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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넨브릴레 Jan 01. 2022

전면 봉쇄

살면서 처음 겪게 된 일들

해가 바뀌는 시점에 썼던 글이다. 그 전 1년을 가족과 떨어져 보냈고,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환경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됐는데, 이유는 코로나였다. 


한국에 카카오톡이 있다면 중국에는 위챗이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언어가 중국어인 것처럼 가장 많이 쓰이는 앱이 위챗일 것 같다. 그 정도로 거의 모든 중국인이 이 앱을 쓴다. 단 이틀 동안, 나의 위챗 앱에 수많은 단체 대화방들이 생겼다. 모두 내가 적극적으로 합류하길 원했다. 야채, 우유, 과일, 계란 등의 식료품을 사기 위한 각 품목마다의 대화방과 아파트 관리자로부터 주요 정보를 받기 위한 그것이다.

육류 고기 구매 방에서 "아파트 정문에 도착했으니 가지러 오라"는 판매자의 메시지를 읽자마자 급하게 채비했다. 늦게 가면 누군가 내가 주문한 물건을 사갈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쓰고는 아파트 계단을 통해 건물을 내려갔다.

아파트 동 출입구에서 빨간 완장을 찬 어느 여자분과 마주쳤다. 즉시 그녀로부터 "다시 집으로 올라가라"는 중국말을 들었다. 물론, 중국어가 서툰 나는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정황으로 알 수 있었다.



제로 코로나(zero-corona)

나는 지금 중국 시안(西安)이라는 곳에 살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3시간 남짓 거리이며 중국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다.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유명한 '병마용'이 있는 도시다. 

병마용


중국 정부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여름 한국에 휴가를 다녀왔다. 이 정책 덕분에 한국에서 시안으로 복귀하면 무려 4주간을 격리해야 했다(호텔집중격리 2주 + 자택격리 2주). 호텔 격리 비용만 60만 원이 넘게 나왔다. 

일주일 전,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 중에 아이와 영상통화를 했다. 여덟 살 아이가 "근데 거기는 왜 마스크를 안 써요?"라고 물었을 때, 또한 이 정책 덕택에 헬스장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운동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도시 전면 봉쇄

새해가 되면서 이곳에 살기 시작한 지 6년 차가 되었지만 도시의 인구수가 1,300만 명이라는 현황을 뉴스를 보고 알았다.

중국 정부, 인구 1300만 시안 '전면 봉쇄' 2021.12.23.



시작은 이랬다. 최근, 시안에 코로나 환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최근의 첫 확진자는 격리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격리자 중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는데 관리 직원이 확진된 희한한 일로 회자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시안 내에서도 제법 잘 사는 동네인 어느 지역에서, 한 여성분이 확진되었다는 뉴스가 대화방에서 대화방으로 이어졌다. 며칠간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했다는 부연 설명도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추가로 몇 명 더 나오겠구나!' 싶었다.


조종사인 나는 12월 20일, 진나라 멸망 후에는 초나라의 거점이기도 했던 창사(长沙)라는 도시에 다녀오기로 되어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 일정이었는데 금요일에 비행 편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승객이 적다는 이유였다. 시안이 코로나 위험 지역으로 지정되어 승객으로 비행기에 타려면 48시간 내에 PCR 검사한 증명서가 필요했다. 심지어, 목적 공항에 내려 비행기 점검만 하고 바로 되돌아오는 조종사와 승무원들에게도 '48시간 내 PCR 검사 증명'을 요구했다. 통제와 번거로움이 승객 수를 현저히 낮추었다. 회사의 비행 일정 중 여럿이 취소되기 일쑤였다.

확진자 수가 늘었다는 뉴스들이 대화방들을 오가기 시작했다. 12월 22일 저녁, 갑자기 23일 0시를 기준으로 시안시 전체에서 주택 또는 아파트 단지 밖 출입을 통제한다는 내용이 돌았다. 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TV를 보고 있던 나는 먹을 것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동네의 모든 마트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동네 마트 앞 장사진

무엇을 사든 마트마다 계산하는데 30분씩 걸렸다. 라면, 물, 쌀, 사과, 오렌지 등을 샀는데 또 무얼 사야 할지 잘 떠오르지 않았고 마음이 불안정했다.  



미치서 팔짝 뛰고 싶게 만드는 PCR 검사

23일, 단지 외출은 통제되었고 전 주민 대상으로 PCR 검사를 시작했다.

