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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람 Sep 06. 2024

서울에 왔다

머물거나 벗어나거나 혹은 그 사이 어디쯤이거나

서울에 왔다. 올해 세 번 째다. 평생 서울  온 일이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인데 그중 3번이 올해에 있다.

그동안은 별 느낌이 없었는데 이번엔 일로 온 게 아니라 놀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나이 탓이려나....

서울의 문화적 혜택을 부러워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2박 3일 서울에 놀러 와서 가고 싶어 하는 홍대 굿즈샵도 가보고 길거리 공연도 보고 근사한 디저트 카페도 가보고 롯*타워도 가보고 남산에도 올라가 보고 인사동, 북촌 한옥 마을도 가보고 여기저기 둘러보면 좋을 텐데 싶다.

아이들이 별로 재미없어 할 수도 있겠지만 덕수궁 돌담길도 걸어보고 창덕궁에도 가보고 구석구석에 위치한 문화관에도 가보고 말이다. 하려고 마음먹으면 못할 것도 없었을 텐데 아직 못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늘 '해야 할 일'이 우선순위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위에 좋은 평가를 받았고 그래서 어딜 가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감사한 일이다. 정말로 믿을만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 쉽지 않기에 그렇게 바라봐주었다는 사실이 늘 감사했다. 어쩌면 그래서 개인적인 일을 보기 위해 쉬거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쉬려고 할 때 묘한 죄책감 같은 것들이 함께 했는지도 모르겠다. 칭찬으로 기쁘기도 하고 칭찬으로 구속되기도 한다. 칭찬에 이런 양면이 있다는 것을 젊었을 때는 알지 못했으니 그때보다 조금은 시야가 넓어진 것일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칭찬은 적당히 현명하게 해야 할 일이다. 칭찬에 구속되지 않도록 말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은 안정지향적이다. 변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버겁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변화한 상황에 다시 적응하는 것이 꽤 스트레스고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니 하기도 전에 지치는 느낌이 있다. 그래서 변해야 한다면 타당성이 있어야 하고 무엇을 구현하고자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운 뒤에야 가능하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이나 틀을 깨는 생각 같은 건 잘하지 못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도하는 것은 내게는 위험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외부의 압력은 존재하고 가끔 이런 상태에 머무는 것이 한심하게 여겨져서 벗어나야만 할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평소 안 하던 선택을 하곤 하는데 꼭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더 안정적으로 움직이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호감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거의 내가 한결같아서 좋다고 한다.

마을 입구 커다란 나무처럼 늘 그 자리에서 넉넉한 품을 내어주는 고목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 성공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 한결같음은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변화하는 세상에 빨리 좇아가지 못해서, 상황에 따라 도전을 하지 못해서 내 삶은 정형화되어 있다. 그래서 싫으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말했다시피 나는 안정추구형이라 정형화된 삶이 그다지 거북하지 않다. 다만 어느 한순간 정형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고 그 순간  꽤  허탈해질 뿐이다. 각자 다른 모습의 삶이 모여서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일 텐데 우열을 가리는 듯한 태도를 보게 될 때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에서 아주 작은 톱니 하나라도 빠지면  돌아가지 못할 것이고 첨단과학의 집합체인 우주선도 나사하나가 헐거워지면 제 기능을 상실하고 말 텐데 말이다. 눈에 띄는 화려한 모습만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을.......




매일의 일상에서, 삶 속에서 무엇을 담아가야 할까?

무엇을 담으면 괜찮았다 여겨질까?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 의미라는 것도 삶의 중요한 시기마다 어느 정도 변화하는 것 같다. 적절한 조정도 필요하다. 가족을 이루고  살면 자신의 의미만 강조할 수 없고, 아이들이 성장하면 그들 자신의 의미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아이들의 의미와 자신의 의미가 충돌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 평소 내가 추구하는 바와 다른 가치들이 마음을 헤집고 들어 올 때가 있다. 20여 년을 함께 해온 남편의 가치도 이따금 내 속을 헤집고 들어온다. 나와는 다른 타인의 가치들, 때로는 반대편에 서 있기도 하는 그 가치들에 대해 나는 어떤 입장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인가? 불편하고 껄끄럽고 어색하다. 쉬운 듯 쉽지 않은 숙제가 내려왔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과 일련의 생활사 속에서 절충안이 찾아지고 또 흘러갈 것이다.

이 또한 변화라면 변화이다. 나의 변화는 느리고 적게 일어난다. 누군가는 답답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으나 나의 삶이고 나의 시간이다. 내가 괜찮으면 괜찮은 것 일터. 한 가지 소망이라고 한다면 절충안을 찾는 과정이 덜 삐그덕거리고 덜 지난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작은 변화가 내 마음속에 일어났고 절충안을 찾았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을 생각해 보았고 평소라면 그냥 흘려보냈을 일을 붙잡아 글로 적어내었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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