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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을 거부한 여름 꽃길

by 발품뉴스

8월 추천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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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성주군 ‘성밖숲’)


아무 이유 없이 아이들이 죽어나가던 마을이 있었다. 원인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풍수를 따랐다. 그렇게 성의 서문 바깥에 숲을 조성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숲은 전통 마을숲으로 남았다.


오늘날 그 자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고, 500년에 가까운 나무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흔한 조경지나 도심 공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다. 나무 한 그루, 뿌리 하나에도 이유가 있다.


여름이면 왕버들나무 아래로 야생 맥문동이 보랏빛을 띠기 시작하면서 이 숲은 계절의 전환점을 알린다. 지금은 아직 일부만 피었지만, 곧 숲 전체가 연보라에서 짙은 보라로 천천히 물들어갈 것이다.


이곳을 찾는 건 단순히 꽃을 보러 오는 행위가 아니라, 그 속에서 수백 년을 버틴 자연과 사람의 흔적을 함께 마주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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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성주군 ‘성밖숲’)


전국 맥문동 명소 가운데도 독보적인 이야기를 지닌 성밖숲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성밖숲

“수령 500년 왕버들 52그루, 보랏빛 맥문동 시작된 전통 마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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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성주군 ‘성밖숲’)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일원에 위치한 ‘성밖숲’은 단일 수종으로만 구성된 보기 드문 전통림이다. 이 숲은 조선 중기 마을에 이유 없이 어린아이들의 죽음이 이어지자 이를 막기 위한 풍수적 장치로 조성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성주읍성의 서문 밖에 조성됐다는 의미 그대로 ‘성밖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성 이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 숲은 단순한 경관 요소를 넘어 마을의 생활사와 민속 신앙, 풍수적 전통까지 담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숲 안에는 수령 300년에서 500년에 이르는 왕버들나무 52그루가 서 있다. 하나의 종으로만 구성된 이 단순림은 우리나라에서도 보기 드물고, 국가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어 있다.


왕버들의 수직적 수형과 구불구불한 줄기가 만들어내는 숲의 구조는 공간 자체를 독립된 세계로 느껴지게 만든다. 계절에 따라 햇살이 드는 각도와 그림자의 모양이 달라지고, 숲 아래 자생하는 풀과 들꽃도 계절마다 다르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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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성주군 ‘성밖숲’)


성밖숲이 특히 주목받는 시기는 여름철이다. 8월이 되면 왕버들나무 사이로 야생 맥문동이 피어나 숲 전체가 보랏빛으로 변한다.


현재는 아직 개화 초기 단계로 군데군데 꽃송이가 보이지만, 시기가 더 무르익으면 보라색이 뚜렷하게 확산되며 특유의 서늘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맥문동은 자생지에서 자라날수록 색이 깊고 식생 밀도가 높아지는데 성밖숲은 자연스러운 군락을 유지하고 있어 인위적인 조경지보다 훨씬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이 시기엔 상업적인 포토존이나 인파 없이도 조용한 산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여행지로서의 매력도 높다.


이 숲은 단지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숲의 형성과 유지 배경, 종 구성, 공간 배치까지 모두 하나의 전통적 설계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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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성주군 ‘성밖숲’)


마을을 보호하고,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며, 동시에 세대를 거쳐 전승되는 생활문화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성밖숲은 다른 공공녹지와는 본질적으로 구분된다.


이런 점은 지역 주민들의 활용 방식에서도 확인된다. 축제나 행사가 없는 날엔 생활 체육, 반려견 산책, 야간 산책 등 지역민의 쉼터로 널리 쓰이고 있다.


성밖숲은 연중무휴 24시간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다. 주차는 소형 차량 50대, 대형 차량 5대까지 가능해 차량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지금처럼 맥문동이 서서히 피기 시작하는 시기에는 방문객이 적어 더욱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숲의 구조와 색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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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성주군 ‘성밖숲’)


짧은 여름, 이 오래된 숲이 주는 정적과 보랏빛의 조화를 놓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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