단지 내 PCR 검사

공항 종사자는 시안에 확진자가 생기기 전부터 매 3일마다 PCR 검사를 받고 있었다. 보통은 한 번 검사받는데 5분에서 최대 30분 정도 걸렸다.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로 PCR 검사를 위한 대기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어느 날, 갑자기 1시간 반이 걸렸다. 이틀 후 2시간이 걸렸다. 길거리에서 마냥 2시간을 검사만을 위해 줄 서 기다린 것이다. 무서운 것은 이틀이 지나면 또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12월 23일. 단지 밖 출입이 통제되고 단지 내에서 아파트 주민 대상 PCR 검사가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나는 200분이란 시간을 고스란히 줄을 서서 기다렸다. 장장 3시간 20분이다. 대기 줄의 총길이는 1km가 채 안 됐으니 몇 십분 동안을 제자리에 있기도 했다. 하필 이전에 비해 갑자기 추운 날씨였다.

코로나는 말도 안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계속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이건 또 다른 (경험하고 싶지 않은) 신세계였다. 아파트 단지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는 이 없이 줄 서있는 동안 미치서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개구리가 갑자기 뜨거운 물에 놓여 화들짝 뛰쳐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더한 것이 있어 참았다. 비행을 못해 돈을 벌지 못하는 현실은 미지근한 물에 들어간 개구리의 처지를 연상하게 한다. 밑에서 불로 가열하여 서서히 뜨거워지면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그대로 익어 죽게 되는 개구리가 되는 것만 같다. '지금은 그 어떤 일에도 인내로 대처해야만 한다.'를 계속 곱씹는다.  



완전 봉쇄

12월 23일 봉쇄 발표 후 처음엔, 식료품 구입을 위해 각 세대 당 1명의 외출이 이틀에 한 번 가능했다. 출입증에는 1월 13일까지 날짜가 기록되어 있었다. '설마 13일까지 봉쇄하려고?' 처음 출입증을 받고 든 생각이었다. 지금은 1월 말까지 봉쇄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시안시의 신규 확진자 수는 연일 150여 명을 오르내렸다. 이윽고 27일, 단지 밖 출입이 전격 전면 금지되었다. 당일 오전에 소식을 들었다. 이틀 전, 동네에 있는 큰 마트를 다녀왔었다. 한국 군만두가 한 봉지당 2위안(360원 정도) 할인한다고 돼 있어 계산대에 가져가니 막상 할인이 안 됐다. 할인 표시해두고 봉쇄가 시작되니 전산에서 등록을 해제한 듯했다. 네 봉지를 사려다가 할인이 안 된다고 하여 한 봉지만 샀었는데 전면 봉쇄 소식을 듣고 너무 후회됐다. 그만큼 식료품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 됐다.

단지 출입증. 외출 후 돌아오면 해당일자 빈칸에 체크 표시한다



작은 성공들에도 불구한 허무함

완전 봉쇄 후 며칠이 지났다. 갖고 있던 식료품이 떨어져 가는 것이 걱정됐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식료품 판매 단체 대화방에 꼬리에 꼬리를 물 합류했다. 물을 살 수 있는 대화방에서 누군가 우유 대화방을 소개하고, 우유 대화방에서 계란 대화방을 알게 되어 다시 연결되는 식이었다.

어제 돼지고기 안심과 등심 각 한 근씩 사려고 고기 주문 단체 대화방에 주문을 해둔 터였다. 오늘 오전에 아파트 단지 출입구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고기를 사러 급히 아파트 건물을 나서려는데 누군가 막아섰다. 지금 PCR 검사 중인데 아직 우리 동의 순서가 안 됐으니 다시 집으로 올라가라는 것이었다.

일전에 PCR 검사를 위해 3시간 이상 밖에서 줄 서 기다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단지 모두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검사가 반복되는 동안 노하우가 생겼다. 각 동별로 순차적으로 검사하기 시작했다. 굳이 모두 한꺼번에 밖에 나와 긴 줄을 만들어 서서 기다리지 않도록 했다. 그렇게 했더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20분이 채 걸리지 않게 됐다. 만세를 부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빨리 검사받고 싶을 테니, 각 동별로 한 명씩 현관을 지키며 출입을 통제한 것이다. 즉시 휴대폰 번역 앱에 "고기를 사러 정문에 잠시만 다녀올게요"라고 입력 후 보여줬다. 1단계를 통과했다. 

