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와 승무원이 동료인 승객
한국과 중국의 비행 문화에는 여러 차이가 있다. 그중 하나가, 한국은 웬만해서는 승객이 내리거나 탑승 중일 때 주유하지 않는다. 꼭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만 '주유 중 보딩'이라는 절차에 맞게 한다. 주유로 인한 화재 발생 시 피해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승객이 내리거나 탑승 중이거나 상관없이 주유한다. 마찬가지로 한 번 발생하면 피해는 크다고 보지만, 주유로 인한 화재 발생 확률이 거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은 비행기 주유를 정비사가 확인하지만 중국은 조종사가 직접 확인한다. 보통 부기장이 한다.
안개로 인한 공중 선회로 우리는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되돌아가는 편 승객들은 이미 모두 탑승구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 청소를 빠르게 끝내자마자 승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승객이 될 차례였다. 앞 편에서 소개한 대로 되돌아갈 비행 편에서는 외국인이 조종석에 못 들어가도록 정부가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중국인 기장과 부기장에게 "내가 주유 확인하러 내려갈 테니 조종석에서 비행 준비해"라고 했다. 그들은 "괜찮으니 그냥 편히 쉬고 있어"라고 대꾸했다. 다시 한번 내가 주유 확인하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기장이 연신 고맙다며 받아주었다. 굳이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같은 동료로서 일종의 정서 교감을 위한 노력이었다.
도착한 공항은 영하 12도였다. 목토시에 털모자, 장갑까지 추위에 완전무장한 채로 아래로 내려가 주유 확인을 했다. 되돌아갈 때는 비행시간만 3시간 20분이다. 많은 연료가 필요했다. 주입 시간이 꽤 걸렸다. 확인을 마치고 비행기로 올라온 나를 마감으로 비행기는 바로 문 닫고 출발했다. 연료 주입이 완료되기 전에 이미 승객 탑승이 완료됐던 것이다. 여러모로 내가 주유 확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한 숨 잘만도 한데, 승객으로 돌아오는 비행에서는 독서를 했다. 낮잠 자고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그렇다. 민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잠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거의 마시지 않는다. 밤 잠을 설치게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수면다원검사'를 했는데, 몸에 여러 가지 센서를 부착하고 병원에서 하룻밤을 잤다. 얼마나 양질의 수면을 하는지 검사하는 것이다. 비용 탓에 한 번밖에 못했다. 그렇게 적은 표본으로 전체를 평가하긴 어려웠지만, 대체로 몸을 많이 뒤척이고 숙면을 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목 부분의 X-ray 사진을 보니 기도가 5mm였다. 보통 사람들보다 작았는데 의사는 자는 도중 숨쉬기가 불편해 깰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몇 년 전부터, 자는 동안 하반신의 불안 증세를 보이는 하지불안 증후군도 생겼다.
조종사가 된 이후로는, 내일의 안전한 비행을 위해 몸의 피로를 덜어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잠을 자야 할 때가 많아졌다. 잠을 설친 날의 비행에서는 의식적으로 더 실수하지 않으려고 주의한다.
비행 내내 깨어 있었는데, 옆좌석 승객이 신경 쓰였다.
보잉 737 비행기의 좌석은 통로를 가운데 두고 양 쪽으로 세 개씩의 좌석이 있는 구조다. 티켓 발권 직원이 내가 기장인 점을 감안해 좌석을 비상구 통로석으로 줬다. 좌석 앞이 조금 넓다.
옆자리에 체중이 꽤 나가는 20대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쩍벌남이 되어 최소 내 허벅지의 1.5배는 돼 보이는 왼 다리를 내가 앉은 좌석까지 침범해 뻗었다. 나와의 사이에 있는 팔걸이도 이미 그의 것이었다. 내 공간에 침범한 것 같아 신경이 거슬렸다. 남자들은 이런 때 괜한 신경전을 벌이기 쉽다.
그와 대화도 안되고, 신경전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리의 무릎을 모으는 한편 길게 쭉~ 뻗는 자세를 취해 그와의 접촉을 최소화했다. 세 개열의 가운데 자리에 앉았으니 그도 불편할게 뻔했다.
이륙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비행기 앞 쪽에서 식사를 했다. 다 먹고 자리로 돌아오며 보니, 옆자리 승객이 마스크를 턱으로 내린 채 자고 있었다. 함께 나란히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앞에서부터 오면서 보고서야 알게 됐다. 언어의 장벽도 있었지만 괜한 다툼의 소지가 될 것을 우려해 승무원이 지나갈 때 그에게 마스크 쓰게 하라는 시늉을 했다. 승무원이 깨워 주의를 줘서야 그는 마스크를 제대로 썼다.
갑자기 몸이 근질근질하고 머리도 약간 아픈 듯 코로나에 전염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만들어낸, 마스크 안 쓴 사람을 가까이했을 때 생기는 과민성 반응이었다.
어떤 의사는 "사람들에게 약의 부작용을 되도록 보지 말라고 한다."라고 한단다. 어떤 약이든 부작용 발생 확률이 매우 낮은데도, 그 내용을 알게 되면 실제 일어나지도 않은 부작용을 마치 겪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라고도 했다.
지금 내가 딱 그 입장이 된 기분이었다. 옆좌석 승객이 코로나에 걸렸을 확률이 높지 않은데도 "저렇게 평소에도 마스크를 내리는데 어딘가에서 전염됐을 확률이 높은 사람 아니야?"라거나, 더 나아가 "코로나에 걸렸는데 마스크를 내린 거면 어떡하지?" 등의 상상을 했다.
중국에서 코로나에 걸리면 완치 여부와 관계없이 비행 조종할 수 없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의 비행이므로 조종사, 승무원용 기내식이 점심식사로 제공된다. 나는 승무원에게 12시에 먹겠다고 미리 알려줬다. 오븐에서 데우는데 20분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앞 갤리(Galley, 비행기의 주방)에서 식사를 했다. 조종실로 들어서는 문과 승객이 타고 내리는 전면 도어가 서로 앞과 옆으로 맞닿는 공간이다. 또한 승무원들이 접이식 의자에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접이식 의자는 벽에 딱 붙어 있는 것을 손으로 당겨 내리면서 엉덩이로 앉으면 의자가 되고, 다시 일어서면 스스로 접히면서 벽으로 딱 붙는 방식이다.
내가 서서 밥을 먹기 시작하자 앉아 있던 사무장이 일어나며 본인 좌석에 앉아 먹으라고 자리를 양보한다. 나는 "오래 앉아 있는 게 힘들어서 잠시라도 서있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손짓으로 사양하고 계속 서서 먹었다. 내 의도를 생략한 이유는 승무원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들은 계속 서서 일하다가 가끔 앉는데, "나는 앉아서 가기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조종사인 나도, 내가 승객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일하는 모든 승무원을 알고 있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어떤 승무원들은 지나갈 때마다 눈을 마주쳐 주고 가끔씩 "뭐 필요한 거 없어요?"라고 손발 짓으로 물어봐 준다. 남, 여 관계없이 그런다. 뭔가 대우를 받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해 줘서 고맙다.
(으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