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고시원들

by 공익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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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에 나의 인맥을 총동원(16명)하여 간이 리서치를 해봤다.


“자신의 경험을 제외하고 주변에 고시원 생활을 해본 사람이 있다, 손.”


총 12명의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본인이 거주했었던 사람도 있었다.


나의 한 줌 인간관계라는 좁은 표본에서조차 이렇게 많은데 이걸 전체 인구로 늘려보면 얼마나 많아질까.


그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고시원의 복잡하고 적막한 밤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생각하면 ‘최저 주거기준’이란 게 얼마나 인간의 삶과 밀접한 법인지 깨닫게 된다.


물론 나도 고시원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 나는 총 세 군데의 고시원을 경험했는데, 첫 번째 고시원 생활은 고등학생 때였다.


낡았지만 그렇다고 저렴한 곳은 아니었다. 방에는 침대와 책상과 픽셀 깨지는 화면의 뚱뚱한 TV가 놓여 있었다. 당연히 창문은 없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었다. 그래서 씻어야 할 때면 목욕바구니에 샤워용품과 갈아입을 옷을 넣고, 제발 아무도 없길 바라며 축축한 욕실로 들어섰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천장이 점점 내려앉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내 머리 위를 덮어 관 뚜껑이 되는 상상을 했다. 그래서 잘 때는 불을 켜고 자거나 TV를 틀고 잤다. 그러면 좀 살 거 같았다.


사람이 피폐해지는 경험을 그때 처음 했다. 계속 여기에 있다가는 말라죽어버릴 거 같았다. 그래서 다른 고시원으로 갔다. 거기는 창문도 있었고 방 안에 샤워실도 있었다. 대신 10만 원이 더 비쌌다.

확신은 없지만 일단 내 목숨이 월 10만 원보다는 비쌀 거 같았다. 그래서 고민하지 않고 고시원을 옮겼다.


고작 그 두 개였는데 훨씬 삶이 생기 있어졌다. 그때부터 집을 볼 때 창문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


우리나라에는 ‘최저 주거기준’이란 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1인 가구를 보면 최소한의 면적은 14㎡(4.2평)이며 부엌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원룸을 보러 갔을 때 ‘이거 밥을 어디서 먹으라는 거야?’하는 생각이 든다면 십중팔구 4.2평짜리 집이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의 최저 주거기준 미달가구 비중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고시원, 쪽방, 비닐하우스, 판잣집 등의 열악한 시설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거 기본법에서 말하는 ‘도심지역에 건설되는 1인 가구 등을 위한 소형주택’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서 말했던 고시원은 도대체 어디에 해당되는 걸까?


바로 ‘제2종 근린생활시설’의 ‘다중 생활시설’에 해당된다. 법적으로 ‘각 실별로 학습자가 공부할 수 있는 시설(책상 등)을 갖출 것’이라 명시되어 있는데, 고시생 없는 고시원에 항상 학생용 책상이 꾸역꾸역 들어와 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를 보면 열악한 시설에 거주하는 가구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고시원, 원룸텔 등의 비주거시설도 함께 증가했다.


해외에도 법적으로 정한 최저 주거기준이 있다. 영국의 최소 주거면적 기준은 38㎡(11.5평), 미국은 20㎡(6.05평), 옆 나라인 일본은 25㎡(7.56평)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평수만 작은 게 아니라 구조·성능·환경 기준 또한 해외 주요국에 비해 구체성이 떨어진다.


14㎡라는 면적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1년 제정되었다.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 그동안 약 25% 상승하며 평균적 생활수준도 함께 향상되었지만, 최저 주거기준은 계속 제자리였다.


그래서 근 몇 년간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는 ‘공공임대주택’들은 모두 이 법안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


2년 전 국토교통부에서는 최저 주거기준을 개정하겠다고 입을 떼었다. 그러나 2년째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관련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 의견을 물어보는 등 최저 주거기준 개정을 위한 내부 검토를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개정 일정 등에 대해선 논의가 더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관계자 중에서는 집을 구할 때 5평 내외의 원룸이나 비주거시설을 선택 목록에 넣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부동산 어플을 켰을 때 저 두 조건을 빼면 보러 갈 수 있는 집이 손가락 개수보다도 적게 뜨는 나로서는 답답할 따름이다.


