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러운 감정을 부정하지 말고 수용하기
심리상담 첫날, 상담사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심리상담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까요?”
한평생 끊임없이 고뇌하던 고민이 있었기에 목표는 명료했다. 바로 얼굴이 빨개지지 않는 것.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생활할 때 홍조, 표정 때문에 불편함을 겪지 않았으면 했고, 사람을 대할 때 마음속에 올라오는 불안과 긴장을 잘 다루고 싶었다.
나는 내 얼굴을 지나치게 의식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든 문제이긴 했지만 나는 홍조뿐 아니라 얼굴을 타인에게 노출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했다. 내 얼굴을 보는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까 봐, 내 표정이 이상해서 상대가 기분이 상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사무실에는 앉은자리에서 내 얼굴의 다양한 각도를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그 좁은 책상에 작은 거울이 세 개나 놓여있다.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나는 내 얼굴이 거울이나 유리창에 비치는 자리에 앉았고, 그게 어려우면 테이블 위에 손거울을 올려놓고 수시로 얼굴 상태와 표정을 점검했다. 나는 친구 말에 맞장구치고 웃으면서 리액션하는 내 모습이 어색하거나 이상해 보일까 봐 실시간으로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확인했다.
나는 왜 이렇게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집착할까? 대한민국에 외모 콤플렉스 없는 여성 찾기가 더 힘들 정도로 다들 외모 강박을 안고 사는 현실 속에서 나 또한 한때 외모 콤플렉스가 지독했었다. 얼굴의 모든 부분이 불만족스러워서 얼굴을 갈아엎고 싶은데 주머니 사정은 여의치 않으니 얼굴을 공개하고 무료로 성형수술을 받을 수 있는 성형수술 모델까지 지원했을 정도였다. (서류 심사에서 통과하여 의사와 직접 상담한 적도 몇 번 있지만 결국 발탁되진 못했다.) 어렸을 때는 외모가 준수한 편이었는데 사춘기와 함께 찾아온 역변에 적응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오랜만에 나를 보는 사람들은 ‘어렸을 때는 참 예뻤는데…’ 하며 말을 잇지 못했고 나는 당황해서 얼굴이 새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춘기 때 얼굴 골격이 변하며 여드름도 같이 찾아왔다. 얼굴 피부에서 여드름이 안 난 곳을 찾는 게 어려울 정도로 얼굴 전면에 여드름이 났고 나는 매일매일 거울을 보며 절망에 빠졌다. 여드름이 심하게 난 얼굴은 예쁘고 못생기고를 떠나서 불쾌했다. 내 얼굴을 내가 봐도 오래 쳐다보기가 힘들고 지저분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른 사람이 보면 오죽할까? 여드름 난 얼굴이 혐오스럽단 생각이 들면서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짐작했다. 소심해서 다른 사람들과 말하는 걸 어려워하던 나는 이때 아예 사람과 마주 보고 대화하기를 피했고, 상대에게 얼굴 보이는 게 싫어서 다른 방향을 보고 말하거나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내 얼굴이 못생기고 불쾌해 보이는 것과 별개로 표정에 대한 고민도 컸다. 나는 살면서 표정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았다. 내가 지금 짓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표정과 상대가 보고 있는 표정이 불일치할 때가 많았다. 나는 담담하고 별생각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상대는 “너 눈빛이 왜 그래? 기분 나빠?”, “지금 당황헀어? 얼굴 빨개졌어.”, “너 지금 표정 울 거 같아.”라고 말했다. (내가 자주 들었던 말 탑3를 추려봤다.) 반복적으로 여러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사람과 마주 보고 리액션할 때, 또다시 내 표정이 상황과 적합하지 않거나 어색할까 봐 의식되기 시작했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살면서 표정에 대한 평가를 반복적으로 받아왔기 때문에 의식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씀하셨다. 예민하게 내 얼굴과 표정을 모니터링하는 게 당연하다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내 표정과 상대가 보고 있는 내 표정이 다른 건 상대가 오해했다기보다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감정이 표정에 드러났을 확률이 크다고 하셨다. 표정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감정을 반영하기 때문에 내가 못 알아차린 감정이 표정에 드러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그렇게 당황스럽지도 않은데 얼굴이 빨개지는 건(‘나는 솔로’ 얘기하다가도 얼굴이 빨개지곤 하니) 내 속에 당황스러운 감정이 있는데 내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걸 수도 있다고 하셨다.
