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읽은 소감

by ylight

처음에 책의 두께를 보고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책이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도 이렇게 두꺼운 책으로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생각도 많았다. 그러나 조금씩 읽어 가면서 저자의 문제의식에, 자신의 주장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방대한 지식과 자료에, 또 그런 자료를 모두 읽고 검토했을 저자의 노력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류 역사는 나아지고 있는가?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이다. 특히 폭력과 관련하여 ‘왜 세상에는 전쟁이 있을까’라는 질문보다 ‘왜 세상에는 평화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인류 역사는 폭력이 감소해 왔으며 인간에 대한 잔인함이 점차 약해졌다는 것이다. 폭력이 감소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데 과거는 덜 순수해 보이고 현재는 덜 사악해 보인다는 것이다. 아마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하는 루소의 낭만주의적 자연 상태를 비판하는 것 같다.

저자는 폭력과 관련해서 왜곡된 인식, 즉 선입견이 너무 강하다는 현실을 고발한다. 유혈이 낭자하면 톱뉴스가 되는 미디어의 현실, 인류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지적인 경향 등이 폭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선입견을 갖게 만들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러한 왜곡된 인식과 선입견을 깨뜨리기 위해, 인류 역사에서 폭력이 모든 차원에서 하강하고 있음을 방대한 자료를 통해, 특히 숫자를 통해 보여준다.


지금보다 과거가 더 폭력적이고 잔인했다!


이 책은 과거가 폭력적이고 잔인했다는 근거로 선사시대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를 제시하며 시작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확 사로잡으면서도 독자들이 저자의 문제의식을 공감하게끔 만든다. 5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의 시체가 빙하가 녹으면서 발견되었는데 화살을 맞아 살해되었다는 것이다. 매우 흥미롭지 않은가? 또 사람들이 즐겨 읽고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인용되는 호메로스의 얘기를 압축해 보니 ‘학살과 강간’의 얘기라는 것이다. 이 또한 대단한 반전이다. 성경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구약에 담긴 폭력적 부분이 600군데가 넘으며 구약에 나오는 대량 살인의 사망자수를 추정하면 1,200만 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물론 구약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사실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기원전 500년경의 근동 문명의 삶과 가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리고 저자는 성경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님을 명확히 하면서, 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감수성이 변했기 때문에 구약을 달리 해석하거나 우화로 간주하고, 탈무드나 신약과 같은 덜 폭력적인 텍스트로 교체했다는 것이다. 로마제국의 폭력성뿐만 아니라 신약의 순교자 열전에서도 폭력성이 나타나며, 초기 기독교의 잔인함에 대한 용인이 중세 기독교의 고문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현재 기독교인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볼 때에는 2,000년 동안 고스란히 보존된 믿음을 지지하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비폭력과 관용이라는 현대적 규범을 존중하는 구획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또 중세의 기사도를 비판하는데, 기사들이 숙녀를 보호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기사가 그녀를 납치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며, 기사들끼리의 싸움에서 승자는 아무런 죄책감이나 비난의 염려 없이 숙녀나 처녀를 마음껏 취할 수 있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근현대에 와서 결투와 군사적 상징주의가 사라지고, 일상에서의 폭력적 묘사를 용인하지 않게 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한 것일까? 아니면 선한 것일까?


저자는 폭력을 유발하는 또는 강화시키는 인간의 내면적 요인을 추적하는데,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도구적 폭력, 권위·명예·힘의 욕구로 나타나는 우세 경쟁, 보복·처벌·정의와 같은 도덕주의적 욕구를 부채질하는 복수심, 타인의 괴로움에서 즐거움을 얻는 가학성, 공유된 신념체계인 이데올로기를 제시한다. 이러한 '내면의 악마'를 보면서 섬뜩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러한 유형의 폭력을 저지르기도 하고 당해보기도 하지 않았는가? 이데올로기도 무섭다. 극우나 극좌나 모두 대량 학살로 점철되었고, 민족과 민주주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저자는 인간의 폭력성에 영향을 미치는 내면의 악마를 살펴보면서 재미있는 사례를 제시한다. 인간이 가장 폭력적일 때는 사춘기나 청년기가 아니라 미운 두 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공격성을 어떻게 익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떻게 공격성을 버릴까를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대부분의 인간이 폭력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출발점이다. 다음으로 내면의 자아를 끄집어내는데 상상살인의 예를 제시한다. ‘착한 남자가 꿈꾸는 것을 나쁜 남자가 실행한다’는 표현이 이를 보여준다. 이처럼 내면의 악마는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유리한 신호를 만나면 깨어나는데, 저자는 이러한 신호를 도덕적 간극으로 설명한다. 도덕적 간극은 하나의 사건을 공격자, 피해자, 중립적 제삼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각각 서사가 달라지는 현상이며, 어린애들 싸움에서 잘 나타난다. ‘네가 먼저 때렸잖아, 너는 더 세게 때렸잖아.’ 또 피해자는 너무나 많이 기억하는 반면 가해자는 너무나 적게 기억한다. 도덕적 간극은 자신의 행동과 남들의 행동을 다르게 평가하는 자기 위주편향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자신이 늘 옳지는 않다는 사실을 깨우칠 방법이 중요하다고 한다. 고전과 경전에서 자신을 먼저 되돌아볼 것을 강조하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한편 저자는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하지도 않고 또 선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또한 빈 서판이나 백지와 같은 상태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폭력으로부터 멀어져 협동과 이타심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동기들을 가지는데, 감정 이입(empathy), 자기 통제(self-control), 도덕 감각(moral sense), 이성(reason)으로 제시되는 선한 천사이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눈 확 겉질이 자기 통제, 타인에 대한 공감, 규범과 관습에 대한 감수성 등 여러 평화화 능력에 관여하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심층 연구에 따르면 도덕적 간극과 평화화 능력이 모두 대뇌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인간의 대뇌에서 가장 핵심 부분은 내면의 악마도 선한 천사도 아닌 것이다.


