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영광스러운 기회로 소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고 선생님과 인연이 닿게 되어 큰 기쁨이었습니다. 저의 소소한 작업들을 멋지게 그리고 성심껏 소개해주심에 큰 감사드립니다.
<흡수> 시리즈는 여성들의 자애로운 마음이 삶의 고된 부분을 기꺼이 끌어안듯 낯선 외래문화가 우리 주변의 어머니들에 의해 토착화되는 과정에 영감을 받아 작업한 드로잉입니다. 붉은색이 흰색을 점진적으로 빨아들이며 투명해지는 모습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할머니들의 웃음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2012년 무렵부터 작가의 꿈을 안고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디지털 영상기법을 이용한 풍경을 그리는 것이었고 이 작업을 발전시키면서 대학원과정을 마쳤습니다. 약 5년 정도의 시간 동안 서서히 변화하는 풍경의 모습을 추상으로 표현하면서 여러 꿈같은 기회들을 얻었지만 늘 마음 한편에는 물질이 주는 따뜻함이 그리웠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2017년도부터 제가 청소년기부터 친근하게 사용해 온 만화용 펜촉에 물감을 발라 선을 쌓아나가는 ‘뜨개질 드로잉’ 작업을 시작하였고, 그것이 ‘공중드로잉’이라는 현재의 대형 섬유작업의 초기 모델과 지속적인 상호관계를 이루어간 것 같습니다.
한때는 화려한 미디어아트, 중량감 있는 조형작품, 또는 풍성한 색감의 회화작업을 동경하고 흉내 내보려고 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이런 작품들이 제 마음에 남긴 선망이 제가 만들어 내는 것들에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꼼꼼히 그려낸 펜드로잉들만큼은 제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잘 드러내주는 작업입니다. 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믿듯이 <흡수> 드로잉은 저의 꼼꼼한 손의 노동을 보여줍니다. 더불어서 투박하고 어눌하지만 자세하고 되도록 있는 그대로 말하려는 제 말투와 같이 느리고 섬세합니다. 그리고 바보처럼 자주 길을 잃어도 넉넉히 시간을 잡고 골목을 구경하면서 두리번거리는 저의 발걸음처럼 펜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어느 즈음부터 마무리하곤 합니다.
다시 한번 제가 만들어낸 부족한 것들에 따뜻한 위로를 보내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준히, 열심히 작업하는 좋은 작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연말연시 가족분들과 행복이 가득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12월 28일
콩돌이 아빠 드림
<작업실 v.s. 빠방놀이> 10 x 10cm, 종이에 펜과 연필 2022
“콩돌아, 뭐 해? 안녀엉!”
“으에에엥! 아빠 시러어, 끄너어어-.”
“자기야, 애기 재워야 돼. 그냥 끊어.”
“… 알았어.”
아내와 아들 그리고 콩돌이 아빠는 2020년 9월 우당탕 한국으로 굴러 떨어지듯이 귀국했고, 저는 남아있는 짐과 몇 가지 약속들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2021년 초엽 LA에서 3주간 머물고 있었습니다. 내 곁이 아니면 앉지도, 자지도 않던 아들은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미워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보낸 동영상에 (말을 막 시작한 녀석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괜찮아, 엄마! 내가 있잖아!’라면서 아주 당당하게 저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고, 저는 적잖이 마음이 쓸쓸해졌지요.
3주가 마치 세 달처럼 느리게 흘렀고, 저는 코로나로 공항에서 온갖 일을 겪으며 간신히 귀국했습니다. 지긋지긋한 14일간의 격리기간 동안 다가올 개인전 준비로 마음이 타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기회를 얻기 위해서 기세 좋게 큰 작업을 해낼 것이라는 말과는 달리 실수를 연달아하며 4달을 아무 소득 없이 작업을 망치는 데 사용해 버렸고, 미국에 가는 일정이 작업의 흐름을 오래간 멈추게 했기 때문입니다.
‘격리만 끝나봐… 이렇게, 이렇게 실을 꼬고 붙이면서 밤을 새우면 이즈음 이 정도가 끝날 거고…’
머릿속에서는 온갖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수차례의 경험이 쌓여서인지 이런 생각이 실제 작업을 하면서 무력하게 흐트러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빨리 작업실에 갈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마지막날이 지나고 드디어 격리가 해제되던 날 이른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세수도 하지 않고 누더기 같은 옷을 주어 입으며 아들이 깰까 고양이 걸음으로 집을 나서려 했습니다. 손끝에 온 힘을 주어 현관 앞 나무 미닫이 문을 조심히 여는데 그 작은 드르륵 소리에 아들이 문을 빼꼼 열고 저를 불렀습니다.
“압빠, 어디가…”
“어… 어어~~ 콩돌이 깼어? 아빠가 작업실을 가는데, 금방 다녀올게, 금방.”
아들은 내복차림으로 거실을 아장아장 걸어 나왔습니다. 손에는 가장 좋아하는 경찰차를 들고 내 얼굴을 올려보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압빠, 오늘은 나랑 빠방놀이 할 거야?”
“… 아빠가… 음… 작업실 금방 다녀올게.”
“압빠, 오늘은 나랑 놀이터 갈 거야?”
“…”
정말 발이 거실 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놀이터> 22.9 x 30.5cm (3점), 종이에 연필, 색연필과 수채 2022
콩돌이 아빠는 아들을 품에 안고 아파트 놀이터를 향했습니다. 아들은 신이 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했는데, 몸을 쓰는 것이 아직도 어색한지 자주 넘어지고 놀이기구에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습니다.
“압빠, 저거 무지개 밑끄넌뜰 타자.”
아들은 구불구불한 무지개색 통미끄럼틀을 고사리손으로 가리켰고, 저는 아들을 허벅지 사이에 끼워 같이 경사를 주르륵 내려왔습니다. 미끄럼틀은 생각보다 신났고, 저는 아들과 소리를 질러대며 함박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우레탄 바닥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면서 아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만큼 마음속에는 주먹만 한 돌이 조금씩 크기를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가슴속 돌덩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맞아떨어질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콩돌아, 이제 과자사서 집에 갈까? 집에 가서 뽀로로 볼까?”
“싫어~ 더 놀 거야.”
콩돌이 아빠는 콧구멍으로 들리지 않게 긴 한숨을 뱉어냈고, 아들과 놀이기구를 타며, 눈을 맞추며 굽혔던 허리를 펴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놀이터에는 제 또래 엄마들 그리고 우리 엄마 또래의 할머니들이 깔깔 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넘어질까 그 주변을 따라다니며 손을 벌려 안전지대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문득 놀이터의 젊은 엄마들은 어떤 꿈과 경력을 포기했을지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은 어떤 색깔일지, 어떻게 주름져있을지 떠올려보았습니다. 저는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남편의 양복과 자식들의 교복을 다려놓고, 가족을 위해 시장에서 산 무거운 식재료들을 손수레에 담아 끌며 어느덧 할머니가 된 여자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엄마가 무심코 뱉은 ‘애 키우고 살림하다 보니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지나버렸어.’라는 말이 놀이터 벤치에 모여 앉은 할머니들의 입가에도 맴돌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입은, 어디서 온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물방울(?) 아메바(?) 같은 문양의 옷과 삶의 생기를 부풀려준 그들의 파마머리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습니다.
“콩돌아, 이제 집에 가자.”
“시러어어!”
“가 쫌, 이 놈 새끼.”
저는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뒤범벅이 된 아들을 들쳐 안고 집에 들렀다가 작업실로 뛰어내려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