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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에 절여진 토마토

인데놀 의존증

by 홍시

코로나 유행으로 다니던 회사의 근무형태가 재택으로 전환되었다. 매일 출근했으면 약을 규칙적으로 먹었을 텐데 사람 만날 일도 없겠다, 나는 내 멋대로 약을 먹었다 안 먹었다 했다. 약이 남으니 진료일이 점차 뒤로 미뤄졌고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약을 먹으면 안 된다고, 처방한대로 먹어서 불안하지 않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지내야 사회불안도 더 호전된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우울하지도 않고 인데놀만 있으면 얼굴도 안 빨개지기 때문에 오만방자해진 것이다.


나는 내 우울증이 완치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이상 항우울제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은 항우울제라는 게 반드시 우울해야만 먹는 게 아니라고 불안장애 치료에도 도움이 될 테니 꾸준히 먹어보라고 하셨지만 왜인지 고집불통 안하무인이었던 그 시절의 나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여놓고 집에 와서는 약봉지를 다 뜯어서 약통에 인데놀만 담아 회사에 가져갔다. 의사도 약사도 아니면서 처방받은 약을 취사선택하여 먹었다.


나는 이제 얼굴이 빨개질 것 같은 상황에서 인데놀만 복용하기 시작했다. 나는 얼굴만 안 빨개지면 아무 문제없는 사람이라는 굳은 신념이 생겼다. 인데놀을 먹으면 확실히 얼굴이 빨개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스스로가 아무 문제없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몸이 이상했다. 인데놀을 먹어도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한 것이다.


인데놀을 먹었는데도 얼굴이 빨개진 날은 인데놀을 처음 먹었던 날에 상응하는 충격을 안겨줬다. 인데놀만 먹으면 천하무적이었는데 갑자기 인데놀이 안 듣는다고? 인데놀을 먹고도 얼굴이 빨개지는 상황이 몇 번이고 반복되자 나는 홍조를 더 강력하게 방어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인데놀을 추가 처방했다. 기존에 먹던 용량의 2배를 먹다가 시원찮을 때는 3~4배도 늘려서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조의 정도가 내가 약을 처음 먹었을 때보다 훨씬 더 강하게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적으로 홍조의 강도가 더 세진 건지 아니면 약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 내가 과민하게 반응한 건지 이제 와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아무튼 그때의 나는 약을 먹어도 홍조가 올라오는 상황에 잔뜩 겁이 질려 있었다.


정해진 용량의 배를 먹기 시작하니 몸에서는 전과 다르게 이상 반응을 보였다. 몸에서 수용할 수 있는 수준보다 많이 복약한 날에는 가슴이 답답하고 숨 쉬는 게 불편하고 머리가 먹먹하게 울렁거리는 두통이 찾아왔다. 그럼 얼굴이 잘 빨개지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아파서 당최 아무것에도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퇴근하고 침대에 산송장처럼 누워 시름시름 앓으며 인데놀을 이렇게 많이 먹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얼굴이 빨개지는 상황이 찾아오면 잠깐의 망설임 끝에 결국 처방량을 넘어서는 인데놀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인데놀을 또 과하게 털어놓고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어르신들을 제치고 노약자석에 앉아서 퇴근을 하는 중이었다. 문득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나아지기 위해서 약을 먹기 시작한 거고, 실제로 나아지고 있었는데, 내 맘대로 약을 복용해서 이게 무슨 꼴이지? 약만 제대로 먹었으면 이 지경으로 노약자석에 앉아 집에 가는 일은 없었을 텐데. 후회가 됐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결국 인데놀이 없으면 나는 평생 홍조를 달고 살아야 하는 건가? 하는 자조가 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나의 사회불안 증상은 인데놀로 억눌려진 거지 치료된 게 아니었다. 약물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커져갔고 나는 이제 약물 없이는 외출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약을 까먹고 외출을 하게 되면 약속 시간을 뒤로 미뤄서라도 약을 갖고 다시 나와야 할 정도로 강박적으로 변했다. 의사 선생님의 처방만 지켰어도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텐데 이미 지나간 시간은 후회해도 의미가 없지요. 아무튼 그때의 나는 다시 의사 선생님의 처방을 제대로 지키는 방법 대신 아예 단약 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약을 처방받으면 또다시 인데놀을 여러 개 털어 넣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아예 수중에 약이 없게 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인데놀을 안 들고 나왔다는 사실만 깨달아도 식은땀이 나던 난데 어떻게 이때 인데놀을 끊을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양해를 구하고 노약자석에 앉아 숨을 고르던 게 어지간히 현타가 세게 왔던 모양이다. 아무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처방받은 약을 다 먹고 난 후에(처방받은 건 또 포기 못해서 다 먹었다) 더 이상 정신과에 가지 않았다.


점진적으로 나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몸에서 우울증은 완전히 몰아냈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이 다시 빨개지기 시작해서 우울이 찾아온 건지, 약을 더 이상 먹지 않아 전의 상태로 돌아온 건지, 아무튼 나는 예전에 느꼈던 우울을 다시 마주해야 했다. 기분은 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우울에 잠식되어 갔다. 넓어졌던 시야가 다시 전처럼 좁아졌고 하늘을, 나무를 보면서 출퇴근하던 나는 다시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속에서 드글드글 끓는 분노를 삼켰다. 기분은 다시 침체됐고 기복이 심해졌다. 시야가 좁아진 만큼 작은 것에도 쉽게 건드려지고 예민해졌다.


코로나 시기로 재택을 하는 동안은 약 없이 사는 게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사람 만날 일이 현저하게 적었으니까. 하지만 코로나 유행이 종식되고 정상근무를 하게 되면서 나의 고통은 다시 재생되었다. 나는 갑자기 또 얼굴이 훅훅 빨개지는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고, 동료들은 미묘한 표정으로 빨개진 나를 응시하다가 먼저 시선을 피해주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수만 가지의 비난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속이 들끓었다. 엄청난 자괴감이 들었다.


다시 얼굴이 빨개지고 땀이 나기 시작한 나는 전처럼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제 의지할 데가 없으니 얼굴이 빨개질 상황을 최대한으로 줄이자고 생각했다. 나는 예전처럼 업무적인 대화만 간신히 해냈고 밥도 가능하면 혼자 먹으려고 했다. 사람을 기피하고 말수 없는 내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나 보고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니냐며 망신을 주기도 했다. 차라리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나와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이 그러니 그냥 인간 자체가 싫어졌고 다 꼴도 보기 싫어졌다. 나는 또다시 나를 견고히 고립시켜 나갔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나는 예전보다도 더 극심하게 사회불안을 겪기 시작했다. 이제는 콕 집어 내 쪽이 아니라 내가 있는 언저리 방향으로 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실루엣만 보여도 얼굴이 빨개지고 진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 주변 사람에게 말을 걸어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게다가 이제는 대면이 아닌 메신저로 대화를 해도 얼굴이 불타올랐고 옷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땀이 났다. 편안했던 3년간의 시간이 신기루 같았다.


잠시 광명을 찾았다가 땅에 처박혀 버린 나의 일상. 이때의 경험으로 사회불안을 치료할 다른 방법을 찾긴 했으나, 의사 선생님 말을 잘 듣고 치료를 받았다면 사회불안이 더 심해지지는 않았을 거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전 글에서 정신과 방문, 복약을 강력 추천했었는데 꼭 나처럼 약물을 오남용 하지 말고 진료받은 대로, 처방받은 대로 잘 따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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