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가람 Jun 30. 2024

감정이 전하는 말

지난밤부터 비바람이 거세다. 비도 비지만 바람이 거세서 창문을 열어 놓기가 어렵다. 시원하게 더위를 식혀주던 바람이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공기의 온도와 기압차 때문에 바람이 분다고 하는데 그 차이가 어지간히도 많이 났나 보다.  차이가 적을 때는 공기를 순환시켜 주고 더위도 식혀주는 고마운 바람이 차이가 커져버리고 나니 피해가 생길까 걱정하는 대상으로 변해버렸다. 잔잔할 때는 그 역할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지만 거세지면 감당이 어려워진다.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감정들이 적절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잘 기능하며 안정되어 있다. 관계에서도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발생하더라도 성가시진 하겠지만 충분히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요인으로 인해 감정의 폭이 커져버리기 시작하면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통제가 안되기도 한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이 세력을 키워나가도록 연료를 공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쁨'이 신나고 즐겁고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라고 정의 내려본다면 적당할 때는 본인과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겠으나 정도를 넘어서면 고양감을 느끼며 부주의하고 자신과 타인을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넣게 되기도 한다. '슬픔'이 상실을 정화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본다면 필요한 순간 슬픔을 통해서 좌절, 속상함, 안타까움, 미련 등의 감정을 위로받고 정화하여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슬픔 속에 함몰되어 다른 것은 모두 외면한 채 고통 속으로 가라앉게 되기도 한다.


 '행복'은 안정되어 있고 긍정적이며 평온하고 따스한 상태라고 본다면 행복한 마음에서 상냥함과 친절함, 배려와 존중, 헌신과 기여 등 좋은 품성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치면 현실감을 잃어버리고 부적절하게 행동하게 되기도 한다. '분노'는 위급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감정이다. 분노를 동력원으로 삼아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싸울 수 있고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애쓸 수도 있다. 반면, 분노에 휩싸여 정제하지 못한 채 터뜨리게 되면 많은 문제가 생겨난다. 자신과 타인을, 더 나아가서는 사회를 파괴하는 힘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혐오'는 거부감을 느끼며 배척하는 상태이다. 뭔가 꺼림칙한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발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땅에 떨어진 음식을 먹지 않거나 이상하게 생긴 식물을 먹지 않고, 뭔가 분위기가 싸하다고 느껴지는 곳에 가지 않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치면 거부적이고 화합이 어려워 고립을 자처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사회를 양분하고 끊임없는 대립을 발생시켜 구성원 모두를 위험한 상황 속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두려움'은 특정 대상이 자신에게 위험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그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거나 가까이 다가가지 않도록 하여 자신을 지켜낼 수 있도록 만든다. 맹수를 보고 귀엽다고 다가가면 안 되니까 말이다. 적절한 두려움은 한 개체의 존속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두려움이 너무 크다면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공간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게 되고 그러면 오히려 생존에 위험요소가 되어버린다. 


'놀라움'은 주위를 환기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멋진 구조물, 혹은 상상 이상의 기술을 볼 때 놀란다. 무언가가 갑자기 나타나거나, 믿기 어려운 일을 목격하거나 듣거나, 큰소리를 들을 때, 이상한 감촉을 느낄 때도 놀란다.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에서 놀라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때로는 자기 보호기능으로 때로는 시야와 생각을 넓혀주는 기능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너무 자주 놀란다면 그리고 그것이 거북하여 밖으로 나가는 것에 두려움이 생긴다면 이 또한 우리의 행동반경을 좁히고 누리며 살아가는 것에 제약을 준다. 


'불안'은 두려움과 결이 다르다. 두려움의 대상은 실체가 눈앞에 있지만 불안의 대상은 실체가 없다. 어떠한 일이 생길까 봐, 어떠한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을까 봐 걱정되고 긴장감이 올라오는 상태이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불안의 기능 또한 명백하다.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 미리 대비하여 적응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안이 너무 커져 버리면 통제감을 잃고 적절하지 못한 방향으로 행동하거나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때때로 감정들은 우리를 꽤 힘들게 만든다. 정도를 넘어서서 지각되는 감정들은 스스로를 폭풍 속에 가두는 것과 같아서 견뎌내기가 힘들고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에도 생채기를 남겨 치유의 시간이 필요해진다. 감정뒤에는 숨겨진 욕구가 있다고 한다. 어떤 감정이 계속 맴돌면서 해소되지 않는다면 감정 속에 있는 욕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생각보다 감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자신이 어디에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어떤 것이 자신에게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도 알게 해 준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 선명하게 알게 해 준다. 감정에 귀 기울이면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도 얻을 수 있다. '감정에 휩싸이는 상태'가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상태'가 되어본다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더 생생하게 느껴질 수 있다. 감정을 느끼는 '나'를 관찰하면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지고 감정 뒤에 있는 욕구를 알아차리게 되면 자신에 대한 이해를 더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더 선명해진다.


  관찰자가 되어서 감정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그냥 지켜보자. 감정과 살짝 거리를 둬보자. 그리고 살펴보자. 감정이 전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마도 많은 바람들이 그 속에 있을 것이다. 그 바람들을 하나씩 껴안아보자. 그리고 다독여 줘 보자. 내가 나를 알아가는 그 순간들이 자신에게 선물하는 낯선 감각들을 즐겨보자. 아마도 자기 자신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전 07화 밤의 창가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