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에서 라운드 중에 생긴 일
한라산 cc로 지인들과 라운드를 나갔다. 며칠 연습을 했다고는 하지만 몇 년만이라 조금은 걱정스러웠고 또 넷이 한 팀으로 즐기는 스포츠라 피해를 주지나 않을까 부담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넓고 푸른 페어웨이를 보는 순간 부담감은 조금씩 진정이 됐고, 잘 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두 번째 찾은 이 골프장은 여전히 카트 주변을 맴도는 까마귀가 있고, 호수엔 겨울 철새 물닭 무리가 보였다.
순서에 맞춰 티샷을 하고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활짝 핀 꽃이 눈에 들어왔다. 늦가을에 웬 꽃이 피었나 다가가니 앙상한 가지들 속에 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 있었다.
"어, 넌 누구니?"
"전 영산홍이에요."
"그래 맞아 영산홍, 영산홍은 봄에 피는 꽃인데, 어떻게 지금 꽃을 피운 거니?"
"저도 잘 모르겠어요. 바람님이 등을 살살 간지럽히는 바람에 봄이 온 줄 알았죠. 꽃이 필 때면 바람님의 따뜻한 손길이 제 등을 어루만져주시거든요. 깨어보니 모두들 자고 있어요.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요."
홀로 핀 영산홍은 어쩔 줄을 몰라 울상이 되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지요.
"그래, 그랬구나! 어쩌지, 나도 잘 모르겠는걸. 카트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에게 물어보렴. 까마귀는 영리해서 뭐든지 학습하니 아는 것이 많단다."
"고마워요. 그럼 까마귀님이 방법을 알려 주실까요?"
"글쎄, 지금은 까마귀에게 물어볼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구나.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니에요. 절 알아봐 주셨는걸요."
영산홍은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카트 위 까마귀를 쳐다보았어요. 까마귀는 카트에서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어요.
"까마귀님! 까마귀님! 지금 바쁘신가요? 저 좀 도와주세요."
까마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며 말했어요.
"누구야! 시끄럽게, 좀 조용히 하란 말이야."
"까마귀님! 미안해요. 하지만 제가 봄인 줄 알고 꽃을 피웠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도와주세요."
영산홍은 이번에는 답을 얻을 기대를 하고 까마귀에게 물었어요. 카트 위 까마귀는 바구니에 담겨있는 가방 지퍼를 열려고 애쓰다 말고 귀찮은 듯 투덜거렸어요. 가방 속에서 분명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나고 있었거든요.
"그걸 왜 나한테 묻지! 그건 내관심사가 아니야. 난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단 말이야."
까마귀는 귀찮은 듯 말하고는 다시 가방 지퍼를 열기 위해 고개를 숙였어요. 그 모습을 보며 영산홍은 다시 까마귀를 불러 부탁을 했지요.
"제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면 알려주세요!"
"아휴 귀찮아! 저 호숫가 물닭에게 물어봐. 물닭은 봄이면 먼 나라로 여행을 다니니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여행하며 많은 것을 보았을 테니 말이야."
까마귀는 말을 끝내고 다시 바구니 가방지퍼를 여는 일에 열중했지만, 가방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어요.
"고마워요. 까마귀님! 물닭님은 방법을 알고 계시겠죠!"
"난 바빠, 바쁘단 말이야."
심술을 부리는 까마귀에게 인사를 한 영산홍은 다시 힘을 내 호숫가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 물닭 무리를 향해 소리쳤어요.
"물닭님! 물닭님!"
"누가 우릴 부르지!"
소리에 주변을 둘러보던 물닭이 영산홍을 봤어요. 무리에서 가장 똑똑해 보이는 물닭이 대답했어요.
"너였니?"
"네. 물닭님 궁금한 것이 있어요?"
"뭔데? 우린 점심을 먹으려던 참이야. 너도 먹겠니? 힘들어 보이는구나!"
"괜찮아요. 배고프지 않아요. 지금은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요. 그보다 제가 봄인 줄 알고 꽃을 피웠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따뜻한 바람님이 오셔서 봄으로 착각을 했어요."
"그래, 너도 그랬구나! 네 잘못이 아니란다. 가끔씩 있는 일이야. 지구가 아파 열이 나니 남극의 바람이 지구를 식히려고 하다 덩달아 뜨거워졌거든. 그래서 따뜻한 바람이 너를 깨웠나 보구나! 아가야 지금은 잠을 잘 때야 어서 가서 다시 자렴."
"정말요? 지구가 아팠기 때문이군요. 휴, 제 잘못이 아니었어요. 이제 지구도 그만 아팠으면 좋겠어요."
"넌 참 마음이 예쁘구나! 걱정 말아라 지구는 곧 열이 내리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테니."
"다행이에요."
"이번엔 잘 살펴서 봄에 꽃을 피우거라."
영산홍은 물닭님의 말에 안심이 되었어요.
"네 그럴게요. 고마워요 물닭님!"
영산홍은 물닭에게 인사를 하고 핀 꽃잎을 하나 둘 모아 움츠리며 곧 깊은 잠이 들었어요.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 영산홍은 다시 깨어나지 않을 거예요.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잠들어 있는 영산홍을 물닭이 쓰다듬어 주었어요.
영산홍은 추운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오면 따뜻한 바람님 손길을 만나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기만의 계절을 살아갈 거예요. 영산홍이 활짝 웃는 봄이 벌써 기다려지네요.
"김프로! 김프로!"
일행이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티샷을 끝내고 카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영산홍을 뒤로하고 일행들 곁으로 가면서 못내 아쉽게 날아가는 까마귀를 보았다.
가방 속에 있던 초콜릿은 먹지 못했구나! 나인홀을 돌고 일행들과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보냈던 오랜만의 즐거운 라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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