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마파도 Permanent Waves

<아들이 아빠가 되는 드로잉> 시리즈

by 콩돌이 아빠
<파마파도> 1080 x1080p 루프 애니메이션, 2022



영원한 파도


엄마는 자주 빈다.

아버지한테 잘못했다고,

나한테 미안하다고.


부처님, 하나님한테

우리 아들 잘되게 해달라고.


그래서인지 법당에 엎드려있는

수많은 파마머리 어머니들이

뭘 그리 잘못했고 부탁하는지

엎드리고 일어서기를 물결처럼 반복한다.




Permanent Waves


Mom begs a lot.

She begs dad to admit her bad and begs me by saying sorry.


To Jesus and Buddha

to wish the best for her son.


This is probably why that many moms with permed hair

repeatedly bow and get up like waves

to confess and wish things for their family at temples.





작은 나무틀 안에 더 작은 네모진 구멍을 파냅니다. 떠들썩한 소음보다 들릴듯 말듯한 속삼임에 귀를 기울이듯이, 어린애 손바닥 크기의 화면에서 곰살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에 꽤 많은 사람들이 눈길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머무르곤 합니다. 몇몇은 폭소를 터뜨리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개미처럼 작은 어머니들의 간절함이 마치 본인이야기 같은지 저에게 짧은 하소연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종종 '책임'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일이 그르쳐졌을 때, 습관적으로 누구 때문인지 곱씹으며 내 탓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으려고 몸부림 칩니다. 그리고 사건들이 이어진 여러 가닥들을 살피다가 화를 토해냈을 때 가장 뒤탈이 없을만한 곳을 찾아갑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변명을 잘 안 합니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로 불같이 일어나는 원망을 덮어내는 것 같습니다. 평생을 그런 엄마 슬하에서 커와서인지 비슷한 투의 말을 아들에게 하는 자신을 보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그리고 아직 마음이 바다 같은 부모가 되는 일은 쉽지 않기에 가슴 한켠에서는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아내곤 합니다.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매사에 미안하다는 말로 책임을 뒤집어쓰는 사람은 누구에게 신세한탄을 하며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칠지 궁금했습니다. 그것도 수십 년간을.


교회나 성당, 그리고 절에는 유독 어머니 연배의 여성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곳에서는 심심치 않게 기도 중에 눈물을 훔치는 분들을 볼 수 있고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작고 끊이지 않는 말소리를 내며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각자 말 못 할 사연들을 가슴에 담아두고 집 밖에서 찾은 가장 신성한 곳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탈없이 무마되기를 손발 무릎이 닳도록 비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마다의 고유한 이야기들은 그 누구도 이해 못 하겠지만 결국 비슷한 사정의 것들이 이리저리 겹치고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짐작만 해봅니다.



---------


파마: Perm - Permanent - Permanent Waves


파마와 페이즐리 패턴, 그리고 꽃무늬는 지역을 불문하고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의 몸을 휘감고 있습니다. 어려서 우리 엄마가 고모와 이모할머니께 파마를 해드릴 때 풀리지 않게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겨 플라스틱 롯드(rod)로 촘촘히 말아 올린 모습은 괴상했습니다. 한 공간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와 고무가 삭은 것 같은 파마약 냄새, 거기에 더해 형형색색의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노란색, 분홍색, 초록색의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막대를 빼곡히 머리에 끼워놓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광경은 어딘가 허술하면서도 공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낸 뒤에 샴푸로 머리를 감아내면 머리카락은 똘똘 말려서 털모자처럼 머리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서른 중반이 되고 우연히 읽은 책에서 어머니들이 왜 같은 모양의 파마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생기'라는 한 단어를 얻기 위해서 머리카락을 되도록 힘껏, 오래 부풀리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여름철 집 맞은편 시장에서 보는 엄마들과 할머니들은 형광빛 분홍의 꽃무늬 옷과 총천연 페이즐리 패턴 옷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고 있습니다. 마치 얼룩말들이 무리 지어 맹수의 시선을 교란시키듯, 같은 머리모양에 화려한 색과 무늬로 구성된 어머니들이 서둘러 움직이는 모습에 착시가 일어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엄마 마음은 바다"


이제는 들어도 큰 감흥이 일지 않는 저 말이 문득 가슴에 달라붙은 것은 아주머니들을 통해 눈에 밟히는 수많은 것들이 물의 속성을 띄기 때문이었습니다. 밑으로 그리고 더 밑으로 흐르는 마음, 너풀거리는 치맛자락, 굽이치는 머리카락, 쉽게 어울리고 이야기가 섞이는 개방성. 정말 오랜만에 찾아간 법당에서 마치 파도타기 응원을 하듯이 물결치는 파마머리 어머니들의 뒷모습은 그 엄숙한 공기를 깨뜨리고 웃음소리를 낼 만큼 유쾌했지만 결코 그럴 수 없이 무거워 보였습니다.

keyword
이전 01화할머니는 아빠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