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유곡 수수한 여울 길.

경북 상주~충북 영동 구수천 팔탄 옛길

by 박상준

세심석(洗心石)

‘마음을 씻는 바위’다.

경북 상주 옥동서원을 들머리 삼아 수채화로 그린 듯 은은한 빛깔의 철쭉이 지천인 나지막한 산을 넘어가면 웅장한 바위가 버티고 서있다.

그 바위가 구수천을 끼고 영동 황간의 반야사(般若寺)로 가는 이정표다.

바위를 바라보며 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지만 누군가는 바위에 걸린 밧줄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나 보다.

밧줄을 타고 힘겹게 올라가 바위 꼭대기에 서면 이름처럼 세속에 찌든 마음을 말끔히 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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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천 팔탄 옛길 옥동서원 쪽 들머리에 있는 세심석>


밝고 산뜻한 4월의 봄날 옥동서원에서 반야사까지 구수천(龜水川)을 끼고 왕복 12km를 걸었다. 상주에서 발원한 구수천은 백화산 산허리를 따라 맴돌고 휘돌아가며 팔탄(八灘/여덟 여울)을 만들었다.

날머리에 있는 반야사는 충북 영동과 경북 상주의 경계인 한성봉 자락 안쪽에 자리한 천년 도량이다.

‘반야사’로 가는 길목에 집체만 한 세심석이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반야(般若)’는 불교의 근본 교리로 ‘지혜’를 뜻한다.

구도에 몰두했던 옛 스님과 공부에 지친 옥동서원의 유생(儒生)들이 마음을 닦은 뒤 이 길을 오가며 ‘지혜’를 구하라는 뜻으로 바위 이름을 짓지 않았을까. 구수천에 접한 이 길을 걷다 보면 대체로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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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천 팔탄 옛길 중간쯤 건너게 되는 출렁다리>


심산유곡(深山幽谷)에선 우려했던 미세먼지도 맥을 못 추었다. 개울과 하늘만 보이는 참 깊은 골짜기다.

햇볕은 따사로웠지만 구수천 협곡에서 부는 바람은 청량했다. 개울과 절벽, 개울과 숲 사이에 오솔길이 교대로 나타났다.

출렁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접어들었다. 줄지어 선 밤나무 사이로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길에만 집중하며 걸었다.

병풍처럼 이어진 벼랑인 난가벽(欗柯璧)을 지나니 요란한 물소리가 들리며 임천석대(林千石臺)와 마주했다. 고려가 망한 뒤 이곳에 터를 잡은 북과 거문고 명인(名人) 임천석이 태조 이성계가 부르자 절벽에서 뛰어내렸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 절벽이 후에 임천석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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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사에서 너널지대를 바라보면 호랑이형상을 볼 수 있다>


초록이 신선한 숲을 음미하며 걷다 보면 반야사 옛터를 거쳐 문수전을 머리에 이고 있는 만경대 절벽과 세조가 목욕을 했다는 영천이 눈을 잡아끈다. 확실히 전설은 풍경을 돋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산허리에 난 조붓한 길을 도니 산비탈이 온통 바위로 덮인 너덜지대가 길을 막아선다. 이 아름다운 산에 웬 돌 더미인가 싶었으나 그 색다른 풍광이 이 길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사찰 앞 돌다리인 세월교까지 절벽에 접한 돌길은 짧지만 풍경이 수려하다. 들꽃도 소담스럽게 피었으니 걷는 길도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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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흐트러지게 핀 반야사 담장>


마침내 철쭉이 만발한 반야사 경내에 진입해 구수천 건너 너덜지대를 바라보니 신기하게 꼬리까지 지켜둔 거대한 호랑이 형상이 드러났다. 가까이에서 보지 못하는 것을 멀리 보면 깨닫는 것이 있다는 것을 너덜지대가 가르쳐주었다.

구수천 팔탄길은 가끔 거친 돌길이 발바닥을 자극하지만 대체로 부드럽고 완만한 길이다.

이 길을 걸었던 반야사 스님들만 ‘무상무념(無想無念/일체의 상념을 떠나 마음이 빈 듯이 담담함)을 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옛날 유생들도 이 길에서 뭔가를 채우기도 하고 비우기도 했을 것이다.

길과 자연에 집중하다 보면 누구나 세상의 잡스러운 생각이 훌훌 달아날 것이다. 구수천 팔탄 옛길은 바로 그런 길이다.


*코스 / 경북 상주 옥동서원~출렁다리~임천 석대~너덜지대~충북 영동 반야사(5.5km)


*tip/옥동서원 또는 반야사 어느 쪽에서 출발해도 좋다. 다만 승용차를 갖고 갈 경우 왕복으로 걸어야 하는데 들머리에 작지만 가파른 산을 두 번 넘어야 하는 옥동서원보다는 반야사에서 출발해 세심석을 반환점으로 삼아 걷는 것이 좋다. 이렇게 걸으면 대략 10km를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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