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양 떼처럼 펼쳐진 고원의 길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 하늘길 트레킹

by 박상준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코로나19년 여전히 기승을 부리지만 그나마 미세먼지가 사라진 4월 초입의 주말, 강원도 정선 운탄고도 하늘 길을 걸으면서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한 것을 실감했다.

운탄고도는 석탄(炭)을 '운반'(運)하는 높은(高) 길(道)이라는 뜻이다. 평균 해발 1천100m에 이른다. 하늘 아래 첫 길이다.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중심지인 이곳은 80년대까지 탄광이 산재한 황량하고 칙칙한 곳이었다. '막장'이라는 말이 은유하듯이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갱도(坑道)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광부들의 애환(哀歡)이 깃든 길이다.

하지만 석탄의 시대가 지나가고 국민들의 삶이 질이 크게 향상되면서 운탄고도 주변은 '막장'에서 국내 대표적인 리조트로 변신했다.

정선카지노, 하이원리조트, 골프장, 케이블카까지 조성되면서 '석탄자원'대신 '관광자원'이 됐다. '땅의 운명'이 바뀐 것이다. 운탄고도 하늘길도 마찬가지다.

하늘길은 10여 개의 코스가 종횡으로 엮여있다. 부담 없이 자신의 체력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우리가 고른 길은 하늘 마중길(9.4km)이다. 하이원리조트에서 출발해 도롱이연못~낙엽송길~전망대~하이원 CC까지 3시간 코스다.



하늘길을 향해 올라가는 조붓한 오솔길은 낙엽송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고 조릿대 숲에는 별꽃, 엘레지, 산 진달래, 현오색 군락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봄꽃을 감상하며 올라가는 길은 평소 운동을 게을리한 저질체력도 씩씩하게 올라갈 만큼 무난한 코스다. 경사가 완만하고 일상에 찌든 머리를 맑게 하는 신선한 공기와 화사하고 화려한 봄꽃이 반겨줘 힘든 줄 모른다.

비좁은 오솔길로 이어진 그늘 짙은 숲을 벗어나 시야가 확 트이는 8부 능선의 임도에 들어서면 뜻밖에 커다란 연못이 나타난다. 도롱이연못이다. 1970년대 산허리를 파 들어 간 갱도가 지반을 침하시키면서 생겼다. 남편을 거칠고 위험한 일터에 보낸 광부 아내들은 연못 속 도롱이를 보면서 남편의 안녕을 빌었다. 도롱이가 무탈하게 잘 놀면 남편도 무사한 거다.

(숲길을 거쳐 하늘길에 오르면 만나는 도롱이연못)


도롱이연못 풍경을 감상하며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오가 1849년에 쓴 '월든, 숲 속의 생활'이 불현듯 떠올랐다.

소로우는 2년 2개월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문명(文明)과 떨어진 월든 호숫가에서 자급자족하며 숲 속 작은 동물들과 교감하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숲과 호수의 소리, 그리고 나뭇가지에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외롭지만 자유로운 생활을 누렸다. 그는 이곳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인식을 가졌다.

도롱이 연못은 소로우가 살았던 월든 호수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그 옛날 풍광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곳에서 오두막을 짓고 산다면 누구나 숲 속의 은자(隱者)가 될터다.


하늘길의 비경인 도롱이연못을 지나치면 본격적으로 운탄고도로 접어든다. 푸른 하늘이 유난히 가깝게 보인다. 임도 우측으로 멀리 보이는 백두대간 능선이 한 폭의 수묵화 같다.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는 고원의 길'이라는 수식어를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그 길은 갱도(坑道)의 질곡(桎梏)을 극복해야 하는 고난의 길이었다. 석탄도 실어 나르고 광부들의 무거운 발걸음도 견뎌낸 길이다.

광부들은 임도에 접한 갱도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안전모의 작업 램프에 의지한 채 석탄을 캤다. 지열이 30도를 웃도는 뜨겁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 하루 일과를 마친 광부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그 길을 따라 가족이 기다리는 마을로 내려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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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지(왼쪽)와 바람꽃)


굽이굽이 석탄을 실어 나르던 '검은 길'은 구름을 벗 삼아 걷는 '하늘길'로 변해 고원길 트레킹의 매력을 제대로 보었다. 해발 1100m의 고지대에서 바라본 하늘은 모처럼 산뜻했다. 마침 이날은 미세먼지도 걷혔다. 탁 트인 시야에 구름과 먼 산의 능선을 조망할 수 있었다.

이 길의 끝에서 하이원리조트를 바라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알프스 산맥의 관광지 풍경을 담은 그림엽서를 보는 것 같다. 강원도 오지의 석탄가루가 흩날리던 황량한 탄광지대는 눈부신 초록의 바다로 변해 이국적인 콘도와 골프장이 들어서고 그 위에 케이블카가 지나간다. 그리고 삭막한 검은 숲과 임도는 하늘길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가 됐다. 땅의 운명이 이렇게 바뀔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코스 / 마운틴콘도~도롱이연못 ~갱도터~낙엽송길~전망대~하이원 CC(9.4km)


*tip / 강원랜드를 품고 있는 백운산엔 백운산 코스와 하늘길 코스 두 가지가 있다. 등산보다 트레킹을 즐긴다면 하늘길이 낫다. 들머리에서 하늘길로 올라가는 길은 숲이 우거지고 경사가 완만해 걷기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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