정문에 도착하여 고기 파는 아주머니를 창살 너머로 발견했다. "니하오~(你好)"라며 불렀는데 휴대폰을 보던 아주머니는 나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중국어가 서툰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이 탄로 날까 싶어 소극적으로 말을 건넨 탓도 있었다. 외국인에게는 돈을 더 받을 것 같은 우려는 물건을 살 때마다 늘 있어 왔다. 겨우 대화에 성공했지만 내가 주문한 고기는 없었다. 2단계에서 실패가 우려됐다.

정문 창살 너머 물건들과 물건 사려는 주민들

단체 대화방에서 주문할 때는 누군가 먼저 주문 목록을 만들어 대화로 올리고, 다음 사람들이 일련번호와 함께 본인 주문을 붙여가며 대화로 올린다. 기존 주문 전체를 복사해 그 뒤에 나의 주문을 덧붙여 다시 대화방에 올리는 방식이다. 나는 어젯밤에 13번으로 주문했다. 수량을 기입하지 않아 가게 주인이 얼마나 원하는지 대화방에서 묻기도 했다. 나는 총 두 근(1kg)이라고 답했고 주인은 알겠다고 했다.

문제는 오늘 아침에 일어났다. ID 'Just Run'이라는 사람이 기존에 올린 주문을 복사 후 다시 붙여 넣었는데, 기존 주문에서 12번 주문까지만 복사해 13번에 본인의 주문을 붙이고는 대화방에 올렸다. 내 뒤로도 18번까지 있었는데 모두 잘려나갔다. 나는 '설마~ 주인이 원래 주문서를 어제 확인했으니 알고 있겠지...' 생각했다.

내가 주문서 13번 고기를 달라고 하자 판매 아주머니는 Just Run의 주문인 뒷다리살 다섯 근을 내밀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원래 주문서가 이랬고 누군가 실수로 일부 주문을 지우고 본인 것을 올렸다고 제스처와 번역기로 10여분을 설명했다. 그때부터는 외국인인 것이 탄로 나든 말든 상관없었다. 그 와중에도 주문했던 다른 사람들이 와서 고기를 받아가느라 잠깐씩 멈추어 기다려야만 했다. 20여 분 만에, 모두 팔린 등심을 포기하고 대신 안심 1kg을 사들고 집에 왔다. 결국, 구매에 성공한 것이 뿌듯했다.

대화방에서의 고기 주문

나의 작은 성공을 동료 기장님들이 있는 대화방에 올렸다. 어느 기장님은 계란 30개를 샀는데 너무 많아, 단지 내 다른 입주민에게 일부를 팔았다고도 했다. 다른 기장님이 "중국어도 할 줄 모르는데 대단하시네요."라며 치켜세웠다. 다들 작은 성공들을 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돈을 이미 지급했는데 하루 종일 연락이 없어 떼인 줄 알았다가 겨우 물건을 받았던 얘기, 부침개를 판다고 해서 사러 나갔다가 다 팔려 못 사고 대신 두부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 얘기, 사과를 판다는 사람이 있어 주문해 놓고 쟁여뒀던 사과를 열심히 먹었는데 갑자기 배송이 안 된다고 해서 당황한 얘기 등이 오갔다. 작은 성공과 실패담이 오가고 있는 동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살며 견디고 있다"는 말을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러면서 "오늘이 12월 31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네요."라고도 했다. 공허함이 몰려왔다.


물건을 사기 위한, 열 개가 넘는 대화방을 수시로 보느라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저도 이제 지쳐가는데 계속 새로운 판매 물건들이 나오니까, 대화방 보는 것을 외면하기 힘드네요~ ㅎㅎ" 어느 기장님의 말씀이었다. 나는 "그 말이 딱 맞네요."라고 대꾸했다. 봉쇄의 하루가 그렇게 또 지나가고 있었다.

 


코로나에게 화를 내고 싶지만...

중국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코로나 제로 정책이 옳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러 관련 기사 댓글에 "공식 발표가 150명이면 실제로는 15,000명 정도 되겠네"라는 글도 있다.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으로는 150여 명 정도의 확진자 발생이 맞는 것으로 여겨진다. 나의 이러한 현장에서의 느낌이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내가, "모든 정책에는 장, 단점이 있다."라고 한다면 누구도 "틀렸다"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현실은 현대 사회가 처음 직면한 상상도 못 한 난제다. 어떤 국가가 어떠한 정책을 결정했든,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나름 하고 있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싶다.

어려움은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발생된 일이다. 그 바이러스에게 화를 내고 싶지만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여 정치적 또는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선동하는 일에 이 글이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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