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의 이 유용한 식객들(포르투갈인들)에 대한 지배력은 1573년 지협을 가로지르는 성벽이 구축되면서 더욱 강해졌다. 성벽에는 문이 하나 있었는데 포루투갈인들에게는 포르타스 두 세르쿠Portas do Cerco(관갑)로 알려졌다. 그 성문은 한 달에 두 차례 열려 식량과 이런저런 물품이 도시로 들어왔다. 성문이 닫혀 있을 때에는 길쭉한 종잇조각 여섯 개로 문을 봉인했고, 문에는 중국어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우리의 위대함을 경외하고, 우리의 힘을 존중하라." 이러한 협정은 (중국과 포르투갈) 양측에 똑같이 편리했고, 매우 비공식적이어서 명나라 황제는 자신의 왕국에 유럽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로저 크롤리 [욕망의 향신료 제국의 향신료]
봉쇄라는 명분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교역을 통해 실질적 이득을 취한다. 포르투갈인들은 세금을 납부했고 명나라 황실은 이들의 존재를 묵인한다.
이 시기에 조선은 선조가 집권한 시기다. 명나라와의 관계 말고는 이렇다 할 외교 관계도 교역도 없지 않았나 싶다. 우리에겐 명분이 중요하다. 의리가 거의 전부였다.
비슷한 시기, 일본은 나가사키 항을 열어서 유럽과 교류했다. 유럽 사절단을 보내서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을 둘러본 뒤 귀국했다.
포르투갈과 교역도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인들에게서 총을 입수한 뒤에 대장장이에게 그대로 본떠 만들도록 했다. 엄청난 속도로 총을 만든 일본은 한반도로 진격한다. 임진왜란이다.
개방적이고 유연했다 해서 반드시 나약하거나 종속적이지는 않다. 물론 전략을 잘못 구사하면 위험에 빠질 수 있겠으나. "우리를 경외하고 존중하라"는 요구가 말 뿐이라면 결국 먹잇감이 되겠으나.