나는 감정 홍조와 더불어 내 얼굴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을 고치고 싶었다. 우선은 눈에 가장 잘 보이는 홍조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으므로 홍조를 나아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명료한 해결책을 제안해 주셨다.
이름하여, ‘셀프토크’하기다.
셀프토크라는 건 이름 그대로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이다. 얼굴이 빨개진 상황에서 나와 대화를 해보는 것. 그동안 나는 얼굴이 빨개지면 부정부터 시작했다. ‘아 미치겠네 얼굴 또 빨개졌어. 이상하게 보이겠지? 제발 얼굴 좀 안 빨개졌으면 좋겠다. 지긋지긋해!’ 하지만 셀프토크는 내게 다가온 홍조와 당황, 불안, 긴장 등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헤아리고 궁금해하는 과정이었다.
이해가 쉽도록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나는 직장동료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기색만 보여도 얼굴이 빨개졌으므로, 동료가 내 쪽으로 오는 거 같은 상황을 상정해 보겠다. 셀프토크에는 단계별 프로세스가 있어서 찬찬히 단계를 나눠 설명해보려 한다.
상황에 대한 생각 인지하기
상황 : 동료가 내쪽으로 오는 거 같이 보임.
상황에 대한 내 생각 : ‘왜 이쪽으로 오지? 나한테 오는 건가? 아 제발 안 왔으면 좋겠다.’
생각 받아들이기
전에는 ‘이런 생각하면 안 돼!’하고 부정했지만 이제는 내가 하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아, 나는 저 사람이 이쪽으로 안 왔으면 좋겠구나.’
이 생각이 왜 드는지 궁금해 하기
나는 왜 저 사람이 이쪽으로 안 왔으면 할까?
(단, 그 사람이 뭘 하러 오는지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왜 오는지는 궁금해하지 않기)
홍조에 대한 관점 전환하기
홍조가 오면 몸을 보호하기 위해 혈액이 특정 부위에 몰리는 것을 떠올리며, 혈액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얼굴로 왔구나, 하고 생각하기. 몸이 나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생각하기.
몸이 이완할 때까지 기다리기
‘안 돼! 빨개지지 마!’하고 몸에게 강압적으로 굴기보다는 홍조가 가라앉을 때까지 심호흡하며 기다리기.
물론 홍조가 올 때 자책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때 자책이 든다고 또 나를 비난하기보다는 ‘그래. 이번에도 얼굴이 빨개져서 짜증 나고 싫구나.’하고 부정적인 감정까지 받아들여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얼굴이 빨개지면 얼굴이 빨개졌다는 사실에 당황해서 머리가 백지화되고 신경이 온통 홍조에 집중되어 우왕좌왕하기 마련이다. 이때 여러 단계를 거쳐서 해야 하는 셀프토크를 하라는 게 뜬구름 잡는 허황된 소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얼굴이 빨개졌을 때는 보통 앞에 사람도 있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셀프토크의 목적은 홍조에 집중하지 않는 것에도 있다. 얼굴이 빨개졌을 때 ‘으악! 나 얼굴 또 빨개졌어!’하고 머릿속으로 사이렌을 울리기보다는 ‘한번 셀프토크를 해볼까?’하고 내 생각을 헤아려보는 데로 주의를 바꿔보자.
당연히 처음에는 셀프토크하는 게 낯설다. 나도 처음에는 얼굴이 빨개진 상황에서 셀프토크를 하는 게 쉽지 않아서 상황이 다 끝난 다음 혼자 남겨졌을 때 핸드폰 메모장에 셀프토크를 써 내려갔었다. (꼭 그 상황 속에서 셀프토크를 하지 않고 상황이 지난 다음에, 자기 전에 일기 쓸 때라도 하면 좋다.) 그런데 이걸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나에 맞게 프로세스가 단축되고, 이제는 얼굴이 빨개진 상황 속에서도 간단하게 셀프토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상담받기 전에는 사람이 다가오는 게 너무 싫었는데 상담을 받고 난 후에는 누가 다가오는 게 살짝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얼굴이 빨개질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내가 비싼 돈 주고받은 상담에서 배운 내용을 적용해 보고 싶었고, 이게 효과가 있는지도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담에서 배운 내용에 대한 실습이라고 생각하니 새로운 사람 만나는 데도 전보다 적극적으로 변했고, 누가 내쪽으로 다가오거나 말을 걸어도(설사 얼굴이 빨개질지언정) 이건 훈련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처럼 얼굴이 빨개질 때 당황스러운 감정에 압도되는 사람이라면 꼭 셀프토크하는 방법을 연습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