만약 개정안대로 최저 주거기준이 상향된다면 1인 가구는 14㎡(4.2평)에서 일본과 같은 25㎡(7.56평)로 상향된다.

또한 “적절한 방음·환기·채광 및 난방설비를 갖추어야 한다.”라고 모호하게 명시되어 있는 부분이 “내부 오염물질 및 습기 배출에 적절한 환기”로 기준이 구체화된다.

지금은 빠져 있는 냉방에 관련된 부분도 추가됐다. 구조강도도 “풍압이나 지반 이동 등으로부터 안전한 구조강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상세한 기준이 생긴다.


게다가 개정안에는 아동을 위한 내용도 포함됐다. 아동기의 열악한 주거는 생애 전반적으로 걸쳐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개정안은 아동이 있는 최저 주거기준 미달 가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했다.


당연히 비주거시설로 제외돼 왔던 고시원, 쪽방, 컨테이너, 비닐하우스 등도 이 개정안에는 들어간다.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되는 모든 주택들이 합법적으로 지어지지 못하게 되는 거다.


정부와 지자체는 공공주택 건설 사업이나 주택 지원 정책을 수립할 때 최저 주거기준을 하나의 정책지표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이 정책지표에는 ‘주택 이외 거처’가 포함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개정안이 통과되게 된다면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정책의 실효성이 좀 더 높아질 수 있다.


아쉬운 점은 개정안이 실행되면 앞으로 지어질 건축물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할 수 있으나, 이미 지어진 건축물은 이에 해당되지 않아 버린다.


현재의 최저 주거기준 법안에 명시되어 있는 구조·성능 및 환경기준은 이렇다.


1. 영구건물로서 구조강도가 확보되고, 주요 구조부의 재질은 내열·내화·방열 및 방습에 양호한 재질이어야 한다.


2. 적절한 방음·환기·채광 및 난방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3. 소음·진동·악취 및 대기오염 등 환경요소가 법정기준에 적합하여야 한다.


4. 해일·홍수·산사태 및 절벽의 붕괴 등 자연재해로 인한 위험이 현저한 지역에 위치하여서는 아니 된다.


5. 안전한 전기시설과 화재 발생 시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는 구조와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조금 의아할 것이다. 지금도 법으로 이 정도를 명시해놨는데, 나는 왜 아침마다 옆집 남자가 샤워하며 부르는 보고 싶다를 들어야 하는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게 됐다.

최저 주거기준을 해치는 방 쪼개기가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데에는 위반건축물 단속 횟수가 현저하게 낮다는 배경이 있다. 2020년 위반건축물 중 방 쪼개기에 대한 단속 건수는 자치구별로 0건이 가장 많았다.


심지어 불법건축물을 무마해주는 조건으로 뇌물을 받은 공무원과 시의원도 있었다. 누군가의 욕심 때문에 누군가의 삶이 부당하게 희생당하고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지낸 세 번째 고시원은 그동안 지냈던 고시원들 중 가장 쾌적하고 가장 비쌌다.

집주인은 창문이 없는 방과 손바닥만 한 창문이 나 있는 방 두 가지를 보여줬다. 창문이 있는 방은 5만 원이 더 비쌌다. 나는 한 손으로 가려지는 그 작은 창을 5만 원을 주고 사서 지냈다.


나는 이 고시원이 앞으로 내 인생에 있을 마지막 고시원이 되길 바라고 있다.


고시원에 거주했던 친구가 말했다. 고시원은 보증금이 저렴해서 잠깐 살기에는 좋다고. 사람 살 데가 못 된다고.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이곳이 ‘긴 시간 동안’ 살아야 할 터전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우린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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