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르코를 처음 만난 건 어느 여학교의 실내 수영장에서였다. 회갈색 눈동자가 깊고 신비로워 빠져 버릴 것만 같던 , 떡 벌어진 역삼각형 몸매에 매끄러운 흰 피부를 가진 이십 대 중반의 호남형.
마르코는 아들의 수영강사였다. 그날은 아들을 본인의 클럽에 가입킬 수 있는지 여부를 테스트하는 날이었다. 쨍한 하늘에 느닷없이 비가 쏟아지더니 하늘에 쌍무지개가 선명하게 걸쳐져 있던 날, 그토록 아름다운 일곱 빛깔조차 무감하게 느껴지던 어제와 같던 또 하루, 아들은 마르코 앞에서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을 순서대로 선보였다.
생존을 목표로 네 살 때부터 시킨 수영이 아들의 특기가 되었고 이렇게 뉴질랜드까지 와서 선수로 활동하게 될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스타팅블록에서 날렵하게 물속을 파고드는 아들의 모습은 흡사 돌고래가 곡선으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아들의 수영실력을 유심히 평가하던 마르코가 다가왔다. 반짝이는 금발을 손으로 쓸어 올리던 그는 내게 무언가를 물었다. 심장을 짓누르는 외모에 압도되어서인지 아니면 나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라는 굴레 때문인지 당최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붉은 입술을 타고 나오는 소리는 오직 레븐, 레븐.
"레븐?"
레벨을 얘기하고 있는데 굴레에 갇힌 내 귀가 레븐으로 받고 있는 건가, 나는 멍한 눈으로 다시 한번 물었다. "레븐?"
그는 난처한 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보았다.
"ask him."
얼굴이 화끈대다 못해 씀벅거림을 느꼈다.
테스트가 끝나자마자 나는 아들을 붙잡고 물었다.
"아까 마르코가 뭐라고 한 거야?"
"아~ 언제 열한 살이 되느냐고."
세상에나, 나는 이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르코의 입에서 나온소리는 레븐이 아니라 일레븐이었다는 것을. 일이 묻혀버리고 레븐만 들렸던 것이다. 결국 나는 일레븐도 못 알아듣는 사람으로, 영어의 기본조차 없다는 주홍글씨를 새기게 된 것이다.
예상한 일이기는 했지만 그 후로 마르코는 내게 그 어떤 것도 묻는 법이 없었다. 그가 클럽을 이직하는 날까지도 내게 고개를 드는 법이 없었고 나 역시 만회하려는 노력 없이 어영부영 그의 눈을 피하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뉴마켓( 오클랜드 근처의 도시)을 지나가던 길에 마르코와 우연히 마주쳤다. 박시한 티셔츠에 헐렁한 면바지를 입은 그가 맞은편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오던 길로 되돌아가버릴까 고민도 되었지만 그러기엔 그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Hi."
마르코의 저음이 묵직하게 깔렸다. 바람을 타고 그의 몸에서 다비도프 향이 흩어져 날렸다.
"오, 마르코, 너 오늘 어때?"
그들이 내게 으레 그러듯 나 역시 궁금하지도 않은 그의 기분을 물었다. 마르코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한껏 웃어 보였다.
"굿!"
오직 내 머릿속에는 일레븐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