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제조업의 규모는 방대했다. 18세기, 1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의 자기 도시 징더전에는 3000개의 가마가 있었다. 중국은 시장을 이해했으며 빠르게 적응했다. 그들은 오스만제국을 위해 쿠란의 구절을 새긴 그릇을 제작했으며,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1세를 위해 그의 문장을 새겨 넣은 식기류를 제작했다. 일찍이 1530년대에 포르투갈의 귀족들은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담아 식기류를 주문했다. 당시 포르투갈은 연간 4만 개에서 6만 개의 자기를 수입했으며, 귀족들은 중국의 다른 주요 수출품인 비단옷을 입고 중국산 차를 마셨다. 1580년대 리스본의 거리에는 중국 자기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상점이 최소한 여섯 군데 있었다.
로저 크롤리 [욕망의 향신료 제국의 향신료]
유럽 사람들의 인식에 아시아 나라로 중국과 일본이 우선 떠오른다는 점이,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가 한국보다 먼저 친숙했다는 점이 우연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그들은 교역했고 영향을 주고 받았다.
열려 있어야 하고 유연한 편이 좋다. 누구에게나 늘 친절하고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때로 고집을 피우고 내 기준을 강요해도 좋다.
닫아 걸고 안에서만 지지고 볶지만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