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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금 Sep 15. 2023

과거에는 있지만 현재에는 없는 것

텅장 대신 텅心

행복은 어디에 있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고, 그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학창 시절부터 취업 준비생 시절까지 깨진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면, 목표한 학점을 받는다면, 원하는 직장에 취업하면 현재에 미뤄두었던 행복을 맘껏 누릴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친구들과의 약속, 가족들과의 여행, 보고 싶은 드라마와 영화 등등 수많은 놀거리의 유혹을 뿌리치고 미래에 대한 준비에 몰두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이룬 날에는 심리적,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원 없이 놀 수 있으리. 졸음을 참아야 하는 고통도, 모두가 쉬는 연휴에도 도서관에 가야 하는 서글픔 따위는 모두 잊고 즐거움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으리.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직장인이 된 나는 과거의 행복을 희생한 만큼의 커다란 행복을 누리고 있나? 그것은 아니었다. 직장이 되어도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요일만 되면 학교에 갈 생각에 울적해지는 중학생 소녀와 방대한 공부량에 허덕이는 고3 수험생과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느라 친구들과의 약속을 취소하는 취업 준비생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서른 살 직장인이지만 나는 여전히 주말이 끝나가는 일요일 저녁이 싫었고, 쏟아지는 업무가 버거웠고, 주말 근무 때문에 친구들과 약속을 깨야 하는 상황이 난처했다.


처음에는 이런 현실을 믿을 수 없어서 세 차례 직장을 옮겼다. 이직하면서 더 나은 근무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근본적인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업무를 완벽하게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하루를 바쁘게 보내야만 겨우 맞출 수 있는 빠듯한 일정,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딜 가나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다니는 회사의 유별난 특성이 아닌 모든 직장인이 겪는 고달픔과 비애임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극심한 허탈함이 밀려왔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나는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며 쉬지도 않은 채 달려온 것일까.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친구들과 떡볶이도 먹으러 가고, 재밌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대고, 고소한 팝콘을 와그작 씹어대며 마블 영화를 봤을 텐데. 그렇게 쉬엄쉬엄 미래를 준비했다면 허탈함이 덜할 텐데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허탈함보다 공허함이었다. 모든 직장인의 삶이 이렇다면 적어도 30년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야 하는가. 나는 늘 미래에 대한 기대로 하루하루를 버텼는데 지금은 무엇을 기대하며 지치고 힘든 하루를 버터야 할까. 마음을 가득 채웠던 기대감이 한순간 사라지니 텅 빈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서 요즘은 행복이 과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야자나 야근이나 한 글자 차이지만 밤늦게까지 공부하면서도 낭만적인 대학 생활이나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된 모습을 상상할 수 있고, 그 상상만 하면 가슴이 두근두근 뛰던 과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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