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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수영

<아들이 아빠가 되는 드로잉> 시리즈

by 콩돌이 아빠
<바다수영> 27 x 40cm, 종이에 펜과 색연필 2022

도담도담, 아이 엉덩이를 두드리며 재웁니다. 일과는 정신없이 흘러갔고, 그저 몸이 기억하는 임기응변으로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취침시간이 되곤 했습니다. 같은 박자로 손을 조그만 몸에 얹고 떼기를 반복하면 자연스럽게 노래가 시작됩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가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이제는 많이 흐릿해진 어린 기억에 엄마도 저를 재울 때 같은 노래를 불렀고, 저 역시도 콩돌이가 잠에 빠지려 하면 선곡의 여지없이 '섬집아기'를 부르며 몸을 흔들어 줍니다. 입으로 '쉬- 쉬-' 거리는 미묘한 소음을 들려주면 아기는 편안해하는데, 이는 마치 저만치서 부서지는 파도소리처럼 들립니다.


2022년 여름, 가족들과 강릉으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저희 셋이서 두어 번 겨울바다를 본 적은 있지만 콩돌이를 데리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몸을 담그러 간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귀여운 상어모양 구명조끼를 몸에 채워주고 함께 바다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압빠! 넘으 차갑꼬 무셔어."

"괜찮아, 아빠가 잡고 있잖아."


한두 발만 앞으로 전진해도 급격히 수심이 깊어지는 동해바다는 투명하면서 시원했고 작은 아이를 가슴에 얹고 넘실대는 바닷물에 몸을 맡기자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차갑다', '짜다'는 말을 하고 또 하면서 구름을 탄 듯 둥실거리며 오르내립니다. 파도소리와 함께 할머니가 아빠에게 불러주던 '섬집아기' 자장가가 들려옵니다. 아빠는 그 리듬에 맞추어 박자를 타고, 콩돌이는 같은 박자에 맞추어 아빠와 함께 파도를 탑니다. 이제는 큰 파도에 파묻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두 부자는 웃고 소리 지릅니다.




2020년 9월. 콩돌이 엄마는 굳은 표정의 남편 등을 어루만집니다.


"한국 가면 시간도 많고 다시 잘할 수 있을 거야."

"...."


20대와 30대의 대부분을 쏟은 미국생활을 정리하며 떠나는 길은 마음이 아팠고 허탈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다시 시작할지도 알 수 없었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습니다. 가슴에는 콩돌이를 품에 안고 극성을 부리던 코로나를 막아내려 허리까지 내려오는 비닐을 제 머리에 둘러붙여 콩돌이의 방어막을 만들었습니다.


낯선 기내에서 콩돌이는 투정을 부리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쉬-쉬-'거리며 주변 눈치를 보는 부모를 힐끔 쳐다보던 일이 떠올랐고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제가 그런 아빠가 되었습니다. 거진 10년이 되는 타지 생활에서 모았던 짐을 치우는 일은 며칠간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을만큼 엄청났기에 기내에서 아이를 품에 안고 무릎을 굽히고 펴는 행동은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반사적으로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비자문제로 거진 5년 만에 돌아온 한국. 처가댁 어른과 본가 식구들이 모두 마중나와 비틀거리며 걸음을 내딛는 콩돌이와 행색이 남루한 부부를 반겼습니다. 오랜만에 느끼는 습도와 눈이 부신 실내등은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듯 엘에이에서의 생활을 꿈처럼 덮어버렸습니다. 전염병이 창궐하기 전 일사천리로 이뤄지던 탑승수속은 몇 배는 복잡해졌고, 모든 일을 마치고 나온 뒤 웃음이 만연한 가족들의 얼굴을 보자 심신의 긴장이 풀렸습니다.


'그래, 일단 살아야지. 살아야 그림이고 뭐고 다시 할 수 있지.'


20대 후반 삶의 부푼 기대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으며 고향을 떠났던 저는 10년 뒤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그 길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여전한 동네, 그리고 여전한 나. 며칠씩 밤을 지새워 작업을 하고 유명세에 시달려보고파 상상도 못 해본 곳에서 전시를 하며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지우고 아기띠로 콩돌이를 고정시킨뒤 짐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낑낑댄 후 집으로 들어와 대충 짐을 풀었고 이불가지를 펼친 후에 몸을 뉘었습니다. 훤한 집에서 배시시 웃는 아이를 눕혀 엉덩이를 도닥입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피로로 쩌든 우리 가족은 서서히 눈이 감겨왔습니다. 그리고 콩돌이가 먼저 잠들기 전에 저는 제 팔을 베고 스르르 잠에 빠집니다. 같이 꼬물거리며 장난 칠 사람을 찾던 콩돌이도 엄마 아빠가 그르릉 거리며 처진 몸을 바닥에 붙이고 움직이지 않자 본인의 발가락을 조물대다가 같이 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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