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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근주 Jun 25. 2024

안온한 관찰자

1. 고양이

 언제부턴가 고양이가 등장하는 콘텐츠에 오래 노출되었다. 우연히 한 번 클릭한 그 영상시청으로 알고리즘은 내게 고양이의 귀여움을 어필하는 영상들로 채워버렸다.

 고양이를 기르고 싶긴 했으나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비용적인 부분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우리 부부의 의식주 해결도 빠듯한 마당에 식구를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가끔 안온 입구 쪽 좁은 덱에 길고양이가 지나치면 가방에 챙겨두었던 츄르 같은 습식 간식을 꺼내주곤 했다. 먹이를 주는 사람들을 구분해 내는 능력이 있는지 손에 들고 있는 간식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와 기어코 혀를 내밀고 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누가 이 고양이들을 맹수로 볼 수 있을까 싶었다.

 무릇 길고양이들이 그렇듯이 안온 주변의 길고양이들도 여러 번 세대교체가 되었다. 매일 보이던 녀석이 어느 날 보이지 않을 때도 많았고, 주먹 두 개 만한 어린 고양이가 화단을 뛰어다니기도 했으며, 한참 얼굴을 비추지 않던 녀석이 갑자기 나타날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 두 번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익숙한 얼굴의 고양이들은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얼굴의 고양이들이 활보하고 다녔다.

 길고양이의 생(生)이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보다 짧은 건 어쩔 수 없지만 다 큰 녀석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릴 때면 마음 한 편에 씁쓸함이 남는 건 애묘인의 숙명일 것이다.




 그런 안온에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왔다. 다른 고양이와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손을 이미 너무 타버린 애교 가득한 암컷 고양이였다. 간식 하나에 총총걸음으로 달려와 사람을 안달 나게 하는 울음을 내던 녀석. 주차장에서 덱으로, 덱에서 입구로, 입구에서 안온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금은 완전히 자리를 잡아 큰 호기심 없이 가게 안을 어슬렁거리고 손님들의 손길에도 무덤덤하지만(가끔 장난처럼 깨물기는 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고자 하는 녀석의 의지에 엄마 잔소리 못지않은 잔소리를 늘어놓아야만 했다. 물론 고양이는 그것을 알아들을 리가 없기에 테이프 트랩을 설치하거나 수저통을 흔들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는 것으로 녀석이 해선 안될 것들을 억제시켰다.

 그렇게 녀석과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배워나갔다.




 이미 중성화가 되어있는 줄 모르고 TNR(trap-neuter-return)을 신청했다가 귀만 잘려 돌아온 이야기는 지금도 마음이 쓰라리다. 예쁜 귀를 뭉텅 잘린 채 가게 앞에 풀어놓은 녀석은 예전보다 더 위축되어 있었다.

 암컷은 보통 3일 정도의 회복시간을 두고 나서 방생한다던데, 포획 다음 날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와서 잠시나마 걱정하기도 했었다. 수술을 위해 털을 밀었는데 이미 중성화한 흔적이 있다는 연락이었다. 이 녀석이 사람을 잘 따랐던 이유는 누군가의 손에서 이미 길러졌기 때문이었다. 출근해서 반겨주던 애교 섞인 울음도, 사람의 쓰다듬음을 크게 거절하지 않는 이유도 이미 한 번 버림받았던 녀석의 생존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출퇴근 루틴에 익숙해져서 밤이 되면 밖에서 지냈다가 출근시간에 맞춰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간식을 먹고, 밥을 먹고, 놀아달라는 눈빛과 행동을 보였다가 조금 놀아주고 나면 금세 지쳐 잠이 든다.




 다른 길고양이와는 사이가 좋지 않은지 녀석은 자기보다 작은 고양이가 지나가도 잔뜩 경계했다. 길고양이들은 서로 장난도 치며 어울리는데, 녀석은 다른 고양이들과 전혀 어울리질 못했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의 영역을 침범해 싸우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들의 숙명이기도 한데, 녀석은 잘 먹어 덩치는 좀 있지만 싸움은 영 못하는지 뒷다리를 크게 물린 적이 두 번이나 있었다. 얼마나 세게 물렸는지 피가 멎지 않은 채 절뚝거렸으며 좋아하는 간식을 줘도 잘 먹질 않았다. 가장 문제는 가게 주변에 녀석이 화장실로 이용할 법한 곳은 모두 높이가 꽤 있는 화단이었는데, 다리를 물린 뒤로는 사람 무릎 높이도 제대로 올라가지 못했다.

 야생에서의 생존 본능이라는 게 얼마나 유전자에 잘 각인이 되어있는지 출근해서 가게 문을 열고 같이 들어올 때에도 녀석은 다친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조용히 의자에 올라가 앉아 잠을 청한다. 평소라면 놀아달라는 신호를 보낼 텐데 그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잠을 자더라도 이상한 낌새는 없다. 고양이란 보통 잠이 많은 편에다가 야행성이라 낮에 잠을 자는 게 이상할리 만무했다.

 상처의 낌새를 알아차리는 건 잠을 자다가 일어났을 때다. 인간에겐 신기하게도 같은 인간의 표정뿐 아니라 동물의 표정도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 어딘가 아픈 표정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꼬리가 살짝 내려가고 기운이 없고 평소와 다르게 울음소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으로 인간은 본능적으로 동물의 아픔을 감지한다. 신기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녀석의 잠자리에 멎지 않은 피가 묻어있고, 녀석은 피를 멎게 하기 위해 그루밍을 한다. 엄지 손가락 한 마디만큼 털이 빠져있고 날카로운 것에 물린 구멍 두 개가 뚜렷하게 보였다. 내가 상처를 닦아주려고 하자 녀석은 본능적으로 상처가 난 다리를 숨겼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항생제를 지어다 먹였고, 그 여린 생명체의 얕은 숨결에 마음이 동해 집으로 데려갔다.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안으려는 내 손길을 거부하며 바닥에 납작 누워버릴 땐, 집사 마음도 몰라주는 녀석이 야속했다.

 깨물려가며 데려 온 녀석은 집에 내려주자마자 자신이 숨을 만한 구석을 곧바로 찾아냈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녀석은 자신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법한 곳을 곧바로 찾았다. 녀석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조금 더 편할 수 있도록 방석을 깔아주고 녀석이 돌아와 누웠을 때 담요를 덮어주었다. 배가 고프지 않도록 밥을 채워놓고 목이 마르지 않게 물을 떠다 놓았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두 번의 물림 사건 이후에 상처가 다 나은 녀석은 다행히도 건강히 잘 지낸다. 상처의 트라우마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행동반경이 짧아져 안온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한 뒤로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많이 줄어들었다. 짧은 놀이 시간만으로는 부족한지 권태로운 표정으로 문 앞의 스크래쳐 타워에 올라앉아 밖을 바라볼 때가 많다. 늘 먹을 것이 부족하고 빠르고 위험한 것들로 가득한 바깥세상이 아닌, 녀석 나름의 평온함을 누리게 되면서 그렇게 변해버린 듯하다.

 반려동물이라 하기엔 어딘가 모호한 관계인 나와 녀석이지만, 한 생명체의 어떤 부분을 책임져주기로 한 시점부터 어쩌면 연()의 매듭이 지어졌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매듭이 견고하고 튼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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