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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Oct 24. 2024

불안이라는 씨앗에 누가 물을 주었는가(2)

흰색 패딩 입은 게 꼴보기 싫다는 이유로

충격적 경험

한 에피소드로 꼽을 수 있는 충격적 경험이 있는 건 아니지만 청소년기에 겪었던 따돌림이 내가 다른 사람들 눈치를 지나치게 보고 긴장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학교 다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주동하는 따돌림을 당했던 적이 있다. 그 친구는 학년이 바뀌었을 때 내게 먼저 친해지고 싶다고 다가온 친구였다. 낯을 무지막지하게 가리는 나로서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친구를 A라고 칭하겠다.


A는 내게 자기 친구들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초반에는 A와도 A의 친구들과도 잘 지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A가 나와 다른 친구들 사이를 이간질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지 않은 말을 다른 친구들에게 전하고, 다른 친구들이 내 험담을 했다고 전해주기도 했다. 분명 내 앞에서는 다들 아무 일도 없는 듯 친근하게 굴었는데 뒤에서 내 욕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A는 ‘다른 친구들은 네 욕을 하지만 나만은 너를 좋아해.’ 라는 태도로 굉장히 인심 쓴다는 듯 나를 대했다. 나는 점차 다른 친구들과 멀어졌고 반에서 A 말고는 말할 사람이 없었다.


친구가 A만 남게 되자, A는 내게 무례하게 굴었다. 먹던 물을 내게 뱉기도 했고, 상스러운 욕을 하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과 나를 때리려고도 했고, 내 물건을 훔쳐가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A의 일관되지 않은 태도였다. A는 하루는 내게 너무 잘해줬고, 그다음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 집앞까지 쫓아오며 나를 괴롭혔다. 그당시 나는 다른 친구도 없었고 가족이 의지가 되는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최대한 A와 다시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다. 매일같이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갔지만 온탕인 날도 있었으니까 A와 잘 지내고 A의 비위를 잘 맞추면 다시 예전처럼 모두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다.


A는 감정기복이 심해서 장단 맞춰주기가 정말 힘들었다. A와 있을 때면 난 늘 A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내가 하는 말을 A가 주변에 어떻게 왜곡해서 전달할지 몰랐기 때문에 한마디 한마디 내뱉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A의 기분에 따라 그날의 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도 정해졌다. A와는 학년이 바뀌고도 같은 반이 되었고 내 왕따 생활도 1년 더 연장됐다. 나는 학교 가기가 너무 싫어서 아프다고 꾀병을 부리고 학교에 안 가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방과 후 A가 집앞까지 쫓아와서 나를 불러내 어디가 아프냐고 닦달을 했다.


하지만 A의 유아독존도 영원하지는 않았다. 하도 여기저기 이간질을 하고 다녀서 친구들 험담하고 다닌 게 꼬리 잡힌 A는 결국 무리에서 배척되었다. 무리에서 A가 방출되고 나서야 친구들은 A가 나에 대해 어떤 말을 하고 다녔는지 알려주며 그간 오해가 깊었다고 사과했다. 한 친구는 A가 나를 처음 보자마자 괴롭히고 싶어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우리 집이 잘 사는 것 같아 꼴보기가 싫었고 내가 온실 속 화초 같은 느낌이라 싫었다고 했단다. 처음 봤을 때 내가 흰색 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그게 비싸 보였고, 관리가 잘 돼 보이는 게 그렇게 보기 싫었다고. 우리 집은 잘 살지도 않았고, 패딩도 비싼 패딩이 아니었고, 산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때가 타지 않아 하얘보였을 뿐인데. 뭐 하나 맞는 것도 없는 것 가지고 나를 2년이나 괴롭혔다는 게 억울했다. 대체 A는 나를 왜 그렇게까지 싫어했을까?


그래도 사필귀정이라고 나는 A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지만 이미 나는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들어 버려 또래 친구들 대하는 게 너무나도 어려웠다. 친구들 표정 하나, 말 한마디에 의미부여를 많이 했고 지금은 저렇게 말해도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뒤에서는 다른 말을 할 거야, 같이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습관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해서 내 입에 버릇처럼 남아있다. 


너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 안 하면서 내가 기분 나쁠까 봐 그렇게 말하는 거지?


그럼 상대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뭔 소리야.” 하고 내가 내뱉은 왜곡을 바로 잡아줬다. 


청소년기에 가정에서, 친구에게서 겪었던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 같긴 하다. 나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늘 마음이 불안했다. 큰 소리가 날까 봐 불안했고, 누군가 나를 공격할까 봐 두려워했다. 지금은 모든 불안한 상황이 소강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빙판 위에 맨발로 선 것처럼 불안함에 오들오들 떤다. 그 불암함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신체반응으로까지 나타나며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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