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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두울 Jun 06. 2022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맥주남'으로 큰 화제가 된 마크 라데틱 씨

    수많은 갤러리들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사진을 찍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가운데, 아주 경건한 모습으로 맥주 한 캔을 들고 우즈의 샷을 지켜본 한 남성이 화제가 되었다. 나를 포함하여 현대인의 대부분은 사진 속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수많은 사람처럼 행동했을 것 같다. 유명인과 마주한 순간을 자랑하고 싶어서, 두고두고 돌려보고 싶어서... 그러나 인스타그램에 올린 스토리는 24시간이면 사라지고, 사진첩에 남은 사진과 영상은 몇 개월이면 다른 사진에 뒤덮여 잊혀진다. 반면 중요한 순간을 두 눈에 담고, 물아일체가 되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경험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위 남성의 경우는 평생 회자될 추억까지 얻게 되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의미 있는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 '소유'하려 하는데 반해, 해당 순간에 빠져들어 그 경험 속에 '존재'하기를 택한 이 남성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두 손으로 경건히 들고 있던 맥주 회사의 모델이 되었다.


    에리히 프롬의 책 <소유나 존재냐>의 중심 주제는 인간의 두 가지 실존 양식, 즉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을 분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윤추구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취득하고 소유한 사유재산은 그 경로가 불법적이지 않으면 감히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이러한 사회는 소유적 실존양식이 만연할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된다. 가계부채가 역대급으로 증가하고, 청년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고 떠들어대는 언론이 무색하게도 백화점 명품 매장 앞은 꼭두새벽부터 '오픈런'을 하기 위한 사람들로 붐비고, SNS에는 온갖 럭셔리한 것들로 치장한 채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우리를 자극한다. 소유적 실존양식은 비단 소비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소유적 실존 양식은 학습에서도(모조리 필기하고 모조리 암기하는 학습방식), 권위의 행사에서도(관료주의 사회에서의 꼰대적 행동들), 사랑에서도(구속과 집착) 드러난다.


    소유에의 욕망은 인간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에 소유하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다만, 소유는 영속적이지 않다. 어떤 객체를 지배하고 소유하는 행위는 영속적이지 않으며 삶의 전 과정에서 아주 짧은 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소유물을 통해 나의 존재가 결정되는데, 일단 써버린 것은 곧 충족감을 주기를 중단한다. 따라서 소유적 인간은 점점 더 탐욕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소비가 다음 소비를 촉진하듯이, 소유는 더 많은 소유에 대한 갈증을 유발한다. 나보다 더 많이 소유한 사람을 시기하고, 적게 소유한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이렇듯 소유욕과 평화는 서로 배척 관계에 있다.


    저자는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인류의 삶의 방식이 인류의 실존을 위협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자연을 소유하려는 태도는 환경오염을 초래했고, 권력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열망은 어느 집단에서건 서로를 향한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존재적 삶, 존재적 사고방식이다.


    존재는 체험과 관계한다. 존재적 실존양식에서는 표현 불가능한 살아있는 경험이 삶을 지배한다. 이런 활동은 탄생과 생산의 과정이며, 나와 생산품의 관계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 소유적 실존양식을 택한다면, 다시 말해 소유가 곧 나의 존재라면 소유하던 것을 잃었을 때의 나는 불안정한 존재가 된다. 반면 존재하는 자아가 그 자체로 나일 때는 그 누구도 나의 존재를 앗아갈 위협을 주지 못한다. 즉, 나와 나의 활동, 그리고 그 활동의 결과가 일치한다. 책에서는 더 복잡한 서술 과정을 거치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존재적 실존양식을 통해 모두는 각자를 존중할 수 있고, 협력할 수 있으며, 연대할 수 있고, 진정한 의미에서 사랑할 수 있다. 


    저자는 소유적 실존양식으로부터 벗어나 존재적 실존양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하지만, 그 방안들은 현대 사회의 모습과는 다소 동떨어진 것들도 있고, 너무 추상적이고 현학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많았다. 저자가 서술한 방안들이 그 자체로 구체적인 지침을 줄 수 없더라도, 그가 제시하는 모든 사회 문제의 해결은 개인으로부터 출발한다는 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일례로 프롬은 "존재지향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경제적 및 정치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존재적 실존양식을 지향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개인의 실천적 생활습관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고, 이를 토대로 소유지향적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사진 속 맥주캔을 든 남성이 진정으로 존재지향적 삶을 사는 인물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순간을 체험하기 위해 흠뻑 빠져있는 모습이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그 사진이 소유적 삶에 대한 회의에서 벗어나 존재적 삶을 살고자 하는 많은 현대인들의 가슴속 한 군데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소한 해프닝들이 촉발제가 되어 개인의 정신적, 실천적 변화들이 생기면, 그리고 이들이 모여 일관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에리히 프롬이 제시한 존재지향적 사회의 도래가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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