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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이아할장내 掩姨阿轄丈內

<아들이 아빠가 되는 드로잉> 시리즈

by 콩돌이 아빠
<엄이아할장내> 20 x 28 cm, 종이에 색연필과 금박, 2022

콩돌이 아빠의 유년기는 다소 굴곡이 있었습니다. 교우관계가 좋아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도 있었고, 고학년이 되어가며 주변인으로 겉돌며 혼자 시간을 보낸 시기도 있었습니다. 스무 살에 가까워질 무렵부터 또래들과 함께 있을 때 어색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기분을 살펴주고, 그리고 안좋은 내색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주변의 신망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습관들로 또래, 특히 동성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항상 긴장되고 어렵습니다.


영어가 부자연스러웠던 2010년즘, 친척을 뵙고 여행차 찾은 맨해튼은 참 낯설고 복잡했습니다. 방향감각이 둔해 길을 잃는 것이 일상인 저는 안전히 길을 물을 때 연배가 있는 여성분을 찾아 어색한 영어로 방향과 목적지를 묻곤 했습니다. 이들은 어리숙한 제게 측은지심을 갖고 위해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냥한 성정과 엄한 아버지에게서 배운 예의 덕분에 해외 생활을 하며 많은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배불리 먹고 환대받았습니다. 연애하던, 지금은 아내인, 당시의 애인은 제게 ‘왜 당신 주변에는 남자친구들은 없고 아주머니들만 있는지’ 거푸 묻곤 했습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하고 이렇게 마음속에 결론지었습니다.


'편하니까.'


엄마, 이모, 아주머니, 할머니, 장모님, 아내는 또래에 잘 섞이지 못하고 엉뚱한 길을 가고 있는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용기를 주신 분들입니다. 관세음보살님처럼 제 시름을 헤아려주시고, 지장보살님같이 빠듯한 살림에도 저를 지원해 주십니다. 제목의 한자는 음차(音借)하되 되도록 의미가 해당 인물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사용하였습니다. 인물들이 취하고 있는 불교의 수인은 사진을 참고하여 묘사하였으나 그 의미를 파악하고 적용하지는 않았습니다.



姨阿轄丈內

掩:가릴 엄(엄마)/ 姨:이모 이(이모)/ 阿:언덕 아(아주머니)/ 轄:다스릴 할(할머니)/ 丈: 어른 장(장모님)/ 內: 안 내(아내)


Mother/ Aunt/ Aunt/ Grandmother/ Mother in law/ Wife


<엄이아할장내>


어머니 날 낳아 기르시고

이모는 직장을 그만두고 날 돌보셨네


아주머니 엘에이갈비와 미역국으로 나와 아내, 콩돌이를 먹이시고

할머니는 내게 “이렇게 재주가 좋은데, 계속 그림을 그려야지.”라며 다독이셨네.


아내는 내가 기죽지 않게 식당에서 자신의 카드를 주며 계산하게 하고

장모님은 세세한 일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작업하라 하시네.


2022.08.30 콩돌이 아빠




콩돌이가 태어나던 날, 하혈이 심했던 아내는 변기에서 일어서다 기절했고, 의료보험 문제로 소아과의사가 저희를 거부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황달이 심했고, 무지했던 저로 인해 위험할 뻔할 정도의 상황이 되기도 했습니다. 황망히 집 근처 한식당에서 우윳빛과 비슷한 사골국을 사 와서 아내를 먹이며 ‘이제 어쩌지?’라는 물음이 돌덩이같이 가슴에 내려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저를 돌보아주시던 아주머니와 할머니께서 밤중에 미역국을 끓여 저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아주머니는 천 가방에 뜨거운 온기가 남아있는 미역국 두 솥을 위아래로 쌓아서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혼자서 너무 무서웠고 어쩔 줄 몰라하던 저는 손에 묵직한 미역국을 들고 아주머니가 타고 온 자동차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으로 눈물을 비벼 닦았습니다. 방에서 새근대는 아기와 지쳐 잠든 아내가 걱정할까봐 엘에이 하늘의 밤공기에 눈을 식힌 뒤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따금 엘에이에 머물던 때에 아주머니와 함께 식사하며 나누던 대화가 기억납니다.


“냇가에서 배곯던 때 도시락을 나누어주던 아주머니의 은혜를 잊지 않은 한신장군이 천금으로 보은 하듯이 저도 어머님께서 돌봐주시는 것들을 가슴에 새기고 잊지 않겠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고기나 먹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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