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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돌이 아빠 May 02. 2023

자장노래

<품솔솔과 자장노래>

<자장노래> 싱글채널 비디오, 3분 50초, 가변크기 2022
<자장노래> 싱글채널 비디오, 3분 50초, 가변크기 2022

 하늘을 나는 꿈을 꿉니다. 하지만 두 팔을 벌려 창공을 자유롭게 떠도는 여유를 부리지는 못합니다. 싫은 사람, 피하고 싶은 장소, 견디기 힘든 상황을 가까스로 참아내면 해소되지 못한 께름찍한 기분이 꿈에서 튀어나오고 그들을 피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해 두 팔을 퍼덕이며 날갯짓을 시작합니다.


 '진짜 맘먹고 면전에 욕이라도 시원하게 내질렀어야 했는데...'

 '죽자 사자 덤벼들어서 만신창이를 만들어 줄걸...'


벌써 몇 년에서 십수 년 지난 일들이 떠오르며 참고 넘어간 기억이 가슴속에서 억세게 솟구칩니다. 스스로의 인내심을 칭찬하기보다는 당시의 회피를 '비겁'으로 바라보며 조금 더 용기 내어 화를 풀어내지 못한 것에 땅을 치듯 곱씹습니다. 그리고 그런 잊히지 않는 수모는 다시 꿈에서 총천연으로 등장하고 저는 그로부터 도망쳐 달리다가 막다른 골목에 서면 다시금 두 팔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몸이 떠오르기를 기대합니다.


 "쿠오오오--- 슈슈슈우우우-"


 지금은 꽤 지난 일이기에 꿈과 현실이 범벅이 되어가는 2020년 9월 서울행 출국 비행기는 별도의 퍼덕임 없이 편안히 제 몸을 띄워 올립니다. 코로나가 우리를 귀향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간 얽혀있던 수많은 일들을 전염병을 핑계로 외면한채 또 자리를 떴습니다. 화해하지 못한 친구, 애매하게 흐지부지된 전시, 마지막 서류제출 직전에 보류한 영주권 서류, 작업 중반에 멈춘 드로잉. 멀끔하게 속내를 내비치지 못하고 또 괜찮은 척,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여유를 부리다가 오해를 쌓아간 많은 것들을 무심히 떠나보냈습니다. 거리가 멀어지면 다시 보기 힘들 테니 좋은 기억만 남기고, 서로 흉지우는 말을 주고받지 않은 채 서서히 멀어지기를 바랐습니다.


 좋았던 시절, 기내에서 잔뜩 여유를 부리며 책을 보고 실컷 잠을 자곤 했지요. 근 5년 만에 고향을 향하는 비행기는 마치 90년대 SF영화를 보듯 생경했습니다. 굳은 표정의 사람들, 얼굴과 몸을 방호복으로 철갑을 한 승무원을 봅니다. 그리고 감정이 실리지 않은 기내방송으로 마스크를 쓰고 벗는 구간을 통보받는 중에 콩돌이의 앙알거리는 비음이 울려 퍼집니다. 잠깐 좌석에 엉덩이를 붙였던 저는 피곤과 긴장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군장을 착용하듯 아기띠를 결속하고 콩돌이를 안아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가까스로 폭발할 것 같은 가슴을 참아 누르며 아기 등을 가볍게 도닥이고 무릎을 굽히고 펴며 물결같은 일렁임을 만들어 냅니다.



<자장노래> 싱글채널 비디오, 3분 50초, 가변크기 2022

"딩동, 딩동-"


새로 자리를 잡은 우리 집에 콩돌이 할머니가 수시로 찾아옵니다. 저는 적응이 안되는 고향에서 가뭄에 말라붙은 저수지 같은 인격으로 엄마의 얼굴에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밤새 뒤척이는 아이를 돌보고, 무릎 아래 다리에는 벼룩 물린 자국이 염증으로 번져 화상처럼 얼룩져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싱글대던 막내아들이 어두운 낯빛과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자기 몸 가누기 힘든 엄마는 초능력인지 젖 먹던 힘인지 있는 대로 짜내어 아들 집에 찾아옵니다.


 시장을 드나드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모두 한 손에 손수레를 끌며 그 안에 묵직한 식재료를 잔뜩 실어 나릅니다. 콩돌이 할머니도 손수레에 야채며, 고기, 과일, 그리고 항상 가장 위쪽에는 파를 꽂고 갑작스레 돌아온 아들의 집을 들릅니다. 이미 냉장고에 들어있는 식재료를 또 가져다주고 답답하면 한 잔 하라며 술을 부어주고는 콩돌이를 유모차에 실은채 칼바람을 이겨내며 집을 떠났습니다. 저는 굳게 다문 입안으로 온갖 생각들을 씹어 빻은 후 그를 술로 들이킵니다. 소주 한 병을 혼자 다 마시지 못하는 주량에 금세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이불에 쓰러져 누웠습니다. 그리고 그간 상한 몸과 으깨진 자존심을 잠으로 회복시켜 갔습니다.


 이제 70이 되어가는 엄마는 듣기 싫은 말을 또 반복합니다.


"40이 되든, 60이 되든 내 눈에는 찡찡대는 아기인걸."


 평생을 스쳐간 고된 생활이 마음을 단련시켜 주었기에 엄마는 미술인지 뭔지 정체 모를 일을 하는 아들의 푸념을 받아넘깁니다. 시시비비를 캐물으면 그저 '미안하다'는 말로 대화를 끝내고, 굳이 부탁을 하지 않아도 찾아와 손자와 미숙한 부모를 떼어놓고, 아들과 며느리에게 한숨 돌릴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늘 괜찮은 척 여유부리던 아들은 평소에 엄한 곳에서 쌓아둔 화를 엄마에게 씩씩거리며 내뱉고는 쓰러져 잠듭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엄마, 그 바이브레이션이랑 꺾는 것 좀 빼고 잔잔하게 불러야 돼. 노래방처럼 하지 말고.'

'[음성 파일 11] 이제 더 못하겠어.'


 콩돌이 아빠는 전시를 위해 엄마에게 열한 번 '섬집 아기'의 녹음을 부탁했고, 평소에 노래를 좋아하던 할머니는 이런저런 기교를 섞다가 반복되는 레코딩에 힘이 빠진 후 결국 아들이 원하는 음색을 완성해 보냈습니다.

<자장노래> 비디오를 위한 음성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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