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빨개지는 이유
불안이 높은 만큼 의심이 많은 나는 첫 번째 상담을 받기 전까지 심리상담 효과에 대한 은은한 불신을 갖고 있었다. 정말 딱 죽겠다 싶었던 대학교 때 학교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었는데 정신 건강에 그렇게 큰 도움을 받지 못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상담사 선생님은 늘 피곤해 보이셨고, 나는 지루한 내담자가 된 기분이었으며, 상담사 선생님께 공감받는다는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래도 어디다 말 못 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데 위안을 얻으며 종종 방문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 상담에는 거는 기대치 자체가 달랐다. 대학교 상담센터는 무료였지만 이번에 방문하는 상담센터는 1회기에 10만 원 내외의 비용이 들었고 (필수는 아니었지만 친구 의견에 따르면) 10회기 정도는 받아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으니 적어도 100만 원 이상의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가시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정신 건강에 100만 원 남짓한 금액을 쓰는 게 맞을까 망설여졌지만 진퇴양난인 상황이라 심리상담이 100만 원 이상의 값어치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사회불안과 우울증을 저울질할 수 있다면 이때는 우울증의 추가 훨씬 무거웠지만 우울증은 드러나지 않고 사회불안은 홍조로 드러났기 때문에 사회불안을 우선순위에 두고 상담을 받았다. 첫날, 상담사 선생님은 어떤 점이 불편해서 상담센터에 방문하게 됐는지, 어떻게 바뀌고 싶은지와 함께 얼굴이 빨개질 때 간단하게 주의를 환기하는 법에 대해 알려주셨다. 1시간이라는 상담 시간이 주어져서 그런지 정신과 상담 때보다는 내밀한 대화가 오갔고 내 사회불안의 근원적 문제에 대해 훨씬 가깝게 접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의 문제와 그간 겪어왔던 방황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시도 때도 없이 빨개지는 얼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이야기. 직장생활에 어려움이 있어 정신과 약물을 복용했으나 어느 순간 약물을 복용해도 얼굴이 빨개져서 약을 끊은 상황. 지금은 훨씬 더 심한 불안과 홍조에 시달리고 있어 심리상담센터까지 찾아오게 된 경위에 대해 고백했다. 상담사 선생님은 내가 말하는 에피소드를 들으며 구체적인 상황, 구체적인 인물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보셨고 내가 그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물어보셨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들이었다. 나는 오직 얼굴이 빨개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고 얼굴이 빨개지면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느라 다른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선생님은 불안이 올라오고 얼굴이 빨개지는 상황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여태 내가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감정은 항상 내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잘 어루만져주고 그 감정이 왜 나타났는지 궁금해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여태껏 그 감정을 헤아릴 생각은 않고 ‘얼굴이 빨개지면 안 돼.’, ‘당황하면 안 돼.’ 하고 감정을 억눌러왔기 때문에 불안의 힘이 전보다 훨씬 세진 걸 수도 있다고.
선생님은 ‘왜?’라는 질문을 자꾸 해보라고 하셨다. 왜 얼굴이 빨개졌을까? 어떤 생각을 해서 얼굴이 빨개졌을까?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왜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왜? 왜? 꼬리에 꼬리를 묻는 질문을 하다 보면 내가 왜 불안해하고 얼굴이 빨개지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선생님과 한 시간 동안 상담하면서 내가 찾은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받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거였다. 상대가 나를 볼 때 속으로 분명 평가를 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평가받을까 봐 두려워 긴장하고 불안해한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 평가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홍조, 식은땀 등 신체반응이 나타나는 거라고 하셨다.
상담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대부분은 내가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내 홍조의 치료 방법일 거라고 짐작도 못한 내용들이었다. 나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홍조와 식은땀이 사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작용이었다니.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끼면 뇌는 심리적인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혈액을 얼굴로 집중시킨다거나, 열이 오른 몸의 온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땀을 내는 등의 방법으로 내 몸을 보호하고 상태를 최적화시키는 거라고 한다. 내 몸은 나를 위해 예민하고 기민하게 반응했을 뿐인데 내게 평생 질타만 받고 살아온 셈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얼굴이 빨개지거나 땀이 났을 때 ‘제발 얼굴 안 빨개지면 좋겠다.’, ‘제발 땀 안 났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만 해왔다. 하지만 신체반응이 일어났을 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열심히 나를 보호하려고 애쓰는 몸에게 ‘다 집어치워!’라고 호통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한다. 대신 이럴 때는 내 몸의 작동을 강제종료하려고 하지 말고 이완반응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낫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열심히 애쓴 몸에게 비록 원치 않는 상황이었을지언정, 위협(상대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을 가능성)을 눈치채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애쓴 것을 알아줘야 한다고 했다. 격려하고 칭찬해 줘야 한다고.
물론 얼굴이 빨개지고 싶지 않은데 빨개져 버린 상황에서 내 얼굴에 홍조를 띄운 몸에게 잘했다고 칭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관성에 끌려 전처럼 스스로를 질책하고 비난하는 게 훨씬 쉬웠다. 하지만 선생님의 설명이 그간 이해되지 않았던 내 몸의 작동원리를 충분히 이해시켜 주었고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하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아니, 사실은 이미 10만 원을 지불했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열심히 따랐다.
얼굴이 빨개지고 나면 얼굴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당황스러워서 얼굴이 빨개졌구나. 상대가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할까 봐 긴장해서 그렇지? 그래도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얼굴을 붉게 만들고 땀을 낸 내 몸에게 고생했다고 격려해주고 싶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상당히 어색하고 선생님이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지 잘 기억나지 않아서 상담 후 적은 메모들을 계속해서 들춰봐야 했다. 하지만 하다 보니 적응이 돼서 이제는 정말로 몸에 대한 원망보다는 나를 보호해 주기 위해 애쓰는 몸에게 연민이 더 강하게 들었다. 나중에는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별거 아닌 것(비난을 듣는 상황이 아니라 '속으로 나를 비난하면 어떡하지?' 생각되는 상황에서도 얼굴이 빨개졌으므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보면 내 몸은 위험 감지에 최적화된 게 아닐까? 옛날에 태어났으면 어마어마하게 생존에 유리한 고급보디였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