 부기장 때는 친했던 기장님의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신참 부기장이었던 때라 비행 중 실수가 집중됐던 시기이기도 해서 갖게 된 에피소드다. 

신참 부기장 때든, 기장이 되어 한 기종만 7,000시간 이상을 타고 있는 지금 까지든, 비행 전 양질과 충분한 수면을 통한 Good rest 하려는 노력에는 변함이 없다. 비행은 매번 잘해야 한다. 순간 집중해서 해내는 '자신감' 같은 것보다 언제든 실수할 수 있다는 '겸손함'을 유지하려는 자세가 필요한 일이다. 이것은 애초에 내가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항공 사고 원인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조종사의 실수'라는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출근

샤워를 마치고 집에서 가져온 사과를 얼른 깎아 먹었다. 비행기 이륙 후 승무원이 데워주는 아침 식사를 하려면 앞으로 최소 3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IMSAFE의 마지막 E는 Eating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새벽 비행인데 공복까지 집중력에 영향 줄 것을 우려한 기상 직후 먼저 먹는 간식이다. 

입으로는 사과를 으깨 삼키며 동시에 제복을 옷장에서 꺼내어 입었다. 어제저녁에 손수 다림질해 놓은 제복이다. 중국 조종사들은 다림질해 입지 않는다. 나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한국에서 늘 그래 왔던 습관 때문인지 늘 다려 입는다. 습관이란 것이 무섭다. 


샤워는 했지만 머리는 감지 않았다.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면 방음 효과가 좋지 않은 호텔에서 옆방에 소음 줄 것을 우려한 것이다. 대체로 중국 사람들은 이런 정도의 사소한 배려에 대해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든,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나도 굳이 배려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잠시 해보기도 했다. 

새벽에 출근하고 보면 "이제 막 자다가 왔어요"라고 알려주려는 듯 뒷머리가 눌린 채 출근하는 조종사들이 꽤 있다. 나도 같은 동료라는 유대의 끈을 놓지 않을 겸, 머리를 감지 않은 채 열 손가락을 갈쿠리처럼 벌려 뒷머리를 열심히 손 빗질하고는 출근했다. 


'뒷 머리가 눌린'이라는 표현으로 중국 문화를 가늠하게 되기 쉬운데, 이것은 일부 표본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나도 중국에 오기 전에, 


"어떤 항공사는 승무원들 지침에 '잘 씻는다'라는 게 있데요~ 그만큼 잘 안 씻어서 그런 가봐요."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실제 체감해본 바, 꼭 그렇지는 않다. 항공사에 다니는 소위 중상위 레벨의 사람들과 일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음은 인정한다. 이른 새벽에 출근하는 때나 일부 그렇지 보통은 눌린 머리 한 채 출근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아무리 새벽에 출근해도 남, 여 승무원들은 언제나 단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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