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향기가 있다. 산이 강한 시큼함에 다가가기 싫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분 좋게 곰삭은, 구수해서 자꾸만 킁킁거리며 맡고 싶은 향기를 지닌 사람이 있다. 아들 친구의 학부모 중에 한 명이 그랬다. 다 퍼주고 싶을 만큼 정이 가고, 그러면서도 적당한 거리감도 있는. 뉴질랜드에서 둥둥 떠다니는듯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만난 그녀는 그렇게 마음속에 포근하게 파고들었다.
뉴질랜드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그녀는 초록홍합 요리, 앵거스 스테이크, 피조아 젤라또등의 오클랜드 맛집들을 데리고 다니며 외로움을 채워주었고 나는 그런 그녀가 한없이 고마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해왔다. 하늘에 달을 따달라는 부탁이 아닌 바에야 뭔들 못 들어주랴 싶었다. 내 벅찬 마음에 못 미치도록 부탁은 가벼운 것이었다. 학교 오피스에서 컬처공연 티켓을 사다 달라는 거였다(1년에 한 번 있는 학생들의 공연 중 하나로 아이들의 학교는 부모도 티켓을 사야 입장할 수 있다). 티켓을 사려면 아이의 이름을 얘기해야 했다. 아이의 영어이름은 사무엘이었다. 어려운 영어가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원어민 앞에 서야 할 때마다 나는 어쩌면 적당한 긴장감을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머릿속에 내뱉어야 할 문장을 만들고 곱씹으며 오피스의 문을 열었다. 컴퓨터에서 눈을 뗄 줄 모르던 금발의 오피스직원 니키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에 주름이 한껏 잡히도록 웃어 보이며 인사를 하는 니키 앞에서 나는 이내 용건을 얘기했다.
"컬처공연 티켓을 살 수 있니?"
"그럼, 당연하지. 아이 이름이 뭐야?"
"사무엘."
니키는 컴퓨터를 뒤적거리며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한껏 뒤적거리던 니키는 갸우뚱하며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뭐라고?"
아차, 내 콩글리시 발음이 문제였구나,를 직감한 나의 어깨는 동그랗게 말리고 있었다. 차가운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사. 무. 엘."
나는 또박또박 한 글자 한 글자를 오롯하게 발음했다. 니키는 심각하게 이름을 다시 뒤적였다. 잠시 간 뒤 의미심장한 웃음뒤로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이거였다.
"아!! 쌔뮤얼."
쌔무얼? 이토록 낯설고 모래알을 씹은 듯 걸근거리는 발음이라니. 아이돌 멤버 중에도 김사무엘이 있고 사무엘젝슨이라는 배우도 있는데 여태껏 나만 곧이곧대로 발음했던 거란 말인가,
나는 멋쩍게 히득히득 웃으며 사과 아닌 사과를 해야 했다.
"미안해, 나의 발음이 좋지 않아서."
"천만에, 괜찮아."
진정 괜찮은 거였을까? 한낱 에피소드일 뿐인데 바닥이 홀로그램처럼 움찔대며 올라오는 것 같았다. 등을 돌려 나가려는데 오피스의 여닫이 문이 참으로 육중하게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외화에서 그 이름이 줄기차게 들렸다. 모두들 한결같이 세련되게 쌔무얼이라고 불렀다. 사. 무. 엘.이라는 발음이 내 입에서 단 한 번도 나온 적 없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