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의 미술은 제게도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전시작품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설치미술과 이해를 돕기 위해 벽면에 쓰인 소개글에 더욱 좌절했던 시기는 가지시않고 여전합니다.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민과 꿈이 한데 어우러져 방황하던 시절, 사소하고 개인적인 내막을 최선의 노력으로 구현해 낸 미술작가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렵지 않아도', '사적인 이야기도' 이렇게 훌륭한 미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우둔한 제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진언을 뵙기 위해 찾은 곳에 빨래판만 있더라."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작업한 불교 경판이 위엄을 갖추고 자리한 모습에 가까이 갈 엄두를 내지 못한 한 할머니는 위와 같은 말을 합니다. 큰 깨달음 이후에 그를 다정한 표현으로 전하려는 노력은 많은 것을 포기하게 하고 심지어 중요한 에센스가 손실되어 아쉽기도 하지만, 언어로 전달되지 않는 감동을 줍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원문 성경을 읽어주는 대신 나병으로 발의 마디가 손실된 사람의 신발을 직접 만들어주는 고생이 수신자에게는 보다 직접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자비를 퍼트리기 위해 '삼법인', '사성제'와 같은 핵심교리를 알릴 수도 있지만 돈이 없어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체면을 포기하고 채근해 받은 돈으로 몰래 장학금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감히 제게 그런 고귀한 마음이 피어나 이번 전시를 치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서 또래의 다른 남자들보다 약간 더 육아와 가사에 참여한 것을 전시를 통해 과하게 생색낸듯한 부끄러움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시를 준비하고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된 것은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으로 마음을 까맣게 태워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는 '누군가는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아야 여럿 모여사는 세상이 아슬아슬하게 유지가 된다'는 진부한 사실을 알려주었고 때문에 전시 전후로 할머니, 어머니, 아주머니, 주부, 애기엄마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단지 수 개월에서 몇 년 그들을 흉내 낸 일은 제게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밥 하는 것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주부가 되며 외면할 수밖에 없던 포부가 다시금 끓어오를 때 애써 모른 체해야 하는 것 등등. 이 어설픈 경각심을 느낄 새도 없이 저는 이미 많은 것을 내려놓고 희생만 해온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저의 의무를 떠넘기고 약 1년간 전시를 준비하고 치러냈습니다.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열린 꿈만 같던 개인전도 언젠가 삶을 통과했던 사건 중 하나로 희미해지겠지만 당시의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었기에 15주간 부족한 재주로 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들 뭐해요?', '남편 무슨 일 해요?'라는 질문에 난처했을, 그럼에도 저를 자랑스러워해 준 엄마와 아내에게 <할머니는 아빠의 엄마>를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