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불안은 타고난 걸까?
문제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찾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일 뿐. 정신과 약을 단약하고 나는 전보다 더 심해진 사회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도 다시 약을 먹고 싶지는 않아서(처방에 맞게 복용하면 될 일이었는데 이땐 그럴 자신이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던 중 책 한 권을 발견하게 됐다. 권정혜 저자가 쓴 <수줍음도 지나치면 병>이라는 도서였다. 책 제목부터 심금을 울리는 게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견과 동시에 구매한 책은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책에 너무 내 얘기밖에 없었다. 내가 진단받은 사회불안장애라는 것에 대해 훨씬 상세하게 알 수 있었고 나와 비슷한, 어쩌면 나보다도 심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공감이 가기도, 위로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그 책에는 내가 늘 궁금했던 사회불안의 원인에 대해 설명해 주는 대목이 있었다. 대체 내게 왜 사회불안이 생겼을까? 왜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고 땀이 나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이토록 힘들게 만들까? 원인을 찾아내면 사회불안을 나아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책에서는 사회불안의 원인을 아래와 같은 세 가지로 꼽고 있다.
유전
양육 환경
충격적 경험
애석하게도 나는 세 가지 모두 짚이는 구석이 있어서 어떤 게 원인이라고 명료하게 찾아내기 힘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사회불안 원인에 대해서 말해보겠다.
유전
외모뿐 아니라 성격이 유전되기도 한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종종 ‘너는 어떻게 우리 집에서 태어났니?’ 하는 돌연변이가 탄생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는 우리 부모님을 빼다 박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제삼자가 보면 부모님과 내가 하나도 닮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부모님은 사회화가 너무 잘 되셔서 그룹에서 장 자리를 심심찮게 차지하곤 하셨으니까. 하지만 두 분 다 사람들 앞에 나서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 진심으로 즐기는 타입은 아니셔서 집에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토로하곤 하셨다. 사회생활 가면을 벗은 부모님의 맨 얼굴은 나와 닮아 있었다.
부모님에게 정신과 약 먹는 걸 들켜서 사회불안과 우울증에 대해 고백한 날이 있었다. 나는 부모님이 큰 충격을 받을 거라 예상했지만 두 분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나의 사회불안 증상과 겪고 있는 어려움을 다 듣고 나서 두 분이 하신 얘기가 도리어 내게 충격이었다.
한 분은 어렸을 때부터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심지어 당신도 얼굴이 잘 빨개지셔서 사람 대하는 게 힘들었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했다고. 지금은 나이가 먹어서 전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여전히 얼굴이 빨개지고, 지적을 받기도 한다고 하셨다. 나와 다른 점은 지적을 받으면 쿨하게 ‘저 원래 얼굴 잘 빨개져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신다는 거였다. (개인적으로 이 쿨함은 유전받지 못한 게 상당히 안타깝다.) 다른 한 분은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얘기는 자세히 듣진 못했지만 두 분의 얘기를 듣고 내 성격과 기질이 그냥 타고난 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육 환경
부모님이 하실 수 있는 최대한으로 나를 지원해 주고 사랑해 주셨다는 것에는 명백히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부모님께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아 반열에 든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가정환경이 화목하고 편안했냐고 묻는다면 그 질문에는 물음표를 던져야 할 것 같다.
부모님은 내게 각별하셨지만 정작 부부사이가 좋지는 못 하셨다. 서로에게 데면데면하고 자주 싸우는 모습을 보며 자란 나는 다른 부모들도 이렇게 무미건조하고 때로는 원수처럼 지내는 줄 알았다. 자라면서 주변 친구들의 부모님을 보고, 미디어에 나오는 다정한 부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부사이가 저렇게 살가울 수도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집에서는 큰 소리가 자주 났고, 그럴 때면 나는 방문을 닫고 책상에 앉아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척 공부를 했다. 처음에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눈물이 났으나 나중에는 아무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두 분은 인생의 목표를 내가 성공하는 데 거신 분들이었다. 내 성공을 위해서 잘 맞지 않는 배우자, 힘든 직장생활을 이 악물고 버티시는 것 같았다. 그 감정들이 내게 오롯이 느껴졌다. 부모님은 내가 엇나가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를 희망하셨다. 집안 분위기는 자연스레 엄하고 통제적으로 변했다. 동네에 우리 부모님 무섭다는 소문이 파다할 정도였다.
부모님의 유일한 희망이 나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한때는 그 기준에 부합하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부모님 말을 거스를까 봐 전전긍긍, 부모님 기분이 안 좋으면 내가 뭘 또 잘못한 건지 곱씹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두 분이 싸울 때마다 내가 성공하면 이 싸움도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며 더 공부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부모님은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으셨다. 대입을 망치긴 했지만 그전까지 나는 공부를 못하는 축보다는 잘하는 축에 훨씬 가까웠다. 부모님은 만족을 모르셨고 내가 더 잘하기를 바라셨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는데도 성적으로 칭찬받은 적이 별로 없었다. 전교 5등 안에 들어 기쁜 마음에 전화를 걸었을 때, 돌아왔던 답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1등은 아니잖아. 더 노력해서 다음에는 1등 하자.
나의 만족치보다 부모님의 기대치가 항상 훨씬 높았다. 나는 이만하면 너무 잘했다고 만족했지만 부모님은 내가 안주하지 말고 조금 더 잘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세상에 너보다 잘난 애들 널렸어. 고작 이거 가지고는 어디 명함도 못 내밀어. 더 높이, 더 넓은 데로 나가야 해.
지금은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안다. 다 날 위해서 그러셨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때의 내게는 버거운 요구였고 그게 날 자꾸 위축되고 자책하게 만들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삶을 사는 게 쉽지 않았고 사는 게 무기력했다. 아마 우울증의 시작은 이때쯤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나는 부모님이 원하는 인생도, 내가 원한 인생도 살지 못했다. 내게 남은 건 나를 믿지 못하는 불안이라는 부산물뿐이다.
(다음 장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