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일상

넌 정체가 뭐니?

by 데이지

어느 해인이가 가을이 시작되면서 유독 쓸쓸하고 공허했다. 남편과 아이들 뒤치다꺼리로 정신없이 아침을 보내고 나면 맥없이 늘어지기 일쑤였다.

날은 왜 그렇게 맑은지 정처 없이 걷다가 꽃집 앞에서 홀리듯 발길을 멈췄다. 유리창 안에서 가을 소국이 아우성치며 눈길을 잡아끌었다. 온갖 빛깔의 꽃송이가 그냥 지나치면 가만히 안 둘 기세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한 발 또 한 발 빨려 들어가듯 소국 앞에 섰다. 그리고 작은 송이들을 헤집어 가장 화려한 빛깔의 소국 한 다발을 가슴에 품고 돌아왔다.

신문지로 둘둘만 국화를 품에 안고 오는 내내 가슴이 벅찼다.


저녁에 딸들과 남편이 식탁에 놓인 국화를 보더니 웬 꽃이냐는 표정이다.

"엄마, 누가 줬어?"

큰딸이 묻는다.

"아빠가 사 온 거야?"

작은딸도 묻는다.

"야, 기념일도 아닌데 아빠가 사 왔겠니?"

"그러게 아빠도 궁금해. 누가 준거야?"

남편도 묻는다.

"그럼 엄마가 산 거야?"

"너 바보야! 꽃값이 세상에서 제일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엄만데 엄마가 샀을 리가 없지."

큰딸이 그럴 리 없다고 단정 지으며 동생에게 쏘아붙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특별한 날 남편이 들고 오는 꽃다발을 받으며 한 번도 돈이 아깝다는 말보다 좋다는 말을 먼저 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큰애 말이 맞아. 그럼 어떤 놈팡이가 준거야?"

남편이 아주 궁금한 듯 한 소리했다. 딸들도 가방을 멘 채로 멀뚱멀뚱 내 얼굴만 쳐다봤다.

"어디서 나긴 어디서 나, 엄마가 산 거지!"

"거짓말마 엄마!"

"정말이야, 아빠 말고 누가 엄마한테 꽃을 사주니?"

"그건 그런데, 엄만 꽃값이 아깝잖아 그런 엄마가 직접 꽃을 샀다는 말을 믿으라고?"

큰딸이 있을 수 일이라고 재차 의심한다.

"믿든지 말든지 그건 네 맘이고 꽃은 예뻐서 산 거야. 앞으로 꽃값 아깝다는 말 취소야."

"정말 엄마가 직접 꽃을 샀나 보네 믿어 딸!"

남편도 반신반의하면서 딸들에게 믿으라고 했다.


국화 한 다발이 이렇게까지 별스러운 일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 이후로 한 단씩 사는 국화는 너무 빨리 시들어 아깝다는 생각에 화분을 사기 시작했다.

가을이 되면 색깔별로 하나에서 세 개까지, 활짝 핀 화분에서 몽우리진 화분으로. 그래야 활짝 핀 꽃을 오래도록 볼 수 있으니까.

공허하던 마음을 국화꽃으로 메우며 가을을 넘겼고 생각해 낸 것이 남편에게 한 달에 한번, 꽃을 사 오라고 숙제를 주었다. 아무리 꽃이 좋고 위안이 되더라도 금세 시들어버리는 꽃값이 아까운 것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사 오는 꽃은 한송이로 한정을 했다.


우리 집은 그 뒤 한 달에 일주일은 식탁에 꽃이 놓였다.

처음 몇 달은 좋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남편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달도 늘었다. 딸들은 매월 말일이 가까워 올 수록 빚쟁이 독촉하듯 하루하루 남아 있는 날을 주지시켜줬고 남편은 깜빡했다는 핑계로 넘어가곤 했다.

몇 년이 지나고 그마저도 흐지부지 되었다.


"자 받아!"

"웬 꽃이야?"

"당신이 한 달에 한 번씩 사 오라며 그래서 샀지."

"그거 잊고 산지가 얼만데 뜬금없긴."

"오늘이 10월에 마지막날이니까."

"어쨌든 받으니 좋다. 고마워!"

어쩌다 생각날 때 사들고 오는 꽃이 특별한 기쁨을 주기도 해서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받은 장미 한 송이가 한 달이 지났다. 보통은 일주일쯤 지나면 꽃대가 꺾이거나 시들어버리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잘 버터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화병에 물을 갈아줄 때마다 신기하다. 더불어 한 달은 꽃과 아침을 맞았다.

그런데 넌 도대체 정체가 뭐니?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