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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준 Aug 03. 2022

씨킴의 '꿈'

씨킴의 개인전 'Overcome Such Feelings'

그는 미술계에 명함만 내밀면 누구나 알만한 명실상부한 작가다. 첫 개인전을 밀레니엄 한 해 전인 1999년에 가졌으니 업력(業力)이 4 반세기를 넘는다. 더구나 올해 13번째 개인전을 오픈했으니 대가(大家)는 몰라도 중견작가로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하지만 그에겐 여전히 ‘작가’라는 타이틀이 착 달라붙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미술계에서 그를 주목하는 이유도 작품 때문만은 아니다. 그냥 작가가 아니라 국내 2개의 갤러리와 5개의 뮤지엄을 갖고 있는 미술계의 거물이자 영국 미술전문지 ‘아트리뷰’ 선정 세계 100대 컬렉터에 이름을 올린 글로벌 그림 수집가다. 또 연 매출 5000억 원을 육박한다는 아라리오산업의 대표이기도 하다.


(3층 전시장에 설치된 시멘트를 섞어 만든 조소 작품)


‘예술을 하고 싶어 하는 부자’라는 평을 듣고 있는 그는 호당 그림값에 일희일비하며 한 점이라도 더 팔기 위해 자신의 그림에 끊임없이 회의하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생계형 작가들에겐 ‘꿈’ 같은 인물이다. 씨킴(CI KIM)으로 불리는 김창일(71) 작가 이야기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휴일 그의 그림을 만나러 충남 천안 아라리오갤러리를 찾았다. 갤러리 안팎은 데미언 허스트, 아르망 페르난데스, 키스 헤링, 수보드 굽타, 코헤이나와, 인바이킴등 동공이 지진을 일으킬만한 멋진 작가의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예술공간이다.


바로 옆은 그의 회사가 임대해준 신세계 백화점 천안점과 천안터미널이 있다. 쇼핑 인파로 북적거리는 백화점을 지나 씨킴 개인전이 열리는 아라리오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자 도심 속 절간처럼 한산했다. 


(4층 전시장 전경)


티켓을 끊기 위해 기다리는데 갤러리 내 아트샵에 마침 전시회의 주인공이자 ‘아라리오 스몰시티’의 주인장인 씨킴이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하얀 브이넥 셔츠 위에 얇은 조끼를 걸치고 밑단이 찢어진 청반바지에 버킷햇을 썼으며 검정색 횔라 샌들을 신었다. 기업인이 아니라 작가라는 것을 웅변하는 듯했다. 피서지에 온 듯한 자유분방한 패션은 마스크만 벗지 않는다면 영락없이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직원에게 씨킴 면담 신청을 한 뒤 전시회장으로 들어섰다. 2층과 3층의 갤러리엔 회화, 조각, 설치, 드로잉, 레디 메이디 오브 제등 60여 점의 작품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이번 개인전 제목은 ‘Overcome Such Feelings’지만 ‘꿈’이라는 소제목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다.

그의 그림은 추상화도 있고 구상화도 있다. 대작도 있고 소품도 있다. 난해한 그림도 있고 순정만화에 나올만한 순진무구한 그림도 있다. 하지만 공통점은 폐기된 오브제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작업장을 재현한 공간, 바닥에 깔린 카펫에 물감이 얼룩지면 작품으로 만든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작업장 바닥에 카펫을 깔고 그 위에 이젤을 세우고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도중 물감이 떨어져 어느 순간 온갖 색으로 얼룩진 카펫을 버려야 한다. 씨킴은 이런 카펫에 포인트를 줘 작품으로 만든 뒤 전시장에 걸었다.

카펫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신문, 잡지, 우편엽서, 포스터 등 이미지와 텍스트가 포함된 인쇄물도 그에겐 작품의 소재이자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그래서 작품 속엔 영국 팝스타 아델의 얼굴이 있고 임차인인 신세계백화점을 떠올릴만한 ‘신세계’라는 이름이 추상화 가운데 쓰여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그림은 기존 작가와는 다른 물성을 드러낸다. 재료가 다르기 때문이다. 캔퍼스 표면 위에 커피가루를 부어 붓으로 바른 후 그 표면이 마르기 전에 들기름을 마치 마감 코팅제처럼 뿌렸다. 커피와 들기름뿐만 아니라 토마토와 블루베리와 같은 과일과 시멘트, 철가루, 목재, 목공용 본드 등 이질적인 재료도 작품 속에 녹여 넣었다.


(페트병을 활용한 씨킴의 소품)


갤러리 큐레이터는 “재료들과 한 데 엉켜 싸우며 두려움을 극복(Overcome)해가는 작업방식은 죽음의 늪에서 생명을 찾아내 영혼을 소생시키고자 하는 예술적 의지의 발현”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엉뚱한 발상은 창의적이고 재기(才氣)가 번뜩인다. 물과 기름처럼 대립하는 재료들을 캔퍼스에 융합시켜 그가 추구하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없이 시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엔 대해선 공감과 비판이 첨예하게 공존할 것으로 보인다. 예술적 의지와 참신한 시도가 완성도 높은 그림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 때문에 씨킴의 작가적 위상이 올라갈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직은 씨킴의 그림엔 김창일의 명성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는 듯하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난 내가 가지고 있는 DNA가 작가가 가지고 있는 DNA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얘기하듯 폼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 고통을 누구도 모른다”고 했다. 공감한다. 그는 ‘아트’를 비즈니스로 승화시켜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씨킴 / 우측)


그림을 감상하던 중 잠깐 면담할 기회를 가진 그에게 동행한 화랑 대표가 물어봤다. “당신은 작가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인 컬렉터다. 당신이 컬렉터 입장이라면 당신 그림을 살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씨킴은 다소 난감한 얼굴로 “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릴 뿐이다”라고 했다. 

시원하고 조용한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그림 감상을 마치고 옥외 계단으로 내려오는데 그가 소유한 갤러리 건물 1층 스타벅스 매장엔 고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작가적 DNA는 물론 사업가적 감각도 씨킴의 자산인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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