무엇이 폭력을 감소시켰는가?


저자는 인류가 내면의 악마보다 선한 천사를 많이 발휘함으로써 폭력을 다각적으로 감소시켜 온 외생적 요인들도 추적하는데, 리바이어던, 상업, 여성화, 이성의 발달과 감정 이입의 범위 확장 등을 제시한다. 비국가사회에서 국가사회로 전환되면서 폭력은 감소했고, 유럽과 미국에서의 폭력 감소에도 법질서를 체계적으로 확립하는 국가 능력이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미국 서부에서의 폭력 감소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매우 흥미로웠다. 할리우드 서부극에서는 카우보이 주인공을 낭만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살인과 폭력이 난무한 세상이었고, 이러한 서부를 길들인 것은 여성의 유입이었다는 것이다. 난봉꾼이냐 아버지냐(cads vs dads)의 프레임으로 제시하는데, 여자와 결혼이 폭력에 찌든 남자를 문명화시켰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가설이지만 매우 설득력을 가진다.

인도주의 혁명은 인간제물, 마녀사냥과 같은 미신적 살해, 사형 및 노예제와 같은 제도적 폭력을 없애는데 기여한 것으로 주장한다. 책에서는 미신적 살해와 제도적 폭력의 사례를 많이 제시하고 있는데 사실 충격적인 내용들도 많았다. 십자군이 행군하는 도중에 자행한 도시 약탈과 무슬림 및 유대인 학살로 인해 약 100만 명은 죽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스페인 종교재판 사망자가 35만 명으로 추정되며 종교전쟁으로 인해 죽은 사람을 575만 명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유럽인들은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미신적 신념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행위에 대한 열의를 잃게 되는데, 저자는 그 이유를 인도주의 혁명으로 설명한다. 인도주의 혁명으로 인해 사람들이 영혼에 가치를 두는 태도에서 생명에 가치를 두는 태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사람들이 감정 이입과 생명 존중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서 독서혁명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독서는 관점 취하기의 기술이며, 독서의 폭발적 성장은 자신만의 편협한 관점을 벗어나는 습관을 만들어 인도주의 혁명에 기여했을 것으로 주장한다. 독서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교양을 가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독서를 통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과 자세가 길러지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설명에서 매우 균형적이면서도 신중하다고 느껴지는 대목이 있다. 이성이 필수불가결하다고 해서 개개인이 늘 이성적이라거나 열정과 망상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며, 단지 사람은 이성을 행사할 능력이 있다는 뜻이라는 표현도 가슴에 와닿는 표현이다. 나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열정과 망상에 휘둘릴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열정과 망상에 휘둘리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게 되는가? 따라서 이성을 공개적이면서도 공정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어서 등장하는 링컨의 말(“모든 사람을 잠깐은 속일 수 있고 몇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도 감동스럽다. 저자는 링컨을 많이 좋아하나 보다. 책 이름도 링컨의 말에 따왔는데.

또한 4가지 척도와 관련된 관계 맺기 모형이 많은 시사점을 준다. 명목척도, 순서척도, 등간척도, 비례척도는 각각 공동체적 공유모형, 권위서열 모형, 동등성 모형, 시장가격 모형에 대응된다. 저자는 비례척도를 강조하는데, 비례라는 단어는 수학적 의미 외에도 도덕적 균형을 뜻한다. 이러한 균형은 통제되지 않은 마음이 불끈 격분하여 거친 정의를 집행하는 행위에서가 아니라, 더 큰 폭력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폭력 행위에서 나타난다. 저자에 따르면 실력 행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계산된 양만 조심스럽게 적용할 때 도덕적 진보가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처럼 폭력 감소에는 비례감각이 요구된다. 마음이 자연스럽게 해내는 일이 아니라 이성으로 진작되어야만 하는 습관이다. 정말 지금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어설픈 정의를 거칠게 실현하고 싶은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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