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의 말, 파문이 일다.
한 달 전 어느 날.
“아빠는 왜 밥 먹을 때 폰 봐? 나도 보고 싶잖아!”
반찬을 집으려던 애미의 젓가락이 허공에서 멈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애비는 가족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지만, 함께 먹고 있지는 않았다. 그의 시작과 끝은 휴대폰과 함께였고, 스포츠뉴스가 더 편안함을 주었다.
애미는 스리에게 더욱 애썼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아이의 말에 집중했고, 열심히 반응했다. 스리가 아빠의 휴대폰에 관심 갖지 않도록.
그런데 1학년이 된 스리는 더 이상 애미가 보여주는 것만 보고, 들려주는 것만 듣는 유아가 아니었다. 스스로 보고, 듣고, 생각하는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그날 스리 눈에, 식탁에서 폰만 보는 아빠의 모습이 뚜렷이 새겨졌다.
스리는 아빠에게 질문을 던지고는, 애미를 바라본다. 마치 대답할 사람은 애비가 아니라는 듯이.
‘엄마, 왜 아빠한테는 아무 말 안 해?’
애미의 귀에 스리의 마음이 들리는 듯하다.
“글쎄... 아빠는 왜 밥 먹을 때 폰을 보는 걸까? 엄마도 잘 모르겠다.”
애미 스스로도 납득되지 않는 대답이었다. 꾸역꾸역 밥을 삼킨다. 애미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미 너무 깊은 곳에 들어가 있어서 나올 줄을 모르다. 그 말을 찾아서 꺼내고 싶지 않다. 그냥, 스리가 이쯤에서 넘어가주길 바란다.
그러나 의문이 들기 시작한 스리가 멈출 리 없다.
스리는 애미 귀에 바짝 다가와 속삭인다.
“엄마, 엄마가 아빠한테 폰 집어넣으라고 해.”
스리가 느끼는 부당함과 불평등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애미는 그저 스리의 눈을 바라본다. 무슨 말이든 해주어야 하는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스리야, 아빠는 폰이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나 봐. 그리고 그건... 어른들의 세계야.”
또다시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하고 만다. 어른은 되고, 아이는 안 된다니!
애비는 묵묵부답. 그는 화면 속 세상에 갇힌 채 숟가락질만 하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왜 말이 되지 않게 되었을까.
스리가 이유식을 시작하며, 식탁 한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스리 그동안 젓가락질 많이 늘었지?
저 집중하는 손과 입. 너무 귀엽지 않아?
스리 먹는 것 좀 봐봐. 폰 좀 치우고! “
“나 설거지할 동안 스리 좀 봐줄 수 있지?”
애비는 애미의 모든 말이 명령인 것만 같다.
타지에서 시달린 그도 쉼이 필요했다.
일주일 만에 온 집은 안식처가 아니라 또 다른 일터 같았다.
귀여운 스리, 애쓴 애미...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몸은 이미 무겁고, 말은 목구멍을 헤매다 사라져 버린다.
... 애비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간다.
애미가 원한 건 그저 동지였다.
외로웠던 육아에 말벗이 필요했을 뿐이다.
도움의 손길보다, 단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스리 많이 컸네. 힘들었지?”
대답 없는 자리에서,
애미는 스리와 놀아주며 설거지를 한다.
그렇게 서로의 말이 닿지 않는 순간들이 두텁게 쌓여갔다.
그날 스리의 한마디는
그 층의 한 귀퉁이를 조금, 긁어내는 말이었다.
애미는 어렴풋이 알았다.
스리의 말부터 말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어떻게?
어떤 말로?
애미는 고개를 떨군 채 입을 굳게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