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났다!

by 한가람

지난 늦가을의 일이다. 일을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하루종일 오다 말다 하던 비가 멈춰있었다.

다행이다하고 살짝 기분 좋게 버스에 올랐다. 졸다깨다하면서 가고 있었는데 한 방울씩 유리창에 떨어지더니 환승정류장에 내렸을 때는 제법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으로 비좁아진 정류장에서 탈 버스를 기다렸다.

비가 와서 그런지 그날따라 대기시간이 길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버스가 왔고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10여 분만 있으면 집에 도착하리라.


등받이에 편안히 몸을 기대고 앉았는데 갑자기 빡! 하는 큰 소리가 남과 동시에 버스가 출렁였다.

버스 안 사람들이 "뭐야?"하며 웅성거렸고 무슨 일인지 멍한 상태로 두리번거리는데 밖에서 끼익 하는 소음이 들여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흰색 1톤 트럭이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반대편 벽에 가서 쿵하고 들이박고는 멈추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사고가 났구나.'


승객들 모두 혼란스러워했고 버스의 기사님은 시동을 끄고 일어나서 다들 괜찮으시냐고 물으셨다. 크게 부딪힌 것은 아니어서 외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당시

버스는 신호대기를 위해 정차하던 중이었다.

버스 기사님이 차에서 내려 트럭 운전사를 보러 가셨고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서로 웅성거렸다.

길 건너 벽에 멈춰있는 트럭으로 다가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신고하는 사람도 보였다.

다행히도 그날따라 도로에 차가 별로 없었다.

버스 문은 열려있고 버스는 도로 한가운데 있고 시간은 지나가고 비는 계속 내리고......


2~3분도 되지 않아 119 구급대가 출동해서 트럭운전자를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구급대원 중 한 분이 버스로 들어오셔서 다친 사람이 없는지 물으셨고 기사님은 어디 갔는지 물으셨다.

트럭운전자를 보러 가셨다고 다들 대답했다.

다행히 크게 충격이 온 건 아니라서 눈에 띄는 부상을 입은 승객은 없었다.

다친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구급대원은 돌아갔다.

기다림이 계속되었다.


기사님은 돌아오지 않으셨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승객들의 웅성거림도 커졌다.

분은 어디론가 통화를 하시더니 그냥 내리셨다.

곧 경찰도 출동해서 도로를 통제하고 버스로 오셨다.

기사님이 어디 있는지 다시 물으셨고 이번에도 다들 트럭 보러 가셨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바로 나가버리셔서 다들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기사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렸다.


몇몇 분이 또 그냥 내리려고 하셨는데 한분이 나서서 말리셨다. 혹시나 나중에 후유증이 생기면 치료를 받아야 할 텐데 기다려보라고 기록을 할 거라고 말이다.

그 말에 다들 그냥 앉았다.

다시 경찰 한분이 오셨고 이름과 주민번호 연락처를 받아가셨다. 혹시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치료를 받으시고 사고 처리과정에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사고처리계로 연락해서 물어보시면 된다고 안내해 주셨다. 그제야 기사님도 돌아오셨고 다음 차가 오고 있으니 그 차를 타시면 된다고 이야기하셨다.

낯선 상황이라 기다림이 길었지만 실제 흐른 시간은 십여분이었다.


그사이 나는 집에 연락해서 남편이 데리러 오기로 했고

다른 몇몇 분들도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데리러 와 달라고 연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서 보니 버스의 왼쪽 후미등 부분이 완전히 날아가고 없었다. 찌그러진 게 아니라 뜯겨나간 것처럼 보였다. 아마 트럭이 제때 차선변경을 하지 못해서 버스를 치고 나간 것 같았다. 그대로 돌진했더라면 버스 안의 승객들도 이렇게 무사하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몇몇 분은 충격으로 허리통증이 있다고 하셨고 나 역시 충격당시 왼쪽으로 통증이 올라왔었다. 놀란 신경을 잘 풀어주면 나을 테니 크게 염려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고를 일으켰던 트럭운전자는 괜찮을지 모르겠다. 지나다니던 차가 별로 없었고 비 오는 저녁 신호대기를 위해 속도를 줄이고 있던 것을 인식하지 못한 걸까? 아니면 전방주시를 소홀히 했던 걸까? 멈추려고 했으나 빗길에 미끄러진 걸까? 혹시 지병이라도 있었던 걸까? 차에 문제가 있었나? 갑자기 일어난 이 상황을 이해하고자 여러 가설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지만 부딪히는 그 순간 어쩌면 최선을 다해 버스를 피하려고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버스의 좌측을 치고 지나갔으니 말이다. 부디 많이 다치신 것은 아니기를 빨리 회복하시기를 빌었다.


근처 정류장에서 남편의 차를 기다리며 통화를 했다.

지금 어디쯤 왔고 내가 어디 있는지 이야기하면서 통화를 이어갔다. 반대쪽 차선을 지나가면서 사고현장을 보고 유턴해서 돌아온 남편은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어이없어했다.


집에 돌아와서 혹시나 모르니 근이완제를 하나 먹고 따뜻하게 해서 잤다. 다음날 왼쪽 고관절부위와 다리 바깥쪽에 미약한 통증이 느껴졌다. 치료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을 했는데 심하지 않아서 하루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래서 어찌 되었냐 하면 괜찮아졌다.

사고는 늘 예기치 않고 찾아온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시스템이 중요한가 보다. 그날의 경험은 '우리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구나'였다.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안심하고 살아가는 것 일터이다. 서로가 서로의 삶을 받쳐주는, 그것이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일테니까.


PS.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사고가 나면 경찰이 올때까지 그 자리에 남아있으시는 게 좋다고 합니다.

혹시 후유증이 생길경우 현장에 있었다는 증명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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