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치료의 한계로 찾아간 한의원과 심리상담센터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단약 후 더 예민하고 기복이 심해진 감정, 그냥 주변에 사람만 있으면 빨개지는 얼굴까지.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거기다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새로 등장한 동료의 노골적인 무시, 나의 책임이 아닌데도 전가되는 잘못, 성과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보상 트리오가 겹쳐져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밥벌이도 해야 하고 업무에 애착이 있어 근근이 다니고는 있었지만 정말 회사 가는 게 너무 싫었고 사무실에 앉아있는 게 숨 막혔다.
사회불안과 우울증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는 얼굴 보고 대화할 때 얼굴이 빨개졌다면 이제는 누가 말을 걸 것 같거나 사람이 내쪽으로 다가오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졌다. 메신저로 대화할 때도 너무 긴장해서 얼굴이 터질 것 같이 타올랐고 대화를 마치고 나면 온몸이 척척하게 젖어있었다. 스트레스 상황을 겪을 때마다 속에서 분노가 들끓었다.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이 속이 조여들면서 숨 쉬는 게 힘들었다. 원인 모를 두통과 현기증이 찾아왔다. 집에 가면 딱히 슬픈 일도 없는데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자기 전 몇 시간씩 주체되지 않는 눈물을 흘리다가 새벽에 지쳐잠드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한바탕의 약물 오남용 잔치 후 단약을 결심한 나는 자가구제의 일환으로 사회불안 관련 유튜브와 책을 많이 찾아봤다. 분명 도움이 되던 때도 있었지만 이때는 외부자극이 있어서 그런지 이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 억울함,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이 흉폭한 감정들을 끌어안고 혼자 어쩔 줄 모르며 동동거리다가 결국 다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마음 먹었다.
전에 양학의 도움을 받아봤으니 이번에는 한의학의 도움을 받아보자는 아주 단순한 논리로 한의원에 찾아갔다. 이번에 찾아간 한방정신과에서는 전보다 훨씬 많은 검사를 받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검사는 뇌파 검사였는데 뇌파만으로 우울적 소견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의사 선생님은 스트레스 상황이 오래 지속된 것으로 보이며 무기력증, 우울증이 만성화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측두 기능의 저하가 보인다고도 진단하셨는데 뇌 기능이 저하될 정도라니 내가 너무 나를 방치했나 싶었다.
한의원에서는 날 때부터 심장이 약하게 태어난 게 사회불안의 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전반적으로 수면도 부족하고 신체 활동 기능도 떨어져 있으니 심장 및 기운을 보강할 수 있는 약을 한번 먹어보자고 하셨다. 하지만 흔쾌히 약을 먹어보겠다고 대답하기엔 약값이 너무 비쌌다. 월 50만 원보다 100만 원에 가까운 약값을 듣고 나는 고민해 보겠다며 병원을 나섰지만 병원에 재방문하는 일은 없었다. 일단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안이 없어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내가 얼굴 자주 빨개지는 게 고민인 걸 알고 있는 친구들에게 상황을 털어놓았다. 지금도 정말 천운이라고 생각하는 게 럭키비키 하게도 그 친구들 중 한 명이 심리상담사라서 나는 아주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친구는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며 사회불안 잘 보기로 유명한 심리상담센터를 직접 소개해주기까지 했다.
상담비는 1회기 기준 10만 원 내외였다. 물론 이 또한 한 달로 환산하면 4~50만 원에 육박하는 금액이었지만 어쨌든 한약보다 쌌고 이제는 약에 의존하기보다는 근본적인 치료를 받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어서 고민 끝에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친구 왈 상담은 갔다 안 갔다 하는 것보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꾸준히 가는 게 효과가 더 좋다고 해서 가성비충인 나는 조금이라도 상담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다니기로 마음 먹었다.
결론적으로 심리상담센터를 다니게 된 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잘한 짓이었다. 나는 여전히 얼굴이 빨개지고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지만 전만큼 자괴감이 들거나 자기혐오를 하지 않는다. 약물을 먹었을 때처럼 얼굴이 아예 안 빨개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등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다. 하지만 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 감정을 대하는 방법을 바꾸고 나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결국에는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관건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