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일상

은행나무 부부처럼 투윈베드를 썼더라면

by 데이지

세월이 흘러 갱년기를 겪는 나이가 되었다. 유난히 덥던 여름, 시도 때도 없이 훅하고 올라오는 열감 때문에 더 무더웠던 여름밤들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자웅이주하는 은행나무처럼 우리 부부도 트윈베드를 썼어야 했다.


오래전 태국으로 가족여행을 갔었다. 여행 중 라텍스 쇼핑샵에서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고무나무에서 추출한 라텍스는 푹신하면서도 너무 푹 꺼지지 않았고, 천연소재로 항균력도 뛰어나다고 했다.

당시 라텍스 상품들이 홈쇼핑에서 유행하던 터라 가격이 저렴하다는 말에 식구 수대로 베개를 사 왔다.

솜베개보다 단단한데 그렇다고 물컹하지도 않고, 베고 누우면 머리 무게만큼 받쳐주고 잠도 잘 오는 것 같았다. 라텍스가 좋다고 해서 써보니 그런대로 괜찮아서 큰맘 먹고 침대를 장만하게 되었다. 크기도 제일 큰 킹사이즈로 몸집이 작은 우리 식구는 셋이 누워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리궁둥이인 나와 딸들이 하늘을 보고 누워도 엉덩이가 베기지 않아 좋았고, 옆사람이 뒤척여도 흔들림이 적어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15년쯤 잘 사용했는데, 천연소재라서 그런지 가루 같은 것이 떨어져 침대를 바꿔야 할 시기가 되었다.


침대는 과학이란다. 그만큼 잠이 편해야 한다.

오랜 기간 사용해야 하고 목돈이 들어가니까 구매할 때 이것저것 따져보기로 했다.

다시 라텍스를 사야 할까? 스프링 침대로 바꿔야 할까?

퀸사이즈로 사야 할까? 싱글 두 개를 사야 할까?

뭘 사야 할지 여러 날 고민 끝에 스프링 침대로 결정하고 매장을 둘러보았다.

매장마다 부부는 한 침대를 써야 한다며 퀸사이즈를 권했다. 싱글침대를 사야 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직원이 권하는 대로 퀸사이즈로 결정했다.


스프링 침대로 바꾸고 한 동안은 남편이 뒤척일 때마다 흔들림이 느껴져 불편했지만, 그런대로 적응하며 몇 년을 잘 사용했다.

그러다 갱년기가 되고 불면증이 생기면서 남편의 작은 뒤척임에도 흔들려 숙면에 방해가 되었다. 자다가 시도 때도 없이 열감이 올라 뒤척임이 잦아졌고, 열감을 식히려고 옆으로 돌려 누우려면 침대가 좁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트윈베드를 썼어야 하는데 침대를 사고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후회가 되었다.

지구의 기후변화와 나의 갱년기가 결합해 이렇게 힘든 밤이 될 줄이야.

그때는 당연히 몰랐지.

길고 긴 열대야 여름밤을 보내다 할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거실에 라텍스 매트를 깔고 지냈다.

선풍기를 틀고 자다가 열감이 오르면 찬 바닥에 눕기도 하고, 잠이 깨면 우두커니 앉아 있기도 하면서 긴긴 더위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기다리던 가을이 왔지만 여전히 열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도 간다는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갱년기가 누그러지길 바라면서 밤마다 숙면을 하려고 열심히 걷고 뛰고 운동을 한다.

공원을 돌 때마다 입구에 나란히 서 있는 은행나무가 보인다. 각자 따로 서 있지만 항상 곁에서 지켜주는 모습이 꼭 부부 같다.

가까울수록 거리가 필요한 것처럼 저 은행나무 부부는 트윈 침대를 쓰는 꼴이니 올여름 덜 더웠을 거야.

괜한 부러움이 생겼다.


갱년기도 한 때려니 세월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화무십일홍이라는데 갱년기라고 별 수 있겠어. 그 더웠던 여름도 지나고 춥다고 긴 옷을 꺼내 입는 행복한 가을이 왔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이 가을이 빨리 지나가지 않게 긴 줄로 묶어 둘 수만 있다면 뭘 더 바라겠나 싶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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