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풍경이 변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멀리서 보면 세모난 산이고, 들어서니 우글거리는 나뭇잎들이 그림자를 드리우던 곳, 산의 콧구멍 같은 동굴을 따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는 잔잔한 시냇물 소리만 들렸습니다. 같은 풍경은 계절과 시간이 바뀌며 모습이 변해갔고, 저도 나이를 먹어가니 다시 찾아간 산은 같은 장소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2018년도부터 <그녀의 진짜 비밀>이라는 연작을 작업하며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엄마 대신 저를 키워준 이모가 떠난 미국은 초콜릿이었고, 닌텐도 게임기였고, 마이클 조던과 마이클 잭슨이었습니다. 세계를 호령하며 정의를 외치던 청교도 국가의 위엄을 동경하며 20년 뒤 저는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매달 170 만원씩 빠져나가는 어두운 월셋집 살이는 제가 어려서 보던 미국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돈에 쪼들려 매일 집에서 그림을 그렸고, 한인 마트에서 삼겹살을 조금 사와서 아내와 구워 먹었습니다. 이따금 한국에 계신 분들께 선물을 보내기 위해서 들른 베벌리힐스 쇼핑몰은 그 어느 장소보다 신성했습니다. 밝은 빛, 신선한 공기, 멋진 상품들, 그리고 친절한 점원들까지. 저는 숭고미를 표현했던 바넷 뉴먼의 ‘하나됨’을 쇼핑몰에서 산 레이스와 란제리를 기워 하늘하늘하게 만들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미국에 대한 어두움을 비틀듯 이야기한 동양인 남자를 달갑지 않아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20년 9월 데굴데굴 굴러서 어려서부터 살던 서울 옛동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을 거친 후 가장 하고팠던 '좋아했던 여자가 아내가 되고, 아내가 엄마가 되어갈 무렵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micro 하게 열거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작은 바늘구멍과 같은 틈을 헤쳐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사셨던 미술관 운영진 선생님들, 아이를 키우며 고생하셨던 어머니들, 꿈을 가지며 그림의 뒷이야기를 묻던 여학생들. 제가 치러왔던 전시 중에 가장 자랑스럽고 뿌듯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 전시를 가장 기뻐하신 것은 아버지시고, 우리 아버지께서 주말마다 전시장을 들러 사진을 찍으며 혼자 웃곤 하십니다.
ㄴ. <아들이 아빠가 되는 드로잉>에 관하여,
이 드로잉 시리즈에는 크게 두 가지의 관계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우리 엄마와 저의 관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제 아내와 우리 아들의 관계입니다. 우리 엄마를 보며 ‘나중에 우리 아내가 콩돌이가 다 컸는데도 저리 전전긍긍하는 할머니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우리 아들을 보며 ‘내가 어려서 저랬겠지. 저래서 우리 엄마가 집에서 애 보고 집 치우고 밥하고 그러셨겠지.’라는 상념에 빠지곤 합니다.
* 전시 인터뷰를 촬영하던 도중 질문을 하던 피디님이 가슴에 깊이 찔러 들어오는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서운하시겠어요.” 저는 할 말이 없었고, 기회가 된다면 <원더풀 아빠봇>이라는 전시를 준비하겠다 했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무렵 아버지께서 타시던 대우 프린스라는 자동차를 저희 아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처럼 변신시키고 낡고 부서진 변신로봇이 ‘아빠의 청춘’을 늘어진 테이프 소리처럼 부르는 것입니다. 저도 막내이고 아버지도 막내이시기에 우리 아버지도 할머니의 왕자님(Prince)이었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와 할머니를 대하는데 몹시 힘들어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