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전화가 떠 있다. 서로 아는 친밀한 사이지만 자주 전화하는 사이는 아니다. 콜백은 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분이다. 나의 사정을 적당히는 알지만 깊게는 모르신다. 내가 말하지 않았다. 바쁘신 분이기도 하고 나의 개인적 아픔이 다른 이들의 고통보다 더 앞선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고민을 먼저 내밀 자신도 없었다.
전화가 온 그다음 날 췌장암 투병 중이신 아버지 뵈러 서울 올라가려던 참이었다. 안부차 전화하셨겠지만 타이밍은 이제 말해야 할 것 같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 “○○님, 전화하셨네요~?” 아무렇지 않게, 모른 척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무슨 일 있냐고 물으시는 직구에 피할 길이 없었다.
두려움 바로 직전에 걸려온 전화
사실 서울 계신 아빠, 엄마 뵈러 가는 그 주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모르겠다. 아빠가 췌장암 진단을 받으신 후부터 내 삶에 여러 감정 중에 모르는 감정들이 자꾸 불쑥불쑥 올라온다. 처음 겪는 일이기도 하고 명확히 알 수 없는 감정들이라 낯설기도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서울 가기 전에 준비가 필요했다. 지금 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서울에서 부모님과 보낼 시간 속에 '평안'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샬롬이다-히브리어로 평안이란 뜻이다- 누구 하나 섣불리 눈물 흘리지 않는다. 누구 하나 섣불리 통곡하지 않는다. 누구 하나 섣불리 한탄하지 않는다. 누구 하나 섣불리 분노하지 않는다. 누구 하나 섣불리 소리 지르지 않는다. 그 순간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선물
그 두려움의 준비 속에서 기가 막힌 타이밍에 통화하면서 선물을 받았다. 기도를 받았다. 샬롬을 준비할 수 있었다. 서울 올라가는 길이 두려움에서 기대와 소망으로 바뀌는 시간이 되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누군가 값없이 선물을 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이 기쁨과 평안을 많은 암투병 환우와 가족들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