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걷는 행복

그림으로 걷는 명신마을

by 데이지

딸은 육지에서 놀러 온 친구와 저녁 약속을 잡고 나갔다. 나가면서 친구와 저녁을 먹고 친구 배웅까지 하고 올 테니 공항으로 데리러 와달라는 말을 덧붙인다. 더워서 버스를 타고 올 수가 없다는 것이 이유다.

날도 덥고 딸의 약속으로 입 하나 덜었으니 이때다 싶어 남편에게 딸을 핑계 삼았다.

"봉이도 없고 더운데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씩 먹을까?"

"그럴까? 그러고 보니 올해 콩국수를 못 먹었네."

"그러게 봉이 싫어하니 어쩔 수 없었지! 잘 됐다 오늘 먹어요."

"어디로 갈까?"

"맛집 찾는 중, 좀 기다려봐."

"여기 어때요?"

"좋아, 맛있겠네!"

찾은 식당은 가끔 가던 곳으로 여름 특별 메뉴 검은 콩국수가 있었다. 오랜만에 들렀더니 한쪽 벽면을 막아 식당 안은 좁아졌고, 사장님 혼자 음식을 만들고 나르고 무척 바빠 보였다. 시간이 조금 걸린다는 사장님 말에 괜찮다고 하고는 콩국수 두 그릇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시간이 걸린다는 사장님 말에 갑자기 허기가졌다. 드디어 검은 콩국수가 나왔다. 방울토마토 반쪽과 검은콩물 얼음 알로 모양을 낸 맛 나 보이는 콩국수를 보자 침이 꿀꺽, 한 젓가락 집어 얼른 입에 넣었다. 시원하고 고소한 맛이 한 번에 목을 타고 넘어갔다.

"어우, 시원해! 검은콩이라 그런지 더 고소한데."

남편도 어느새 한 젓가락을 후룩 몇 번 씹지도 않고 삼키며 말한다.

"그러게 맛있네! 오늘 저녁 메뉴 딱이지!"

내 말에 남편도 그렇다며 입은 먹느라 바쁘고 쉬고 있던 고개만 연신 끄덕인다. 순식간에 우린 시원한 콩국수를 한 그릇씩 비우고 두둑해진 배를 두드리며 잘 먹었다는 인사와 함께 식당을 나왔다. 딸을 데리러 가기로 약속한 시간은 남았고, 공원이라도 걸을까 하고 찾은 곳이 공항 근처 동네다.

적당히 주차를 하고 걷기 시작한 곳이 명신마을이다. 큰 도로에서 조금 들어가니 한쪽은 시골마을 풍경이고, 맞은편 쪽은 넓은 정원이 있는 주택가였다.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무화과 향이 가득한 정겨운 시골길이었다. 달큼한 무화과 향과 함께 담 옆에 조그만 텃밭엔 상추며 가지, 오이, 고추, 토마토 등이 심어져 있고 돌담을 타고 오르는 호박도 반갑다. 담과 담이 붙은 집, 대문에 걸려 있는 문패가 똑같은 집들, 골목 안쪽에선 저녁 상 차리며 달그락 그릇 부딪치는 소리와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소리, 어느 것 하나 낯설지 않다. 마을회관 앞에는 마을 안내도가 걸려 있고 작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카페도 보였다. 마을 사랑방 같은 이곳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마을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무언가 특별한 소식이 있지는 않을까?


파랗고 빨간 신호등 건널목을 지나 다다른 곳은 반듯반듯한 주택가였다. 높은 담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 사이로 잘 다듬어진 향나무와 감나무가 보인다. 높은 담 때문에 집안은 보이지 않고 대문은 닫혀 있어 궁금증이 나기도 했지만 담위로 보이는 나무와 덩굴에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 본다. 골목 안쪽으로 발길이 닿으니 이 집은 정원이 궁금해서 들어가 보고 싶어지고, 저 집은 살짝 열린 대문 사이로 보이는 폭신한 잔디밭 테이블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지게 하고 또 다른 집은 능소화가 활짝 피어 집주인 대신 우리를 반기는 듯했다. 골목길을 따라 마주하는 집들의 담장엔 지나가면 켜지는 센서등이 있어서 늦은 밤길 야근하고 돌아오는 딸도, 술 한잔 드시고 비틀비틀 퇴근하는 아저씨도, 공부하느라 학교에서 학원으로 지친 아들도 밝혀주는 빛이 있어 안심이 되는 골목이었다.


같은 곳 다른 풍경의 명신마을 산책을 마음에 담고 딸을 데리러 공항에 갔다. 친구 배웅은 잘해줬냐고 물으며 엄마와 아빠도 딸 덕분에 좋은 동네 산책을 하고 왔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은 친구를 만난 기쁨을, 남편과 나는 무화과 향이 가득한 마을산책을 가슴 한켠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추억이라는 폴더에 담았다. 언젠가 꺼내볼 그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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