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마주하는 묵상의 시간

어른도, 어린아이도 아닌 그 사이에서

by 지정


창밖의 빛마저 숨죽이게 만드는, 유난히 흐린 오후.

고요한 방 안에서 홀로 앉아 조용히 묵상에 잠긴다.


지나온 날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시절 마주했던 사람들, 그리고 함께했던 순간들을

기억나는 대로 천천히 되짚어본다.


어렸을 적, 엄마가 식전 기도를 하거나

잠들기 전 묵상의 시간을 가지면

나는 그저 멍하니 다른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내일은 뭘 먹을까?

학교 안 가는 날엔 친구랑 뭐 하고 놀지?’

그 나이답게, 사소한 생각들뿐이었다.


그러다 이내 밀려오는 졸음에 고개를 꾸벅이다 보면

엄마에게 잔소리 한마디씩 듣곤 했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 아직 때 묻지 않아

참회할 일조차 없었다.

친구를 사귈 때도, 어른을 대할 때도

계산하거나 조건을 따지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내게 묵상이란,

그저 조금 지루한 시간에 불과했다.


그랬던 내가 자라 어른이 되고,

조금씩 사회 속에 녹아들며 살아가다 보니

내 안에도 말 못 할 사연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 때문일까.

이제는 나도, 엄마가 그랬듯 묵상을 하면

스스로에게 고해성사할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의 나를 참회하고,

어제의 나를 참회하고,

또 오늘의 나를 참회한다.


가끔은 문득,

걱정이라 해봤자 용돈이 떨어져 불안했던 것이

세상에서 제일 큰 고민이던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고,

이미 때 묻은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 그 마음 위로,

가끔은 그 시절의 자신을 그리워하며

아득한 어린 날의 마음을 찾아 헤맨다.


아마도 그 마음은,

이미 지나가 버린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이자

지금의 자신을 다독이고 싶은 바람일 것이다.


마치 영화 <빅> 속 조쉬처럼,

완전한 어린아이일 수도, 완전한 어른일 수도 없다.


그저 몸만 자라난 채,

아이와 어른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금씩 자라며, 때로는 넘어지고,

또다시 일어서며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